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⑮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작년 여름 긴 장마와 태풍, 산사태, 홍수 등 기후재난은 모든 곳을 쓸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살던 울산에도 태풍이 찾아왔습니다. 태풍은 온 동네의 창문을 다 깨버렸고, 전봇대를 무너뜨렸고, 신호등은 꺾이게 했고, 정전을 하루 종일 일어나게 만들었으며, 차들을 파손시켰고, 심지어는 원전의 가동을 멈추게 했습니다. 저는 그날 태풍 하나로 우리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제가 살아가는 곳은 전혀 안전하지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 속에서 무너질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습니다. 저는 돈도 없고. 사회적 권력도 없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기에 기후위기가 다가온다면 저는 가장 먼저 쓸려갈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17일 오후 7시 여성환경연대(상임대표 이안소영) 주최로 열린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에서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울 창천동 원엠스페이스(1M SPACE) 현장과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40여 명이 함께한 이날 행사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의 홍승은 작가 사회로 진행됐다. 윤 활동가는 “기후위기는 평범한 모두가 약자가 되는 위기”라며 “우리에게는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범한 모두를 약자로 만드는 기후위기  

▲ 청소년기후행동의 윤현정 활동가가 에코페미니스트 컨퍼런스에서 기후위기의 당사자로서 행동에 나선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여성환경연대

윤 활동가는 “처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6일 동안 거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을 때 어른들은 ‘기특하다’ ‘대견하다’고 하면서도 동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시위는 청소년이 하기에 과격하니 학교에서 환경 수업을 듣거나 환경 동아리 활동을 하라’고 충고하는 어른들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는 누군가의 ‘미래’도 ‘희망’도 아니다”며 “(기후위기의) 당사자이기에 사회구조적 변화, 정치와 정부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활동가는 청소년기후행동이 ‘기후시민의회’를 기획하고 있다며 당사자들이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공론장에는 늘 전문가 혹은 돈이 많은 사람들 아니면 권력이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다”며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텃밭 교육과 농촌 여성이 만드는 희망 

조진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은 ‘텃밭이 미래의 교실이다’ 주제의 발표에서 ‘교육 농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학교 교육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절한가라는 의문에서 교육농 협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며 학교에 텃밭과 텃논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보는 교육을 실천방안으로 제시했다.

“우리는 매일 세끼 식사를 먹고 있죠. 그 식사가 오는 땅, 그 땅에서 일하는 농부, 그리고 농부가 살고있는 농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농업을 가르치지 않으면 우리 세상이 지속 가능하지 않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조 위원장은 “리사이클 교육이나 제로 웨이스트 교육은 소비자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한계가 있다”며 “생태적인 시민성을 함양할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식당에서 먹고 있는 삼겹살이 운동장 폭염과 연관되어 있다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제6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컨퍼런스: 여성X기후위기’에 나온 강연자들. 왼쪽부터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조진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 이경은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신활력사업팀장, 최기영 옷을키우는목화학교 손작업자, 소란 전환마을은평 대표. © 여성환경연대

이경은 충남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신활력사업팀장은 ‘농촌은 여성에게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한 농촌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는 제한돼 왔지만, 금산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청년 커뮤니티의 문화예술 활동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안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만든 커뮤니티가 협동조합을 구성해 행사기획, 공간운영, 상품개발 등의 활동을 했고, 정부 지원을 받아 마을만들기 등 사업을 지원하는 중간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이들은 여성주의적인 기조를 명확히 하면서 지역의 정책 활동에 참여한다”며 “청년 커뮤니티의 목소리가 커지면 농촌은 청년 여성에게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옷을 사고 버리는 것을 다시 생각하다 

“목화솜을 만지고 놀면서 ‘슬로 패션(slow fashion)’을 경험하다 보면 옷을 사고 버리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될 겁니다.”

네 번째 연사 최기영 씨는 목화에서 옷을 키우는 ‘목화학교’ 교장이다. 취미로 농사를 짓고 바느질을 하던 지인들과 ‘우리 옷은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문답을 나누다가 2018년 경기도 군포에 학교를 설립했다. 직접 목화를 키우고 실을 뽑아 옷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들도 옷이 만들어지는 수고로움을 깨닫길 바랐다. 옷 한 벌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체험하면 쉽게 소비하는 패션 경향이 바뀔 것이라 기대했다. 실제로 최 씨 자신부터 바뀌었다. 그는 “옷이 소중해지자 다른 사물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며 “물건 하나하나를 아껴쓰고 있다”고 말했다.

▲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패스트 패션’ 대신 ‘슬로 패션’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목화학교 최기영 교장. © 여성환경연대

최 씨는 유행에 따라 빨리 만들고 쉽게 버리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산업에서는 옷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저가 의류를 대량 생산해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 산업은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힌다. 최 씨는 지구에서 한 해 버려지는 옷이 330억 벌에 이른다며 인류가 불필요한 것을 사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기후 농부’ 

마지막 연사로 나선 전환마을은평의 소란 대표는 “지속 가능한 농법을 통해 인류 문명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스로를 ‘기후 농부’라고 부르는 그는 논밭을 갈고 김을 매는 ‘경운’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양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논밭을 갈면 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땅에 구멍만 내서 씨를 뿌린다는 것이다. 그는 “이 방법으로 지구에 배출된 탄소의 3분의 1을 다시 흙 속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전환마을은평의 소란 대표가 경운을 하지 않는 농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여성환경연대

이런 농법을 영구적(permanent)인 경작(cultivation)이라는 뜻에서 ‘퍼머컬처’라고 하는데, 땅을 갈지 않으면 땅속에 미생물이 증가하고 뿌리들이 발달하면서 땅 스스로 작물을 먹여 살린다고 소란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공동체 텃밭에서 파슬리 같은 허브 종류나 상추, 약초를 잘 재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란 대표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각자도생했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세계 마을들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도로, 공원, 학교의 공유지를 모두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하는 숲밭(forest garden)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농사 전환을 시작으로 문명의 대전환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로 돌보고 자연과 재연결되는 신인류가 바로 에코 페미니스트”라고 강조했다.


편집 : 김병준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