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서바이벌 예능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

Hey mama, Hey mama 스트릿 우먼 파이터, Hey mama 스우파 풀캠. 지금 유튜브 검색창에서 너도 나도 검색 중이다. ‘Hey mama(헤이 마마)’는 최근 5주 연속 비드라마 화제성 1위를 기록한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리더 계급 미션곡이다. 이 곡을 일단 한번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저절로 타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우파>에 출연한 댄서 노제의 안무는 '헤이 마마'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어울려 역동적이면서도 강렬한 힘을 전달한다. '헤이 마마'를 귀로 들으며 노제의 안무를 따라 손뼉을 치다보면 어느새 입으로 가사를 따라 부르게 된다. “Yes I be your woman.”

▲ <스우파>의 경연 장면. 웨이비의 노제(가운데) 외 각 댄스 크루 리더가 계급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댄스 비디오 장면. ⓒ Mnet TV 유튜브

문제는 이 가사에서 시작된다. ‘너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가사는 ‘서바이벌 예능 최초 여성 스트릿 댄서’를 표방한 <스우파>의 정신과 어긋난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 아이돌이 아닌 댄서, 남성이 아닌 여성을 중심에 두겠다는 프로그램에서 ‘너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헤이 마마'의 핵심 메시지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스우파>는 최고의 여성 스트릿 댄스 크루를 뽑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기존 방송에서 주로 다루던 남성 혹은 아이돌이 아닌 여성 스트릿 댄서를 선택한 점이 신선했다. 그 신선함과 새로운 시도를 ‘너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가사가 다 까먹었다. 가사에서 ‘여성’은 ‘너’인 ‘남성’ 없이는 의미를 전달할 수 없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생산되었던 ‘남성 옆에 선 여자’ 이미지를 여전히 고루하게 대중에게 던진다.

‘남성 아래 여성, 가수 아래 댄서’ 위계 고스란히, ‘엇새로운’ <스우파>

접두사 중에 ‘엇’이 있다. 엇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제일 첫머리에 ‘어긋나게 또는 삐뚜로’의 뜻을 더한다는 풀이가 온다. ‘엇걸리다, 엇나가다, 엇베다’가 그 활용형이다. 엇을 이용해 <스우파>를 한 단어로 이렇게 조어할 수 있겠다. ‘엇새롭다, 엇재밌다!’ 그랬다. <스우파>는 어긋나게 새롭고, 삐뚜로 재밌다. ‘너의 여자가 될 것’이라는 ‘I be your woman’ 메시지가 <스우파>의 전체 구성에서도 그대로 구현된다는 점이, 이 프로그램을 더욱 ‘엇새롭게’ 만들고, ‘엇재밌게’ 했다.

▲ 왼쪽부터 파이트 저지인 안무가 황성훈, 가수 보아, 아이돌 그룹 NCT 리더 태용이 약자 지목 배틀에서 심사를 보고 있다. 여성 스트릿 댄서 선발 심사위원이 댄서가 아닌 가수, 댄서라도 남성이라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한계다. ⓒ Mnet TV 유튜브

<스우파>는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나뉘어 진행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을 충실히 따른다. 심사위원은 가수 보아, 아이돌 그룹 NCT의 태용, 안무가 황성훈이다. 이들 앞에서 여성 스트릿 댄스 크루인 라치카(Lachica), 원트(WANT), 웨이비(WAYB), 코카앤버터(CocaNButter), 프라우드먼(Prowdmon), 홀리뱅(Holybang), 훅(Hook), YGX는 춤을 추고 평가를 받는다. 최고의 여성 스트릿 댄서를 가수인 보아, 남성 아이돌 가수인 태용, 남성 안무가인 황상훈이 뽑는다. 무대 뒤에서 조명받지 못하는 댄서, 그중에서도 여성 스트릿 댄서를 뽑겠다는 제작진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여성 스트릿 댄서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주체가 댄서가 아닌 가수이고, 댄서라도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니. <스우파>는 전무후무하게 여성 스트릿 댄서를 다루었다는 위치를 선점했지만, 동시에 가수와 댄서, 남성과 여성의 위계를 더욱 공고하게 보여 주었다.

