[저널리즘특강] ‘탐사보도 개척자’ 이규연 JTBC 대표이사

“산꼭대기의 파란색 공동화장실. 소방차가 올라갈 수 없는 평균 경사 35도의 골목길. 주로 소주·라면만 팔리는 동네 가게. 옛 삼성전자 로고가 남아 있는 1970년대식 거리 간판. 아직도 두 집에 한 집꼴로 연탄을 쓰는 곳. 여기는 2001년 4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101 ‘난곡’....”

지난 2001년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진 중앙일보 ‘난곡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자 셋으로 구성된 취재팀은 2500여 가구가 사는 국내 최대 빈민촌 난곡에 70여 일 동안 머무르며 주민 200명을 인터뷰했다. 꼬박 5일 동안 원고지 총 50매 분량으로 ‘가난의 대물림’을 연속 보도해, 빈곤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했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탐사보도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난곡 리포트’ ‘루게릭 눈으로 쓰다’의 도전

당시 기획취재팀을 이끈 사람은 이규연(59) 현 제이티비시(JTBC) 대표이사다. 이 대표는 난곡 리포트를 시작으로 한국 언론에선 드물었던 탐사보도와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탐사보도는 수사(investigation)하듯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보도이며,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사건과 인물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흥미진진한 이야기체로 풀어내는 기사 장르다. 최근까지 JTBC 탐사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진행자로도 활약했던 그가 지난달 2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학술관에서 ‘나의 작은 저널리즘’을 주제로 특강에 나섰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저널리즘 특강에서 강연하는 이규연 JTBC 대표. 그는 지난달 14일 보도총괄에서 공동 대표로 승진해 더 바빠졌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 김대호

중학생 때부터 시와 수필을 가까이했다는 이 대표는 ‘글 쓰는 직업’을 선망해 1988년 중앙일보 기자가 됐다. 하지만 출입처에서 발표 중심 기사만 쓰다 보니 어휘력과 문장력이 떨어지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기자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다닐까, 고민하던 때 탐사보도를 알게 됐다. 출입처가 없는 기획보도팀에서 탐사 기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선배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너, 제 무덤 파는구나. 그렇게 돌아다니면 재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절대로 언론사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죠.” 

과거 언론사에서는 정치권이나 재계 인맥이 간부로서 성공할 수 있는 필수 요소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치부, 경제부의 인기가 높았고 주요 출입처를 배정받으려 경쟁도 치열했다. 일정한 출입처가 없는 기획보도팀은 ‘한직’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삿거리를 발굴해 긴 글로 풀어내는 데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2005년에는 루게릭병에 걸린 박승일(당시 34세·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농구코치) 선수의 투병 과정을 묘사한 ‘루게릭, 눈으로 쓰다’를 보도했다.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온몸이 마비된 채 오직 눈동자를 움직여 ‘안구 마우스’로 소통하는 박 선수의 일상을 내러티브기사로 절절하게 전달했다. 이 보도는 난곡 리포트에 이어 또 한 번 그에게 한국기자협회 한국기자상을 안겨 주었다. 

이 대표는 “모든 기자가 발표기사를 중요시할 때 반대편에 있었다”며 “블루오션(경쟁 없는 유망시장)에 있었던 셈”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기는 게임을 한 것”이라며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빈곤층 출신 기자, ‘소외’에 집중하다 

이규연 대표는 탐사보도를 업으로 삼은 ‘대가’ 가운데 지난 4월 세상을 떠난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뇌물 의혹을 파헤쳐 그를 퇴진하게 했고, 임사(죽었다 살아나는 것)체험 경험자들을 취재해 <죽음은 두렵지 않다>를 써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을 오가며 주제를 파고든 다치바나의 활동이 자신의 지향점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나의 작은 저널리즘’ 첫 번째 주제로 ‘소외’를 꼽았다. 빈민으로 어렵게 자랐다는 그는 중앙일보 입사 뒤 엘리트 가정 출신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배경을 더 자각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팀장이 됐을 무렵 시도한 기사가 난곡 리포트였는데, 담당 부장과 편집국장 모두 처음엔 ‘빈곤층 얘기를 뭐 하러 하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빈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건 (당시엔) 진보신문이든 보수신문이든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불평등이 본격화하던 우리 사회에서 이 기사의 반향은 컸고, 이후 빈곤 문제를 다룬 특집기사가 여러 언론에서 이어졌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주목하는 보도는 이 대표가 2년 차 기자였던 1989년부터 시작됐다. 방사선 피폭에 관한 지식이 사회 전반에 부족했던 당시, 방사선을 이용해 선박 비파괴검사를 하던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다뤘다.  

