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현 대표)
주제 ② 지역∙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일

“혹시 군 단위 출신 학생 있나요?”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는 지난 5월 6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지역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관한 두 번째 주제 강연을 질문으로 시작했다. 세 학생이 손을 들며 ‘여주’ ‘진안’ ‘서천’ 각 출신지를 밝혔다.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서천이라고 이야기합니까?” 학생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대전 옆에 있는 동네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황 이사는 고향을 묻는 대화 속에 지역의 현실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와 지역 사이 위계가 우리 무의식 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탓이다.

▲ 황민호 상임이사의 두 번째 주제 강연에서는 12개 질문이 쏟아질 만큼 학생들 관심이 높았다. ⓒ 김정산 기자

지역 비하 내면화하는 아이들

황 이사는 옥천에서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지역의 교육 문제를 지적했다. 면 단위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시설은 ‘주민센터’ ‘학교’ ‘식당’ 등이 전부다. 그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즐길 시설이 없어 컴퓨터와 휴대폰에 빠져 지낸다”고 말했다. 이런 불균형은 아이들 마음 속에 지역에 관한 회의를 남긴다. 불편한 지역을 떠나 도시민이 되는 것을 인생 숙명처럼 여기게 된다. 지역에 남아있어야 보탬이 될 아이들을 등 떠미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예전 같으면 당연하다고 여기던 “경축, 졸업생 000 서울대 합격” 같은 현수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인용해 옥천고등학교에 걸린 현수막을 비판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성과주의에 빠진 지역들은 도시로 유학을 떠난 학생들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마련했다. 그는 “지역에 남아서 보탬이 되는 아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지자체가 청년을 유치하려고 혈안인 상황에서 지역을 떠나야 성공한 것이고, 지역에 남아있으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회 풍토는 심각한 모순이다.

▲ 학교에 걸린 합격 현수막이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일부 지역이 조례를 개정해 교육청의 관리 감독을 의무화했다. ⓒ KBS

그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보다 도시와 지역의 불균형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역에 만연한 문제들이 아직 논의조차 안 되는 것은 그만큼 모든 관심이 도시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모적인 논쟁들이 조금이라도 지역에 재분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 정부 예산에 집중된 관심을 조금만 주변으로 돌리면, 당장 옥천군 5천여 억 원 예산이 필요한 곳에 투입될 수 있다. 그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했다.

지역 착취하는 메가시티

지난 2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을 점검했다. 이는 부산·울산·경남을 한 생활권으로 연결해 인구 1000만 명 이상 제2 수도권으로 만드는 지역균형발전 뉴딜 정책이다. 황 이사는 이런 거점도시 중심 사업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숫자에 불과한 인구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지역에 살아가는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 21대 총선 이후 1년여 만에 부산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 행사에서 현장 상황을 점검했다. ⓒ KBS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중앙 위주의 효율성을 교육받는다. 역사 책에 따르면 중앙집권국가는 선진이고, 부족국가는 후진이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강력한 왕권은 국가 발전의 요체로 여겨졌다. 지역 주민들도 이런 인식 속에서 메가시티가 만드는 환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도시와 지역이 하나의 광역자치구로 연결된다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정책이다. 지역에 모자란 시설과 재원을 광역도시가 적재적소에 채워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메가시티는 거점도시의 연합이다. 황 이사는 ‘식민지’라는 표현을 쓰면서 연합체에서 힘을 키운 거점도시는 모기처럼 주변 지역 자원을 마구잡이로 흡수한다. 결국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 지역에서 편히 살고 있는 주민들을 거점도시와 그 주변부로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거점도시를 설정하는 것은 이미 도시와 지역의 위계를 인정하는 꼴이다. 그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처럼 지역자결주의가 필요하다”면서 지역 공동체의 자립성을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이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 공식 승인한 ‘보충성의 원리’를 예로 들었다. 이는 상위의 정치 공동체 개입을 최소화하고, 하위의 의사결정권을 존중하는 원리다. 비유하자면 충청도는 12개 시∙군의 결정을 존중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만 보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도와 시∙군은 연합의 네트워크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도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시∙군을 아우른다. 그는 도의 역할을 줄여 시∙군이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구가 전부는 아니다

성장과 발전에 중독된 지자체들은 인구 늘리기에 급급하다. 대표 매뉴얼은 산업단지 유치와 관광지 개발이다. 황 이사는 “산업단지를 유치해도 대부분 도심에서 출퇴근을 하고, 관광지도 투입 예산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며 “균형발전을 넘어서 각 지역의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역이 하나의 살아있는 동심원이 되어 거대한 생태계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는 주민 스스로가 지역을 다스리는 것이고, 자급은 지역민이 쓸 재화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도시는 먹거리 등 각종 재화를 자급할 수 없기 때문에 지역 착취의 주체가 된다. 그는 지역에 설치한 대청댐을 예로 들며, 도시가 지역을 착취하는 구조를 설명했다. 대전 도심에 물을 제공하려고 댐을 설치했지만, 정작 수몰민이 된 것은 옥천군민이었다. 지금도 옥천군 총면적의 83.8%가 특별대책지역, 24%가 수변구역으로 설정돼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지역은 도시의 편의성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 1980년 대청댐 건설로 형성된 대청호가 국가 공식 명칭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옥천군은 이 호수 명칭을 ‘옥천호’로 지정해줄 것을 건의했다. 대청호 상류 지역이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유역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넓기 때문이다. ⓒ 옥천군

거대도시에 몰린 인구를 모조리 끌고 가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인구 늘리기는 환상에 불과하고, 개인의 삶이 어떤지가 더 중요하다. 그는 “동심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는 데만 급급하다”면서 “동심원을 여러 개 만들어 각자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안에서 자치와 자급, 순환과 공생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지역공동체는 살아날 것이다. 그는 “지역은 작기 때문에 변화하기 쉽고, 언젠가는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쉬어 가던 중 보인 것

황 이사는 지난 2012년 10년 간 몸 담고 있던 <옥천신문>을 떠나 옥천살림에서 3년 동안 공공급식 배달 일을 했다. 다시 신문사로 복귀해 제작실장을 거쳐 지금은 상임이사로 일한다. 그는 당시 공공급식 배달로 옥천 방방곡곡을 누비며 기자로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황 이사는 “10년 동안 기자로 살면서 옥천을 다 안다고 자부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움막살이 하는 노인이나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아직 못 가본 곳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기자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은 뒤 오히려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주민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니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배달하며 지낸 3년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기자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고 다짐한다”며 “배달하며 맑아진 머리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배달 생활은 그가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황 이사는 “언론은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말이 되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글이 돼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일상처럼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옥천군민 33.8%는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며 “그들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지만 유령처럼 떠돈다”고 말했다. 그들의 자리를 찾아주고 목소리를 내주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옥천신문>이 지역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도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라 믿는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나종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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