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검증 보도’ 빙자한 네거티브 공세 사라지게 하려면

▲ 심석태 교수

대통령 선거 때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주요 선거 보도에는 항상 나타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선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싶으면 바로 후보들을 향한 온갖 ‘의혹’ 보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검증 보도’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검증 보도’를 빙자해서 사실상 언론이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감히 언론의 선거 관련 검증 보도를 이렇게 의심하는 이유가 있다. ‘검증’을 빙자해 보도된 내용이 정말 어떤 후보가 공직을 맡을 자격에 문제가 될 만한 사안인지, 어느 정도나 근거가 있는지 따지지 않고 누가 문제만 제기하면 일단 보도부터 하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저 풍문 수준으로 떠도는 말을 언론이 고발 기사처럼 보도해 진짜 논란으로 만드는 일도 종종 나타난다.

그렇다고 언론이 선거 국면에서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을 검증하는 보도만 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공직 자격이 있는지를 순전히 정책 능력만 보고 판단한다면 그냥 경륜이 깊은 관료 중에서 지도자를 뽑는 게 나을 것이다. 정책 능력만으로 나라를 이끌 수도 없다. 정책 능력과 리더십은 완전히 다른 덕목이다. 또 아무리 정책 능력이 있어도 심각한 도덕적 결함이 있다면 국민들이 지도자로 인정하기 어렵다. 순수한 사생활 영역에 있는 일이 아닌 한 서구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도덕성 검증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검증 보도 모두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최근 선거 관련 검증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언론이 검증 보도를 핑계 삼아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보도가 많다. ⓒ KBS

‘검증 보도’가 아니라 ‘검증 없는 보도’가 문제

진짜 문제는 명색이 ‘검증 보도’라고 하면서 제대로 된 사실 확인 노력 없이 보도하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검증 보도’에 제대로 된 ‘검증’이 없는 것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종종 검증을 했다는 표시를 해놨지만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형식만 갖춘 경우가 많다.

언론으로서는 선거 국면에서 누군가 의혹을 제기하니 보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공인에 대해 비리나 부정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언론이 적용하는 어느 정도 확립된 판단 기준이 있다. 누군가 어떤 의혹을 제기했다고 곧바로 그 사람의 말만 믿고 보도를 감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정한 수준의 사실 확인을 거친 후에야 보도가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단순한 주장 이상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거 관련 검증 보도에서는 이런 과정이 수시로 생략된다.

물론 특정 유력 정치인이나 주요 정당이 어떤 후보에 대해 중대한 의혹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다. 만약 그런 의혹 제기가 나온다면 그 자체로 보도 가치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유력 정치인이나 주요 정당이 제기한 의혹이라고 해서 그대로 보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언론이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위한 거대한 확성기로 전락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의혹 제기가 누군가의 양심선언이나 폭로 형식으로 이뤄지더라도 마찬가지다. 

정치 보도는 ‘느슨한 검증’ 적용하는 관행 바꿔야

언론계에서 유명한 말이 하나 있다. “너의 어머니가 ‘사랑해’라고 말하더라도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라”(If your mother says she loves you, check it out). 미국 시카고에 있던 한 신문사 편집국 벽에 붙어 있었다는 말이다. 사실 확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데, 선거 보도만이 아니라 우리 정치 보도 전반에는 이런 엄정한 사실 확인 원칙이 없다. ‘부족하다’기에는 그냥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정도다.

정치 보도에 오래 몸담았거나 관심을 갖고 지켜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우리 정치 보도에는 A가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이 맞는 말인지 따지지 말고 ‘A가 그런 말을 했다’고 보도하면 그만이라는 관행이 있다. 누군가의 말이나 주장의 진실 여부를 따지고 검증해서 보도하는 것은 사건 보도나 탐사 보도 영역에나 해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적지 않다. 말 자체가 정치행위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설혹 그런 말이 사실이 아니어서 문제가 되면 그건 그것대로 보도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정치인의 말은 그렇다 치고, 사실상 정치 보도 자체를 정치의 일부로 보는 셈이다.