진보한 패션은 박수받지만, 진부한 패션은 외면받는다. <스우파>는 진부한 알맹이를 진보한 옷으로 감쌌다. 겉모습은 진보했지만 메시지는 진부했다. 대중은 진부든 진보든 박수 치고 노래 부르며 외친다. “Yes I be your woman, Yes I be your baby.” 제작진은 여성과 스트릿 댄서를 전면에 내세운 진보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남성에게 대상화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가수와 댄서, 남성과 여성의 위계를 진부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그 결과 신선하면서도 고루한, ‘엇새롭고 엇재밌는’ <스우파>가 되고 말았다.

얼굴 예쁘고 몸매 좋으면 다야? ‘여적여’로 싸움 붙이기

엇새로운 장면은 여자 댄서를 향한 외모 평가에서도 보인다. 첫 화에서 웨이비의 댄서 노제를 평가하는 말은 ‘예쁘다’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카이 옆에 선 예쁜 댄서’가 대표적인 수식어 아니냐며 “댄서가 예쁘면 저렇게 확 뜰 수 있다”고 노제를 평가한다. 표정이 굳은 노제를 향해 YGX의 여진은 비웃듯 “괜찮으세요” 묻는다. 예쁜 여자를 향해 시비를 거는 전형적인 여자의 이미지 재생산이다. <스우파>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래된 ‘여적여’ 프레임을 가져왔다. 여성이 주체인 ‘스트릿 우먼’이라는 프로그램 콘셉트에서 스트릿은 사라지고, ‘우먼’만 남아 ‘파이트’하는 상황을 첫 화에서부터 끊임없이 연출한다. 여자를 시기하는 여자들을 보여주며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 <스우파>는 ‘예쁘다, 섹시하다’는 전형적인 여자 댄서를 향한 외모 평가 방식과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래된 ‘여적여’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Mnet TV 유튜브

노제와 여진의 기싸움이 끝나면 라치카의 가비와 훅의 아이키가 맞붙는다. 이번에는 여성의 몸매가 화제로 떠오른다. 아이키는 라치카 크루에 “벗는다고 섹시한 게 아니다”며 선전포고한다. “진짜 섹시함은 내면의 섹시함”이라는 발언은 남성이 보길 선호하는 가슴과 엉덩이 굴곡을 자랑하며 춤추는 여자는 ‘진짜 섹시’를 보여줄 수 없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가비는 코웃음 치며 “난 벗으면 섹시하다”고 응수한다. ‘진짜 섹시한가’라는 개념은 곧 ‘선정적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된다. 선정성은 여성의 신체가 성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를 말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성의 몸을 성적 자극으로 치환해 바라봐 왔다. 바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스우파>가 이 지점에 있다. <스우파>는 여성 스스로 춤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얼마나 자극적인 성적 요소로 보일지를 두고 다툰다. 이 다툼은 기존에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던 시선을 그대로 내재화한 장면에 다름 아니다.

기싸움이 끝나면 약자 지목 배틀이 시작된다. ‘노 리스펙트(NO RESPECT)’ 딱지가 붙은 댄서를 지목하며 여자들끼리의 싸움이 이어진다. <스우파>는 첫 화부터 여성 댄서에게 싸움판을 깔아줌으로써, 춤으로 대결한다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실히 한다. 무대 위에서 지목받은 댄서끼리 춤으로 싸우는 명징한 방식을 내걸고, 출연자들이 가지고 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용해 호전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그중에서도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의 리헤이 사이의 약자 지목 배틀은 제작진이 짜놓은 가장 영리한 싸움판이다. 허니제이와 코카앤버터 크루는 7년간 한 팀에서 활동하다가 헤어졌다. 프로그램은 이들이 함께했던 과거에 쌓인 감정을 춤으로 싸우도록 판을 깔아 놓는다.

시청자가 바라는 건 명확하다. ‘우먼 파이터’가 아니라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보고 싶다. 여성이 당당한 하나의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감, 예술성을 드러내는 춤을 기대한다. 미디어에서 늘 그려온 여성의 다툼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외모를 두고 시기 질투하며 헐뜯는 여성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남성의 시선에 여성의 몸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다가올지를 염두에 둔 춤판은 더더욱 보고 싶지 않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진짜 맞짱을 떠야 할 상대는 남성이 뻔하게, 욕망적으로 그려온 여성에 대한 시각이다. 쟁취하고자 할 때는 제대로 싸워야 한다. <스우파>는 ‘스트릿 우먼’이 왜, 무엇을 쟁취하고자 싸워야 하는지 프로그램에 담아내야 한다. 춤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하나의 예술 주체로서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열정과 욕망을 그려내야 한다. <스우파>가 여성 댄서들이 춤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진정한 성장기였으면 좋겠다.