“밤에 당직을 서는데, 어떤 사람 전화가 왔어요. 손가락 끝이 곪아간대요. 이런저런 물질을 다룬다는데 저도 알지 못했으니까 ‘거짓말이겠지, 다른 일로 화상을 입었겠지’ 싶었어요. 정밀검사를 해보니까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왔고, 정자가 거의 없었어요. 전형적인 피폭 환자였죠.”

이 대표는 다른 피해자들도 찾아내 취재했고, 산재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구조적 문제까지 파고들어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이외에도 2004년 ‘가난에 갇힌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제2 난곡 리포트 시리즈를 쓰는 등, 소외계층을 향한 관심을 이어갔다.

▲ 이규연 대표의 강의를 경청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 ⓒ 김대호

5.18 몰랐던 마음의 빚, 탐사보도로 갚다 

이 대표가 빈곤에 이어 두 번째로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지난 3월에는 ‘5.18 북한군 개입설’의 진원지로 꼽히는 탈북자 김명국 씨를 찾아내 “5.18 당시 광주에 가지 않았고, 북에서 입원 중이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그동안 보수단체는 5.18 당시 북한군이었던 김명국 씨가 광주에 침투했다며 ‘북한군 개입’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했다. 

5.18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 대표도 정부 발표를 믿은 다른 시민들처럼 광주에서 ‘불온 세력’의 폭동이 일어난 줄로만 알았다. 대학생이 된 후 광주 출신 학생들을 만났고, 기자가 된 후엔 광주에 취재 갔다는 이유만으로 해직된 선배들을 알게 됐다. 그는 “거짓 속에 살아왔음을 깨닫고 역사적 채무 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시작됐다. TV에서 5.18 피해 증언자를 찾는다는 광고가 나왔다. 이 대표는 역발상을 했다. 광주 진압군이었던 공수부대원을 찾아 5.18을 재구성하자는 기획이었다. 가해자로서 죄의식 속에 숨어 살며 트라우마를 겪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 1995년 ‘광주로 간 군인들’ 연속보도를 내놨다. 이 대표는 “공수부대원 이야기는 한 번 더 파고 싶은 이야기”라며 “퇴직하면 (공수부대원들의) 증언을 다 모아 기막힌 상황을 소설로 쓰든지 저작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기자들, ‘균형’보다 ‘진실’에 집중하길 

중앙일보에서 탐사기획 에디터와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JTBC로 옮겨 탐사기획국장, 탐사팩추얼본부장, 대PD, 보도총괄 등을 지낸 이 대표는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주제로 ‘가상현실’을 꼽았다. 최근 온라인 가상세계(메타버스)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가상세계 현상을 하나의 문명으로 보고 사회적, 철학적 문제까지 분석해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사회의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탐사보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탐사보도에는 현상에 대한 해석적 탐사보도와 폭로성 탐사보도가 있다”며 “좋은 탐사보도는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은 세상의 새로운 흐름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해석적 탐사보도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취재방법론에도 호기심이 많다. 데이터 저널리즘은 그에게 훌륭한 탐사보도 도구다. 그는 지난 2004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서울 도심에서 건물의 밀집도와 열대야 일수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기사를 썼다. 2008년에는 사회관계망(SNA) 분석 프로그램인 유씨넷(UCINET)을 활용해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을 분석하기도 했다. 

▲ 강연 후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진행한 질의답변에서 이규연 대표는 언론사가 기대하는 기자·PD의 자질 등 다양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 김대호

강연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대학원생 조한주(28) 씨는 “신입 기자로서 균형을 지키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 대표는 “균형이라는 말과 젊은 기자 시절부터 싸워왔다”며 “균형이라는 말속에 불균형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세상이 힘 있는 사람에게 쏠려 있는데 기자가 균형을 지키려고 하면 결국 불균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기자들은 균형보다 진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신문, 방송, 뉴미디어 등에서 탁월한 활동을 보이는 현직 언론인을 초청해 ‘저널리즘 특강’을 열고 있다. 초청 강사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함께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과 언론의 대응, 언론인의 고민 등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한다. <단비뉴스>는 강연과 문답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편집자 주)

편집 : 전윤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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