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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법정에 세워선 안 된다

기사승인 2021.09.14  11: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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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 기자 beautifulday9577@gmail.com

- [단비발언대]

   
▲ 임예진 기자

믹 잭슨 감독의 2016년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유대계 역사학자 데버라 립스탯(레이첼 와이즈 분)이 데이비드 어빙과 홀로코스트를 두고 벌인 실제 법정 다툼을 다룬다. 립스탯은 1993년 <홀로코스트 부정하기>라는 책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어빙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라고 불렀다. 어빙은 립스탯과 그 책을 출간한 펭귄출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영국 법원에 고소했다.

어빙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이 대량학살 장소였다는 문서상 증거가 없으므로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데보라와 출판사 측은 홀로코스트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대신 어빙의 논리적 허점과 모순을 파고들어 그가 역사를 왜곡하는 거짓말쟁이라고 몰아갔다. 치열한 공방 끝에 2000년 4월 11일 선고 공판에서 판사는 어빙이 네오나치즘을 조장하는 극우주의자들과 협력해 역사적 증거를 왜곡하고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 영화 <나는 부정한다> 포스터. 홀로코스트 연구자 데버라 립스탯은 공격적인 홀로코스트 부인론자 데이비드 어빙에 맞서 진실을 지켜낸다. ⓒ 다음 영화

어빙과 비슷한 논리를 펼치는 역사 부정론자들이 곳곳에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발포 명령서를 찾지 못했으므로 전두환에게 광주시민 학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신군부 세력, 일본군의 관여를 증명할 공식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이 대표적이다. 국회의원들의 5.18 관련 망언, 북한이 ‘광주’의 배후라는 지만원의 5.18 왜곡, 2019년 식민지 근대화론과 강제동원 부정론을 펼친 책 <반일 종족주의>, 올해 3월 미국 하버드 대학의 램지어 교수 논문 사태 등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역사부정죄 도입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2005년부터 식민기억 왜곡, 반인륜범죄 및 민주화운동 부정 등을 처벌 대상으로 한 법안은 수차례 발의됐다. 지난해에는 정기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5.18에 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형사처벌할 수 있게 됐다. 지난 5월에도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역사왜곡방지법안’을 발의했다. 독일의 ‘아우슈비츠 거짓말법(독일 형법 제130조 국민선동죄)’처럼 법적 제재를 통해 역사 왜곡 행위 및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거나 고무하는 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일제강점기 시대를 찬양하는 사람은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법정에 세우면 과거는 논쟁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사법 처리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역사 왜곡 여부에 관한 일차 판단은 검사가 맡고, 역사의 최종 진실은 판사가 결정하게 된다. 검찰과 법원의 관제 기억이 과거를 독점하는 순간 제도화한 기억의 빈틈을 파고드는 ‘대항 기억’의 공간은 위축된다.

역사왜곡처벌법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이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아우슈비츠 거짓말법에도 그늘은 있다. 법제화를 위해 보수파의 협력이 절실하던 법안 추진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동유럽 점령지에서 추방당한 독일인들의 고통을 부정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못 박았다. 나치가 득세하던 시절에는 가해자이던 이들이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동등한 역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2018년 제정된 폴란드판 아우슈비츠 거짓말법은 폴란드가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묻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기회를 제공했다.

   
▲ 역사를 소송으로 풀기 시작하면 많은 쟁점이 내재한 근현대사의 모든 사건들이 정치적 변화에 따라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unsplash

소송은 사회의 다양한 논점을 합법 대 불법, 승자 대 패자라는 이항대립으로 몰아간다. 특정 역사왜곡 표현에 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이 해당 표현의 옮음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무죄가 선고되면 해당 표현의 정당성이 공인된 것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 역사의 사법화보다는 공론장의 생산적인 반론 제기와 문화적 제재가 활발해져야 한다. 리처드 에반스 교수는 어빙의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실증적으로 반박한 책 <히틀러에 대해서 거짓말하기>를 출간했고,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교수는 <신친일파-반일 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역사는 법정이 아니라 학문의 장에서 다퉈야 한다.

데이비드 어빙은 2005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가 홀로코스트를 부정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이 사건을 두고 재판에서 승리한 데보라 립스탯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열을 통해 전투를 승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와 투쟁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와 진실이다."


편집: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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