무대를 향해 리스펙트의 신발을 날려라!

지적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스우파>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적여’로 짜인 배틀 판 위에서도, 출연자들은 지금까지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급의 댄스를 선보인다. 걸스 힙합, 크럼프, 왁킹 등 화려하고 격렬한 댄스의 세계로 대중을 이끈다. 댄서가 튕기는 어깻짓과 시선을 사로잡는 몸짓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스우파>를 꼭 보게 만든다. 출연진의 당당함과 절제가 있다. 춤 배틀에서 패배했더라도 인정되는 승부에는 깔끔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를 향해 ‘리스펙트’를 날린다.

탈락의 기로에 섰을 때 출연자들의 치열한 고민을 지켜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탈락하지 않기 위해 대중에게 친숙한 안무를 짤 것이냐, 탈락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색깔을 버리지 않을 것이냐. 탈락의 기로에 선 댄서들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 그 결과로 탄생한 새로운 춤이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경연 중 코카앤버터는 걸스힙합의 색채가 짙어 실력파 그룹이지만 번번이 탈락 위기를 겪었다. 대중에게 친숙한 안무를 보여줘야 하는지, 그들이 춰 왔던 춤으로 승부를 볼 것인지 고민한다. K팝 4대 천왕 미션에서 져 탈락할 뻔했지만 5화 메가 크루 미션에서 “우리 춤을 리얼로 보여주고 싶다”며 다시 멋있게 도전한다.

<스우파>에는 감동이 있다. 허니제이와 리헤이는 대결 도중에 서로 맞춰보기라도 한 것처럼 비슷한 구도와 동작을 취하며 함께 춤췄다. 그동안 쌓인 감정의 골을 넘어 같이 활동했던 7년의 세월을 춤으로 승화시킨다. 승부가 끝나고 두 사람은 포옹한다. “잘 지내셨던 거죠” 안부를 묻고, “많이 멋있어졌다”고 서로를 인정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시청자들의 마음도 같이 뜨겁게 끓어 오른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도 있다. 라치카의 피넛은 “한 번도 못 이겨봤다”며 프라우드먼의 립제이에게 대결을 신청한다. 댄서들의 댄서라고 모두들 치켜세우는 왁킹 댄서 립제이였다. 그에게 또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디디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피넛은 이기고 싶다는 필사적인 손놀림과 눈빛을 담아 춤을 추었다. 도전을 받은 립제이의 춤사위는 익살스러우면서 절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둘의 우열을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며 다시 보여주길 청했다. 두 사람은 마치 한 팀인 것처럼 서로의 춤을 주고받으며, 대결하면서도 각자의 춤 세계를 인정하는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려 갈채를 받았다.

▲ 프라우드먼의 립제이와 라치카의 피넛이 약자 지목 배틀에서 대결한 후 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다. <스우파>에는 도전과 리스펙트, 감동이 함께 있다. ⓒ Mnet TV 유튜브

배틀을 지켜보던 모든 댄서가 환호했다. 소름이 돋는 경연에 춤을 추는 이도, 심사위원도, 지켜보는 이들도 모든 에너지를 무대에 집중한다. 경연의 열기와 감동은 종료를 알리는 신호가 울려도 꺼지지 않았다. 심사위원과 관중석에 있던 댄서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무대를 향해 던진다. 무대 위로 신발을 던지는 행위는 최고의 배틀러에게 보내는 댄서들의 리스펙트 사인이다. <스우파>에는 최고의 여성 댄서가 만들어 낸 최고의 무대가 있다. 최고의 무대는 감동과 진한 여운으로 오래 남는다. 

<스우파>는 남성이 오랫동안 점거했던 방송가를, 여성의 화려한 춤으로 뒤엎어 버렸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차별하는 오래된 방식이 프로그램 곳곳에 보이더라도, <스우파>는 분명 남성이 중심이었던 방송계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남성 옆에 선 여성’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자신이 지키고 선 분야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당당한 여성을 그려냈다. 여성들이 춤으로 세상에 한 방 날릴 프로그램 <스우파>. <스우파>는 여성이 주체인 또 다른 프로그램의 탄생을 알리는 물꼬이자 가능성이다. <스우파>가 우리에게 소중하고, 우리가 <스우파>를 향해 리스펙트의 신발을 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편집 :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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