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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업 인턴'을 아시나요?

기사승인 2021.09.21  21: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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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D dlyejin@daum.net

- [단비인터뷰] 농촌 살기 프로젝트 참여한 청년 박유미 씨

지난 5월 내내, 제천시 덕산면에 위치한 어느 마을의 방 한 칸은 밤새 불 켜져 있었다. 박유미(29) 씨는 어두운 방에서 벌레가 마구 돌아다닐 것을 걱정했다. 빛이 있으면 벌레가 들어와도 움직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시에 살던 박씨는 벌레의 습성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다. 한동안 천장 등을 환히 켜고 잠들었다. 농촌 생활 넉 달이 지난 9월, 불빛은 전보다 희미해졌다. 박 씨는 이제 천장 등은 끄고 책상 위 전등만 켜고 잔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 자락에 있는 농업회사법인 ‘청년마을’에서 생애 첫 농촌 생활을 하고 있다. 

   
▲ 박유미 씨가 직접 심고 수확해 말린 약초를 보고 있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20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낸 ‘도시 토박이’다. ⓒ 이예진

박 씨에게 농촌은 '관심 밖' 공간이었다. 농촌 생활을 아름답게 담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넉 달 전 농촌에 오고 나서야 뒤늦게 봤다. 농촌에 연고도 없다. 그랬던 박 씨를 농촌으로 이끈 건 ‘사회적 농업’이라는 개념이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같이 살던 룸메이트를 통해 사회적 농업을 하는 농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당시 사회적 농업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관심이 갔다. 사회적 농업을 알아보고 싶어 같은 달 '충북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마을'에 왔다.

사회적 농업은 농업을 통해 장애인, 고령자 등 도움이 필요한 지역 사람들에게 돌봄, 교육, 일자리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중심에 농업이 있긴 하지만 돌봄,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기 때문에 농업인 외에 지역학교, 복지시설, 지역주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협업이 필요하다. 제천시 덕산면의 ‘청년마을’은 농림축산식품부 지원으로 2018년부터 사회적 농업 사업을 진행해왔다. 

박유미 씨가 꿈꿨던 삶은 사회적 농업의 지향과 잘 어울렸다. 그는 대학에서 아랍지역학을 공부했고 같은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튀니지에서 1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즈음 한국에서 난민 혐오 문제가 불거졌다. 튀니지에서 자신을 환영해줬던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혐오를 당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포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냥 농사짓는 곳이라고 했으면 매력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장애가 있든 없든 나이가 많든 적든 모두 와서 공동체를 이루는 삶을 지향한다고 해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농촌에서 살아보면, '포용하는 삶'을 살아갈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박 씨는 생각했다. '청년마을'에서 박 씨는 일주일에 하루만 농사 체험을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청년마을' 회사 운영 관련 회의에 참여하고 문화행사를 기획한다. 농사지은 작물을 활용해 상품화하는 방법도 궁리한다. 박씨와 같은 20~30대 청년 4명이 '농촌문화기획자' 직함으로 '청년마을'에서 지내고 있다. 

   
   
▲ 위 사진은 ‘충북에서 살아보기’에 참여한 청년들이 생활하고 있는 ‘청년마을’ 숙소다. 아래 사진은 숙소 바로 뒤에 있는 강가 풍경이다. ⓒ 이예진

박유미 씨는 농촌과 청년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고 봤다. 과거에는 농촌이 일방적으로 청년을 필요로 하는 모습이었다면, 요즘은 청년도 농촌에서 얻어가는 게 있다는 뜻이다. 그는 농촌과 청년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통계청 등이 공동으로 작성하여 발표한 '2020년 귀농어·귀촌인 통계'를 보면, 농부가 되려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귀농 인구' 가운데 30대 이하는 10.9%에 불과하다. 젊은 사람들은 농사짓는 일을 꺼린다는 이야기다. 반면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직업을 구하여 농촌에서 지내는 '귀촌 인구' 가운데 47.9%가 30대 이하다.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려는 청년보다 농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구하여 농촌에 살겠다는 청년이 더 많은 것이다. 

