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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영원히 벽을 쌓고 살 수는 없다

기사승인 2021.09.21  11: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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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기자 ksy14583@naver.com

- [역지사지] '트래블 버블'

   
▲ 김신영 기자

얼마 전 스마트폰 속 사진첩을 정리했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된 사진들을 많이 지웠다. 그럼에도 한 사진 폴더만은 남겨뒀다. 여행 가서 찍은 사진들이다. 일본과 베트남에서 그 나라의 전통 옷 기모노와 아오자이를 입고 찍은 사진,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앳된 얼굴로 웃고 있는 내 모습이 가득했다. 추억이 가득한 사진들이 반가웠다. 흔들린 사진이나 잘 나오지 못한 사진도 있었지만 지울 수 없었다. 언제 다시 그곳에서 찍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사진에 관한 미련을 좀 더 안고 있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을 가기 어려워졌다. 코로나19를 원망하며 뉴스를 보다가  몇몇 나라에서 ‘트래블 버블’을 실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방역이 우수한 지역 간에 여행을 허용하는 협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해외에서 온 입국자들에게 시행하는 2주간 자가격리도 면제한다니, 정말 부러웠다. 트래블 버블을 맺은 국가는 서로 거리가 가까운 호주와 뉴질랜드, 대만과 팔라우, 홍콩과 싱가포르 등이었다. 내가 가고 싶다고 손꼽은 여행지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트래블 버블 체결 소식을 들을 때만은, 그 나라들이 어느 국가보다 멋져 보였다. 

   
▲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출국장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국토부는 지난 6월 30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단체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사이판과 첫 트래블 버블 협정을 맺었다. ⓒ 연합뉴스

호주와 뉴질랜드는 한때 영국 식민지였고 영국 정부체계를 물려받았다. 냉전 당시 미국과 동맹을 맺었으며, 함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다. 대만과 팔라우 역시 중국이 갈라놓기로 마음먹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팔라우는 독립국이 된 뒤, 대만과 공식 수교를 했다. 대만은 팔라우에 여러 지원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쪽에서 타이완 동맹보호법을 제정해 양국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트래블 버블을 처음 도입한 발트3국, 곧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도 마찬가지다. 3국은 총인구 400~600만 명으로 인접해 있다. 지난해 7월 확진자가 한 자릿수가 되자 계약을 체결했다. 1989년 8월 23일 3국의 100만이 넘는 사람들은 비폭력 저항 운동인 ‘발트의 길’ 행사에 동참했다. 벨라루스 민주화를 지지하고 러시아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행사는 3국이 독립하는 데 구심점이 됐다. ‘우수한 방역’, ‘국가 간 가까운 거리’라는 손쉬운 분석 너머로 트래블 버블 체결국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아무리 방역에 철저했다 하더라도 트래블 버블이 실행되면 감염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트래블 버블을 맺은 모든 국가에 집단면역이 형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대만과 팔라우가 4~5일 패키지 여행으로 제한된 트래블 버블을 할 당시, 대만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천여 명이나 됐다. 그런데도 그들은 국경을 열기로 했다. 역사적 공통분모와 연대는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함께할 지렛대 구실을 한다. 관광산업 활성화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종 결단을 하는 데는 국가간 신뢰가 바탕이 됐다. 트래블 협약의 바탕에는 신뢰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돈독한 그들 관계에 견주어 이른바 ‘동아시아 트래블 버블’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 2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는 신속PCR검사가 도입되면 트래블 버블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어났고 한일간에는 위안부·강제징용 문제로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얼마 전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결정은 양국간을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우리가 그들을 견제하는 안보협의체 쿼드에 동참할 것인지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두 국가 관계는 과거사와 주변 압박으로 얼룩진 탓에 신뢰가 탄탄하지 않다.

얼마 전 서울에서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회의가 열렸다. 세 나라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에서 3국 외교관들은 기후변화, 재난대응, 보건, 교육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자고 입을 모았다. 모두 좋은 이야기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생긴다. 맞닥뜨린 문제는 제쳐 두고 입에 발린 소리들을 한 것이다. 세 나라가 진정으로 협력하려면, 새로운 의제를 꺼내기 전에 현안부터 해결해야 한다. 상대방을 인정할 때 아시아권 트래블 버블도 논의해볼 수 있다. 

한일간의 국가 관계는 냉랭하지만 민간, 특히 젊은 층에서는 적대감이 많이 희석되고 있는 듯하다. 지난 8월 <아사히TV> ‘하토리 신이치 모닝쇼’는 일본 MZ세대의 도한놀이(渡韓ごっこ)가 유행이라고 소개했다. K-팝과 드라마에 매료된 청소년들이 자국 호텔 방에서 한국에 건너간 것처럼 한국산 음료수나 양념치킨 같은 음식을 즐기며 인증샷을 올리는 놀이다. 이웃과 영원히 벽을 쌓고 살 수는 없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국제관계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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