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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과 추적단 불꽃, ‘우리’의 이야기

기사승인 2021.09.08  17: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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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인 기자 2015veritas@naver.com

- [마음을 흔든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추적단 불꽃 지음/이봄/1만 7천 원

2020년 3월,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던 조주빈이 검거됐다. 그보다 두 해 앞선 2018년 메신저 앱 텔레그램에는 ‘n번방’, ‘고담방’, ‘박사방’ 등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대화방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이용해 그들을 협박하고, 지속적으로 성착취 영상을 찍도록 강요했으며, 이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적단 불꽃’은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하고 보도했다. 기자를 꿈꾸던 대학생 ‘불’과 ‘단’(이상 가명)은 2019년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을 준비했다. 그러다 텔레그램에 존재하는 ‘n번방’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추적단 불꽃이 n번방 성착취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고 겪은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텔레그램 성 착취물 추적기가 담겼다. 2부에는 ‘불’과 ‘단’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겪었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 3부에는 n번방 이후에도 지속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관한 제언이 담겼다. 

   
▲ 지난해 9월,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n번방과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취재 기록을 담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출판했다. ⓒ 이봄

n번방을 알게 되다

이 책의 저자이자 n번방 사건의 최초 취재자인 ‘불’과 ‘단’은 20대 중반의 여성이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했다. 자신과 주변 지인들이 범죄자들의 타깃이 되는 일을 미리 막으려고 가명으로 기사를 썼다. 취재의 출발은 ‘불법 촬영’에 대한 그들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한 첫 날 인터넷 검색을 한 지 10분 여 만에, ‘AV-SNOOP’이라는 블로그에 올라온 ‘번호방’ 후기를 보게 됐다. 해당 블로그에는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가는 링크가 첨부돼 있었는데, 이곳에서 ‘불’과 ‘단’은 n번방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 추적단 불꽃이 파악한 n번방 진입 경로와 각 방의 참가자 숫자다. 불꽃이 파악한 n번방 이용자 수는 8000여 명에 이른다. ⓒ 추적단 불꽃

추적단 불꽃이 알게 된 n번방 진입 경로는 이렇다. 고담방에서는 불시에 ‘파생방’으로 입장할 수 있는 링크가 올라온다. 파생방의 방장들은 n번방으로 갈 수 있는 링크를 주겠다며 조건을 달았다. 몰카(몰래카메라)를 올리거나 희귀한 야동(야한 동영상)을 올리는 것이 주요 조건이었다. 추적단 불꽃은 프로필 사진을 일본 애니매이션으로 바꾸라는, 비교적 쉬운 조건을 내건 참가자를 찾았고, 이를 통해 텔레그램에 가입한 지 다섯 시간 만에 8개의 ‘n번방’ 중 1번방에 입장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n번방 입장과 동시에 눈에 들어온 것은 어린아이들의 나체였다. 고담방과 파생방 회원들이 수없이 말하던 ‘노예’였다. 대부분 중학생 혹은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도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행위는 기본이고 칼로 몸에 ‘노예’라고 새기거나 공중화장실이나 야외공간 등을 나체로 활보하기도 했다.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27쪽) 

텔레그램은 2013년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메신져 앱이다. ‘개인정보를 보호받으며 이야기할 권리(Talking back our right to privacy)’를 모토로 만들어진 앱은 대화에 암호를 설정할 수 있고, 메시지가 서버에 저장되지 않도록 삭제할 수 있는 등 보안성이 뛰어나다.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내에서 계정을 추적하기도 힘들다. 디지털 성 착취 범죄자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한 이유다. 

‘갓갓’(문형욱·24세)이라고 불리던 방장을 포함한 n번방 가입자들의 범죄 수법은 이랬다. 먼저 트위터의 ‘일탈계(일탈하는 계정의 줄임말. SNS에서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계정)’를 운영하는 여성들의 계정을 해킹한다. 이후 경찰을 사칭해 여성들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 정보를 캐낸 뒤, 이를 빌미로 여성들을 협박해 나체 사진 등을 요구한다. 범죄자들은 이렇게 얻은 사진과 영상들을 서로 n번방에 올리고 피해 여성들을 농락했다. 