"고추밭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웃기지만 지금도 논문 걱정하고 있어요."

박유미 씨도 농촌에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대학원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돼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 학기를 맞은 그의 최대 고민은 논문이다. 한국 내 이슬람 혐오에 관한 논문을 구상 중이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중동 사람들이 겪는 편견에 관해 막연하게 고민했지만, 농촌 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각을 더욱 구체화했다. 박 씨는 농산물을 수확하는 이주노동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농촌 생활을 거치는 중동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농촌에 오고 나서 생각의 차원이 달라지고 넓어졌다"고 박 씨는 말했다. "이전처럼 도시에서만 살았다면 중동 사람들이 한국에서 겪는 현실에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 박유미 씨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넉 달의 농촌 생활 동안 네 번째 수확이었다. ⓒ 이예진

"서울에서 공부할 때는 막연하게 한국에 사는 중동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농촌 생활을 하면서는 한국 내에서도 어느 지역에 가야 할까, 그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렇게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미래 선택지 중 하나로 농촌에서 사는 삶을 생각하고 있어요."

'충북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10월 중순에 끝난다. 박유미 씨도 그 무렵 서울에 돌아갈 예정이다. 일단 논문을 끝낼 생각이다. 지금도 매주 주말 서울에 올라가 학교 도서관에서 논문에 필요한 책을 빌려온다. "일단 도시로 돌아가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농촌에 돌아오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농촌 사회를 더 좋게 변화시키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사회적 농업'이 지닌 가치를 지금보다 더 많이 실현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농촌에 직접 살아보니,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없고, 그들이 이동하기에 불편한 골목과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지속가능한 농촌 생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보고 싶다. 

어떤 직업이나 직종이 자신과 잘 어울리는지 파악하는 동시에 그 분야에 취업하기 위한 기초 능력과 이력을 쌓는 것이 이른바 '인턴' 활동이다. 박유미 씨는 지난 넉 달여 동안 '사회적 농업'이라는 분야의 인턴을 치러냈다. 박 씨는 '내가 추구하는 삶'을 중심에 두고 농촌 생활이 그것과 잘 어울리는지 검토해왔다. 

이는 덕산 청년마을 한석주 대표가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대표는 2005년 제천시 덕산면 간디학교 교사로 왔다. 2007년 교사 생활을 내려놓고 지속가능한 농촌마을공동체를 위해 힘써왔다. 한 대표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청년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청년마을’을 이끌고 있다. 박유미 씨가 10월에 떠나서 서운하진 않냐는 질문에 한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아직 젊잖아요. 지금 간다고 해서 완전히 가는 게 아니고, 여기 머물러 있다고 해서 완전히 살게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서 잘 하고,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라고 말해요. 자기가 선택해서 사는 건데 아직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도전할 때죠. 다만 농촌 생활을 해봤으니 배반만 하지 마라 이런 거죠. (웃음)" 

'충북에서 살아보기'에 참여하는 5개월은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농촌에서 살아볼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간이라고 한 대표는 설명했다. 그 판단을 돕기 위해 청년마을은 '농촌은 곧 농사'라는 공식을 깨고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한다. 

   
▲ 박유미 씨는 개인 시간에 논문 자료를 찾거나 행사 기획을 준비한다. ⓒ 이예진

박유미 씨는 이제 벌레들과 잘 어울린다. ‘청년마을’의 밭에서 통통한 지렁이를 보면 '양분을 잘 먹고 잘 자랐구나' 생각한다. 벌레가 없는 도시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농촌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기회의 땅'이라고 박 씨는 답했다. 

"앞으로는 공간을 뛰어넘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고 큰길에서 살짝만 눈길을 돌리면 농촌이 있어요. 일주일 내내 농촌에 살지 않더라도 4일은 농촌에서 일하고 3일은 도시에서 쉬는 삶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농촌과 도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지속가능한 농촌의 삶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박 씨의 '인턴 생활'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링크)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운영 마을, 운영 기간 등을 조회하고 신청할 수 있다.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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