▲ 한국 정치 보도는 누군가의 주장이나 말을 따지고 검증하는 등 사실 확인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발언 자체를 보도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 Pixabay

이런 정치 보도 관행은 정치인들이 언론을 네거티브 공방의 수단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이다. 덕분에 유력 정치인이나 주요 정당은 엄밀한 검증에 대한 부담 없이 어떤 주장이나 의혹을 제기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대선 국면에서 엉터리 네거티브 공격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선거가 끝난 뒤에 그런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도 후보가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라면 선거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은 언론이 항상 허위 보도나 일삼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로 거짓말이나 거짓에 가까운 주장을 가장 많이 대놓고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 특히 선거 기간의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언론중재위에 불려가지도 않고, 고소나 고발을 당해도 대체로 선거가 끝나면 일괄해서 취하하는 전통 덕분에 책임질 걱정도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정직한 정치인들은 무척 억울하겠지만, 그들도 일부 인사들의 무책임한 주장을 제지하거나 비판하지 않은 책임을 피하기는 어렵다. 

선거 캠프에는 아예 이런 의혹제기를 빙자한 상대 후보 공격팀이 구성되고, 우리 사회는 이런 것을 ‘네거티브 선거운동’이라며 아예 하나의 선거운동 방식으로 공인해준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지속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반복하면 나중에는 정말 없던 사실도 사실로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예 거짓 주장을 담은 책을 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믿음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정치 보도가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누군가의 말을 꼼꼼히 검증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현상이다. 

검증을 빙자해 벌어지는 일은 다양하다. 조그만 말실수가 있거나 조금만 비틀어볼 여지가 있으면 사정없이 맥락을 뒤집어 버린다. 특정인과 찍은 사진 한 장이 나오면 마치 그 사람과 무슨 대단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업무적으로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일까지 마치 실제 책임자였던 것처럼 억지 주장을 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풍문을 사실로 단정한 뒤 그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일도 생긴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이런 검증을 빙자한 공세가 벌어지는 것을 지금 모든 국민이 목격하고 있다.

만약 사회 분야 보도였다면, 어머니가 사랑한다고 한 말까지 검증하는 정도는 아니라도, 상당한 수준의 검증 없이 제기되는 의혹을 그냥 보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 보도는 오랫동안 특별한 영역으로 취급되어 왔다.

정치 관련 검증 보도도 ‘교차 검증’ 원칙 지켜야

선거는 매우 짧은 기간에 흐름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여론 흐름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별로 근거는 없더라도 유권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의혹이 제기되면 사실 확인을 시작하기도 전에 선거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당장 앞서는 후보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에서 인터넷 기사 댓글이나 공감, 추천 같은 독자 반응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언론의 검증 보도가 달라져야 한다. 

물론 언론으로서는 ‘의혹이 제기되니 보도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명색이 ‘검증 보도’라면서 실제로 사실 확인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증 보도가 아니라 ‘네거티브 공격 동참’일 뿐이다. 무슨 대단히 새로운 기준을 지키자는 게 아니다. 정치 보도라고, 대선 보도라고 기사 판단에서 특별히 예외를 두지만 않으면 된다.

▲ 선거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만으로도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선거를 앞두고 언론이 보도를 할 때는 사실 확인에 기반한 검증 보도가 매우 중요하다. ⓒ Pixabay

일반적으로 어떤 공인에 대해 비리나 부정 의혹이 제기되면 최소한 관련된 사람의 증언을 확보하고, 당사자의 반론도 듣고, 그런 증언과 반론이 독립적인 제3의 증언이나 물증으로 뒷받침되는지 확인한 뒤 보도 여부를 결정한다. ‘교차검증’이라고 부르는 작업이다. 그런데 왜 우리 언론은 정치 보도, 특히 선거 보도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검증 원칙을 적용하지 않거나 매우 느슨하게 적용해서, 별 근거도 없거나 공적 가치가 떨어지는 상대에 대한 공격을 기사로 확산시키는 걸까?

