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언론과 뉴스 소비자 ‘화해 계기’로 만들어야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다. 언론의 정치 보도 비중도 점점 늘어간다. 늘어나는 대선 보도는 그만큼 시청자와 독자에게 유용한 정치 정보를 전해주고 있을까? 과거 양상을 보면 대선 보도는 극심한 진영 대결 분위기에 너무 쉽게 휩쓸린다. 신뢰가 낮으니 진영 대결에 쉽게 휩쓸리고, 반대로 그런 뉴스를 만드니 신뢰가 떨어지는 악순환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다.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선 보도를 잘 해내면, 뉴스 소비자의 언론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가장 큰 정치 일정인 대선을 앞두고 언론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관훈통신> 8월호에 실린 글을 관훈클럽의 양해를 얻어 단비뉴스 독자들을 위해 게재한다.

▲ 심석태 교수

한국 언론 시장이 정파성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은 해외에도 소문이 나버렸다. 지난해 발표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조사 때문이다. 이 조사를 보면 한국의 뉴스 소비자들은 자신과 같은 성향의 뉴스를 주로 본다. 언론의 독립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언론의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를 점수로 매기라고 했더니 싱가포르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였다. 심지어 언론이 권력 감시를 한다는 것 자체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언론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하나일 뿐이니 오히려 언론이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랫동안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온 부산대 조항제 교수는 이런 상황이 초래된 원인을 우리 사회의 언론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찾는다. 과거에는 뉴스 소비자들이 언론에 ‘정보와 가교’의 역할을 요구했다면, 지금은 언론이 자신들에게 ‘공감과 유대’를 보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나 옳고 그름을 엄밀하게 따지려 하지 말고 일단 내 생각을 이해해주고, 편을 좀 들어주라는 요구인 셈이다.

정파적 언론과 정파적 소비가 만든 언론 불신 구조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 결과와 조 교수의 분석을 동시에 음미해보면 많은 궁금증이 풀린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강한 정파성이 언론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소비 방식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언론이 어떤 사실을 보도하면 그 사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했다는 것’이 화제가 되고, 보도의 의도를 따지며 언론 보도를 일종의 정치적 사건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어떤 보도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쪽이 항상 존재한다. 보도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도 한국에서 ‘언론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낮게 나오는 것이 꼭 언론의 품질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 지난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40개 나라 가운데 40위로 5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이는 정파성 짙은 한국의 언론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KBS

이런 상황에서 20대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대선이 미치는 영향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언론이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얘기하지만 대선이 언론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실제로 한국 언론에 찍힌 여러 낙인들 중에는 대선과 관련된 것이 많다.

방송이 특정 후보의 유세 장면을 청중이 적어 보이도록 편집한 일도 있었다. 심지어 유세장의 전모가 보이는 장면 사용을 막기도 했다. 사실상 특정 후보 진영과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고, 정치 공작 수준의 보도를 하기도 했다. 언론이 대선 후보들과 주권자인 국민 사이에서 ‘정보와 가교’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대놓고 직접 정치에 나선 것이다. 입으로는 공정과 권력 감시를 외치면서 시청자와 독자를 속인 것이다.

지금 언론의 공정성이니 독립성이니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려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언론의 이런 흑역사가 바닥에 깔려 있다. 아무리 언론이 공정한 척하며 기사를 써도 이미 대부분의 시청자와 독자는 특정 언론의 보도를 특정한 정파적 이해관계의 틀 속에서 소비한다. 언론이 근엄한 어투로 특정 후보의 문제를 질타해도, 사람들은 그런 보도를 어느 쪽을 편들고 반대 쪽을 흠집내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보도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은커녕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차피 특정 언론의 보도에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은 그 언론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다. 거칠게 표현해서, 내가 지지하지 않는 당의 기관지라고 생각을 정리해버리면 거기 실린 기사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칭찬하는 보도 또한 별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도대체 저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대선 관련 보도들은 다 무슨 소용이 있는 걸까.

최근 일련의 큰 정치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서 언론 자체의 정파성과 시청자·독자의 정파적 소비 성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소비자는 언론이 정파적이어서 못 믿겠다고 불평하고 언론은 소비자가 자기편을 들지 않는 언론을 공격한다며 불평한다. 이렇게 언론과 소비자는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은 언론과 소비자 모두에게, 다시 말해 사회 전체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을 믿든 안 믿든, 독자가 정파적으로 언론을 소비하건 말건, 언론이 정보 유통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온갖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통되는 정보들도 실상은 제도권 언론이 생산한 기사에 몇 줄 의견을 덧붙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이번 대선 보도를, 언론과 소비자가 화해하는 계기로 삼을 수는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먼저 언론인지 대선 캠프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과거의 대선 보도 관행을 끊고, 소비자도 언론 보도를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기관지나 대변인 취급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언론으로서는 소비자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한다.

▲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대선 보도가 언론과 소비자가 화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Pixabay

자극적 표현 자제검증 안 된 흑색선전 걸러내야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자극적인 표현, 감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비록 정치권에서 원색적인 표현이나 인신공격이 난무하더라도 그것을 따옴표 안에 그대로 담아 전달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흑색선전이나 무책임한 의혹 제기의 수단이 되는 것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식으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스스로 플레이어가 되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는 몇몇 언론을 제외하고, 지금 이런 방향과 정반대의 보도를 하고 있는 언론이 더 많다. 지금 하고 있는 보도에 문제의식이 안 생기는 것은 그만큼 그런 보도 방식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특히 조직 전체에 스며 있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런 습관을 바꿀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지금의 언론 상황도 바꿀 수 없다.

대선은 우리처럼 정치에 민감한 사회에서 가장 큰 이벤트다. 이런 이벤트를 잘 활용한다면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지금 당장, 대선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언론계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관훈클럽, 신문방송편집인협회, 기자협회 같은 단체들이 할 일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당장 무엇을 바꿀지 고민해서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밝혀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언론이 그런 새로운 자세를 지켜낸다면 언론 소비자들의 변화도 시작될 것이다. 20대 대선 보도가 언론과 뉴스 소비자들이 언론의 가치와 중요성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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