저널리스트이자 아웃리처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며 ‘불’과 ‘단’은 고민했다. 이 끔찍한 사안을 기사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사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지, 2차 피해를 불러오지는 않을지에 깊이 고민했다. 결국 기사를 썼다. “2차 피해가 두려워 눈앞의 1차 가해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취재해 수집한 증거물과 알아낸 사실을 <한겨레>, <국민일보> 등 대형 언론사에 제공했다. 대형 언론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면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보다 빨리 공론화되고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과 ‘단’의 협조로 2019년 11월, <한겨레>는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의 실체를 드러낸 기사를 보도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은 취재 현황을 강원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공유하며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가해자들을 수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피해자임을 알지 못하던 영상 속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하고, 가해자를 특정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 ‘불’과 ‘단’은 2020년 9월부터 유튜브 채널 ‘추적단 불꽃’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에는 기사에는 모두 담지 못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관련 정보와 여전히 멈추지 않는 이들의 활동이 영상으로 만들어져 올라온다.  추적단 불꽃 유튜브 채널 갈무리

성 착취물을 영구 삭제하고,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의 노력은 공모전에 기사를 제출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성폭력 상담센터나 지자체가 주최한 자리에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추적단 불꽃은 어느 순간 자신들을 ‘저널리스트’에서 ‘아웃리처(Outreacher, 지역 주민에 대한 적극적인 원조와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디지털 성착취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

국민일보는 2020년 3월, ‘불’과 ‘단’이 n번방을 따라간 과정을 ‘n번방 추적기’라는 기사로 내보냈다. 언론과 사회가 본격적으로 n번방과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불’과 ‘단’은 기성 언론의 본격적인 참여로 인해 이 문제를 드디어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검거된 후, 언론의 관심은 조주빈을 포함한 가해자들이 하는 말과 그들의 서사에 집중됐다. 조회 수를 위한 ‘단독’과 ‘속보’ 경쟁도 지속됐다. ‘불’과 ‘단’은 절망했다. ‘n번방을 홍보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일탈계를 운영하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을지’, ‘기존 피해자들에 대한 2차 피해가 벌어지지 않을지’ 등에 대한 그들의 고민과 우려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 조주빈 검거 후 일부 언론은 가해자 서사에 힘을 싣고, 사건의 본질을 흐렸다. ⓒ 네이버 뉴스 갈무리

2020년 5월 n번방 운영자 갓갓이 검거된 후, ‘불’과 ‘단’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보도하는) 최악 기사가 너무 많아 (가장) 최악의 기사를 뽑기 어려울 정도”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갓갓 피해자들의 신상을 특정하는 기사도 있고, (일부 기사에서) 갓갓의 범죄를 여전히 ‘몹쓸 짓’이라고 표현도 하는데, 그건 범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언론 내부의 성범죄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그런 지침은 폼으로 있는 것인가. 왜 기자들이 그걸 안 보는지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기사 쓸 거면 출근을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독, 최초보도보다 중요한 것

추적단 불꽃은 ‘최초 보도자’라는 명예나 사회의 인정을 바라지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촉구해 변화를 이끌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그들의 주요 목적이었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불’과 ‘단’은 아래 성명을 통해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다음은 불꽃이 2020년 3월 23일 낸 성명 중 일부다. 

“안녕하십니까. 추적단 불꽃입니다. 저희는 대학생 두 명으로 구성된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범죄 추적단’입니다. (중략) 불꽃은 ‘최초 보도, 신고자’라는 타이틀을 지키려고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습니다. (중략) 불꽃은 앞으로도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며, 텔레그램 기반 디지털 성범죄의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더불어 피해자 지원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는 디지털 성범죄로 분노하고 불안한 여성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불’과 ‘단’은 조주빈 검거 이후 취업과 유학 등 미래를 준비하던 일상을 잠시 내려놓았다. ‘단’은 아르바이트와 공부 모임을 나가지 않았고, ‘불’은 다니던 학원을 잠시 그만뒀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n번방의 목격자’로서 할 일이 남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21년 3월부터 이들은 다시 한 번, 끝나지 않은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를 취재했다.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르포 기사와 인터뷰, 시, 소설, 연대사를 묶어 <추적단 불꽃 - 우리, 다음>이라는 매거진으로 펴냈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불꽃의 진심은 여전하다. 

   
▲ 지난 6월 추적단 불꽃은 n번방 사건 이후 한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르포 형식으로 취재해 매거진으로 만들었다. ‘우리, 다음’이라는 이름의 매거진은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들어졌고, 지금은 펀딩이 마감된 상태다. ⓒ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추적단 불꽃은 책을 쓰는 동안에도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멈추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그들의 말처럼 권력에 의한 성범죄가 반복됐고, ‘웰컴 투 비디오’의 손정우는 미국 송환이 거부돼 고작 1년 6개월 형을 살고 나왔으며, 고등학교 교사는 교내에서 불법 촬영을 하다 걸렸다. 그럼에도 불꽃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는 여성들의 발자취가 조금씩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연대는 시작된다. ‘제 1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보도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추적단 불꽃의 기사 링크를 아래에 첨부한다.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텔레그램 불법 활개-(취재팀 불꽃)

100자평

잊혀져 가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책. 취재의 기본은 문제 해결을 바라는 기자의 진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집 : 이강원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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