물론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정당이라면 선거 국면에서 뚜렷한 근거도 없이 단순히 풍문만 듣고 의혹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위는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으로 큰 비난을 받아야 한다. 이해관계자나 단체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언론이 그 근거를 꼼꼼히 따져서 보도 여부를 결정한다면 정치권도 이런 식의 무분별한 네거티브 공세를 할 유인이 줄어들 것이다.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제도를 통째로 흔들려는 시도를 언론이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보도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기둥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정치 과정에서 선거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유권자로서는 거짓 주장에 속아 한번 투표권을 잘못 행사하고 나면 국회의원은 4년, 대통령은 5년을 속절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거짓 선동으로 유권자의 눈을 속이려는 사람이 넘쳐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거기간에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거짓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전달되면 유권자의 투표권은 무의미해진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제도는 허울만 남게 될 것이다.

▲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서울 목동 SBS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선 후보 TV토론회'에 참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경선 후보. ⓒ 연합뉴스

이미 20대 대선 보도에서도 이런 우려를 갖게 하는 징조들이 적잖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상대 진영을 향해 근거 없는 공세를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당내 경선에서조차 상대의 생명줄을 겨냥한 공격이 이뤄진다. 언론도 열심히 이런 공세를 ‘공방’, ‘논란’ 운운하며 중계하고 있다. 진영이 다른 후보를 향해서는 ‘사생활이든 뭐든 걸리기만 해라’는 식의 공세가 벌어지는데, 어차피 폭로로 먹고 사는 곳은 차치하고 정론을 지향하는 곳까지 중계에 열중이다.

이런 보도들도 겉으로는 선거라는 공적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포장하고, 더구나 일정한 확인 취재를 한 ‘검증 보도’인 것처럼 내세운다. 언론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진영을 중심으로 갈라지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정말 후보자의 공직 자격을 묻는 것인지, 기초적인 ‘교차 검증’은 거친 것인지를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공직을 맡을 자격에 관한 것인지, 그리고 일반적 취재 보도의 원칙에 따른 교차 검증을 거친 사안인지 따져서 보도의 정당성을 고민해야 한다. 취재 방법의 윤리적, 법적 한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최근의 대선 관련 보도가 지금까지의 정치 보도 관행에 비추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보도가 정말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의 공정한 선택에 도움이 되려면 보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보도가 검증을 빙자한 흑색선전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언론인 자신이 정파적 신념을 앞세워서 검증 보도를 빙자한 사실상의 정치 행위를 하는 것도 안 된다. 어느 쪽이나 언론이 유권자들의 정상적인 투표권 행사를 도와야 한다는 헌법적 임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 지난 28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들이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대선 경선 4차 방송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교안, 유승민, 최재형, 안상수, 하태경, 윤석열, 홍준표, 원희룡 후보. ⓒ 연합뉴스

제대로 된 검증 보도는 불편한 일이다. 보도 실무자들은 물론 보도 대상들까지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갑자기 보도 관행을 바꿀 수 있느냐는 반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거 국면은 언론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거 국면에서 언론이 중심을 잡고 제 역할을 한다면 대의민주주의의 토대인 선거가 흑색 선전에 흔들리지 않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하자 전통언론의 신뢰도와 이용률이 크게 올라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선거가 혼탁해질수록, 유사 언론이나 정파적 언론들이 검증되지 않은 네거티브에 몰입할수록, 제대로 교차 검증한 내용이 아니면 보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언론의 선거 보도가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검증 보도에 관한 기존의 상식을 부수는 언론, 언론인이 필요하다.


● 이 글은 중견 언론인들의 연구단체인 관훈클럽이 발행하는 <관훈저널> 가을호에 ‘대선 보도와 언론’ 특집의 일부로 실렸습니다. 관훈클럽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편집 : 박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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