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미국드라마 '볼드 타입(The Bold Type)'

갓 입사한 신입사원 이야기는 아니다. 2년 이상 보조 업무를 맡으며 '신입' 딱지는 뗐지만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사회초년생 이야기다. 주인공 세 명은 뉴욕의 여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칼렛'에서 일한다. 드라마는 제인 슬론이 기자로 승진하고 처음 출근하는 날로 서막을 연다. 제인 슬론은 과거 4년 동안 보조 기자로 일했다. 제인 슬론은 승진했지만 서턴 브레이디는 임시 대체 인력으로 회사에 들어온 후 3년째 상사를 돕는 비서직으로 일하고 있다. 캣 에디슨은 2년 동안 보조 업무를 맡다가 소셜미디어팀 팀장이 됐지만 팀원 없이 혼자 일한다. <볼드 타입>(The Bold Type)은 20대 중반 여성 세 명이 스칼렛에서 일하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 <볼드 타입>의 세 주인공, 캣 에디슨(왼쪽), 서턴 브레이디(가운데), 제인 슬론. 영화 <볼드 타입>은 경험도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대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세 여성의 성장기다. ⓒ <볼드 타입> 갈무리

사회초년생의 아지트, 옷방

주인공 세 명은 문제가 생기면 이메일로, 귓속말로 옷방("Fashion Closet!")을 외친다. 옷방은 매거진에 실릴 옷, 가방, 액세서리 등을 보관하는 장소다. 세 명은 옷방에 둘러앉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서로 의견을 나눈다. 서턴이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으로 얼떨결에 출신학교를 속였을 때 캣은 상사가 먼저 오해한 거라 괜찮다고 하고, 제인은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제인 기자가 취재원 섭외가 어려워 기자 신분을 숨기고 싶다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캣과 서턴이 단호하게 윤리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캣이 소셜미디어에서 악플러에게 성적 괴롭힘을 당할 때는 반응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캣을 안아준다. 세 명은 일터에서 알게 된 동료 사이지만, 고민을 들어주며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해 서로가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다. 결정은 문제를 가지고 온 당사자가 한다. 설령 그 결정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드라마는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제인은 신선한 시각을 담은 기사로 독자와 편집장에게 인정받고, 캣은 팀원을 이끄는 '진짜' 팀장이 된다. 서턴은 어릴 때부터 꿈꿨던 패션 부서에서 일자리를 얻고 성과를 낸다. 세 명에게 옷방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들의 성장 뒤에는 옷방이 있었다.

솔직하게 터놓는 페미니즘 담론

'볼드(Bold)'는 보통 글자의 굵고 진한 상태를 뜻하는데 '두려움 없는, 대담한'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드라마 내에서 스칼렛은 수십 년간 페미니즘 담론을 '대담하게' 이끈 매거진이다. 스칼렛에서 일하는 <볼드 타입>의 주인공들도 여성이라서 겪는 일을 주체적으로 다루며 부당한 일에는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낸다. 세 명은 여성으로서 겪은 개인적 경험을 스칼렛의 콘텐츠로 녹여내는 솔직함과 용기를 지녔다. 제인은 엄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신 경험이 있어 유방암 관련해서는 대화도 하기 싫어한다. 두려움에 유방암 유전자 검사를 회피하던 제인은 스칼렛 독자인 여성에게 꼭 필요한 정보라는 생각에 직접 유방암 유전자 검사를 받고 이를 기사로 쓴다. 캣은 일하는 중 알게 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낸다. 서턴은 비현실적으로 마른 모델의 몸에 맞는 옷보다 평범한 체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든다.

<볼드 타입>은 페미니즘 담론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제인은 유명하지 않은 어린 모델을 골라 가학적으로 촬영하는 여성 사진작가 패멀라 돌런을 고발하는 기사를 쓴다. 패멀라 돌런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제인이 쓴 기사를 '가짜 페미니스트 집단'이 쓴 기사라고 비난한다. 그러던 중 제인은 자신이 만드는 스칼렛 지면에 미성년자 모델을 고용해 찍은 사진이 실렸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편집장은 에이전시가 모델을 파견하고 해당 모델이 촬영에 적합하면 고용하는 것이 관용이라고 말한다. 제인은 14살 소녀 모델을 성인 여성처럼 보이게 한 스칼렛이 '가짜 페미니스트 집단'으로 비춰질까 염려한다. 편집장은 패멀라 돌런을 고발하기에 앞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른다. 스칼렛이 페미니즘 담론을 다뤄왔지만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미의 기준을 제시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편집장은 곧 나올 매거진에서 모순적 메시지가 담긴 지면을 모두 뺀다. 인쇄소에 넘길 때까지 17시간만 남은 상황에서 한 결정이다. 이후 상황은 드라마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중요한 점은 스칼렛이 페미니즘을 대결의 도구로 쓰지 않고 대화의 장으로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 <볼드 타입>의 주인공들이 1인 시위를 하는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장면이다. 세 명은 여성이라서 겪는 부당한 일을 외면하지 않는다. ⓒ <볼드 타입> 갈무리

대담하게 시도하고 실수로 성장한다

<볼드 타입>은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편집장이었던 조안나 콜스의 실제 커리어와 삶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코스모폴리탄》은 20~30대 젊은 여성을 위한 패션 매거진으로 조안나 콜스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편집장으로 일했다. 그는 2013년 올해의 편집장으로 선정됐고, 2014년에는 《코스모폴리탄》이 저널리즘 상을 받았다. 조안나 콜스는 드라마 <볼드 타입>에 총괄 프로듀서로 직접 참여했다. 그는 《그라치아》(GRAZIA)와 인터뷰에서, 편집장으로 일할 때 직원들이 모든 일에 성공할 수는 없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보길 장려했다고 말했다. 실수로부터 배우는 한 결과가 어떻든 괜찮다는 것은 조안나 콜스가 매거진에 다니며 배운 점이기도 했다. 조안나 콜스는 <볼드 타입>에서 '실수하지만 성장한다'는 교훈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멘토가 필요하지만, 멘토가 꼭 상사나 연장자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최고의 멘토들은 동료였다며 또래 집단에서 서로 조언을 얻고 도우며 각 세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안나 콜스의 바람은 <볼드 타입>에 잘 녹아 있다. 세 여성은 회차와 시즌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각자 과거에 받은 상처, 현재 닥친 문제,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지만, 결국엔 한 발씩 앞으로 내디딘다. 그 한 발을 내딛기까지, 세 명에게 서로가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옷방을 외치면 두 사람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옷방으로 가 마음을 나누고, 여성이라서 겪는 부당한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한다. 아직은 실수가 더 많은 시기이지만 실수 속에서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끝끝내 해낸다. 세 여성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는 시즌 5까지 계속되는데,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즌3까지만 볼 수 있다.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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