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주제 ② 영국의 정치경제와 브렉시트

“영국 유권자들 절반 이상이 ‘브렉시트’를 하면 경제 손실이 생기리란 점을 알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이들이 브렉시트를 택한 이유는 긴축경제에 대한 불만,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에 따른 배제심리 때문입니다.” 

지난 6월 3일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두 번째 주제 ‘영국의 정치경제와 브렉시트’를 강연하며 브렉시트의 배경부터 설명했다. 그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유로 당시의 불안한 경제상황이 주로 거론되지만 동시에 ‘정체성의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안병억 대구대 교수가 ‘영국의 정치경제와 브렉시트’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현경아

영국을 뒤흔든 ’정체성의 정치‘

2차세계대전 당시 강성했던 ‘대영제국’을 그리워하는 영국인들의 정서가 EU의 여러 ‘구성원 중 하나’로 남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브렉시트를 지지한 자유방임론자들은 EU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영국이 이를 따라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며 “영국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을 구분해 스스로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은 EU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단일화폐인 유로가 아니라 파운드를 고집했다.

이런 정체성의 정치는 정치권에 의해 고조됐다. 안 교수는 “보리스 존슨이 2016년 국민투표 당시 영국 총리가 될 기회를 거머쥐기 위해 마지막 순간에 브렉시트 지지로 입장을 바꿨다”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행보가 브렉시트 정서를 고조시켰다”고 말했다. 집권 보수당 안에서도 EU 잔류와 탈퇴 문제로 분열이 심각했다. 2010년 그리스 유로존 위기 때 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정당 영국독립당(UKIP)이 세력을 크게 키웠기 때문이다. 

영국 중북부의 쇠락한 공업지역인 ’레드월’(Red Wall) 지역의 반이민 정서도 브렉시트를 추동한 요인이었다. 2015년 후반 시리아를 비롯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난민 신청자가 유럽으로 밀려들었다. 영국도 유럽연합의 정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난민들을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중·하위층 노동자인 ‘레드월’ 거주자들에게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민자 유입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정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 나타난 출구조사 결과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지지한 영국인 대부분이 출구조사 당시 ‘우리 정책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이민자 유입을 통제해야 한다’고 브렉시트를 지지한 이유를 꼽았다.

▲ 2016년 영국독립당 대표 나이젤 파라지는 줄지어 선 난민 사진을 브렉시트 선전에 활용했다. 포스터 하단에는 ‘우리는 EU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국경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 <더타임스>

근거없는 ‘장밋빛 낙관론’

2010년 EU의 일부인 PGIS(포르투갈,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에서 시작된 재정 위기는 유로존의 존립 자체에 타격을 입혔다. 유럽연합 전체가 긴축정책으로 몸살을 앓았다. 영국도 덩달아 복지재정을 삭감했고 중하위층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 유럽연합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반감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 교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까지 영국 경제가 EU 평균보다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낙관론자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가 더욱 성장할 거라고 ‘장밋빛 낙관론’만 제시했지만 근거 없는 주장이다. 유로존 국가끼리는 통관 절차나 관세 적용, 쿼터 제한 없이 상품과 서비스를 교역할 수 있다. EU를 탈퇴하면 영국은 4억5천만 명 규모 단일시장 접근권을 상실하는데 문제는 EU와 영국의 교역량이 영국 대외무역 비중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으로서는 대체 불가능한 시장이다. 

안 교수는 공연산업을 예로 들며 영국이 입을 손실을 설명했다. 영국이 EU에 잔류할 경우 공연업계 종사자, 예술가의 이동은 훨씬 자유롭다. 그러나 단일 국가로서 영국에서 공연을 개최하려면 비자를 발급받거나 보험에 가입하는 등 부가비용이 발생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소비심리가 곧 폭발적인 보복 소비로 이어져도 영국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여러 경제적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영국의 비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전세계 국가들의 여권파워를 산정해 순위를 매기는 헨리 앤 파트너스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여권지수는 브렉시트 이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 2013~2015년까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가 많던 영국 여권은 세계에서 가장 선호하는 여권이었으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위로 하락하고 지난해에는 7위까지 추락했다. 

최대 정치 현안 ‘스코틀랜드 이탈’

안 교수는 영국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큰 이슈로 스코틀랜드 이탈, 곧 ‘스케싯’(Scexit)을 꼽았다. 지난 5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스코틀랜드 지방선거에서 64석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영연방 탈퇴를 지지하는 녹색당은 8석으로, 두 정당 의석을 합하면 과반을 넘는다. 이들은 선거 공약으로 제2주민투표 실시를 제시한 정당이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에 이미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해 투표한 적이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영연방 잔류가 55%를 차지해 분리독립은 무산됐지만, 브렉시트가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의 촉진제가 됐다. 브렉시트는 잉글랜드와 보수당이 주도했다. 잉글랜드의 브렉시트 지지율은 평균보다 2% 더 높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63~64%가 잔류를 지지했다. 안 교수는 스코틀랜드로서는 ‘원치 않은 이혼을 당한 셈‘이라고 표현했다. 스코틀랜드가 EU에 남으려면 영국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할 수밖에 없다. 

▲ 에딘버러에서 활동하는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자들. ⓒ Jane Barlow

최근 1년간 투표를 보면 스코틀랜드는 오차범위 안에서 독립에 성공할 수 있다. 영국의 다음 총선은 2024년이다. 법을 전면 개정하지 않는 한 영국 총선보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 투표가 먼저 이루어진다. 존슨 총리는 ‘스케싯’을 결사 저지하겠다고 했지만 영연방은 각 자치구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유지되는 구조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입법으로 저지하려 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영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할수록 독립 의지가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총선 전에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할 경우 보리스 존슨 총리의 정치 생명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안 교수는 ‘스케싯’이 북아일랜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아일랜드의 친영파들은 영국 연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아일랜드계 주민들은 독립을 원한다. 앞으로 2년 안에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한다면 북아일랜드도 아일랜드와 통일할 가능성이 높다. 

스코틀랜드 독립이 EU 통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수강생의 질문에, 안 교수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카탈루냐 지방의 분리독립 문제를 안고 있는 스페인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는 있으나 EU 지원을 많이 받고 있기에 계속 스코틀랜드 독립을 반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EU에 재가입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나 “스페인을 비롯해 분리독립 문제가 있는 유럽 국가들이 EU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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