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중증장애인 돌봄 현실을 놓친 법과 제도

비장애인에게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건 공들이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일상입니다. 하지만 그 일상이 녹록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중증장애인들입니다. 씹을 수 없어서 콧줄이나 위루관으로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시로 가래가 차서 압력으로 가래를 강제로 빼내는 석션(Suction)을 해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 가래를 뽑는 석션기. 중증장애인들 중에는 긴 관을 코나 목 안으로 깊게 넣어 가래를 뽑아내야 숨을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Shutterstock

기도 석션, 위루관으로 음식을 투여하는 것은 의료법상 ‘의료 행위’에 해당합니다. 의료법 제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에 따르면 의료 행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료인만 할 수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의 일상에 의료인이 종일 함께할 수도 없는데, 이들의 일상은 어떻게 흐르고 있을까요? <단비뉴스>에서 의료법에 가로막힌 중증장애인의 일상을 취재했습니다. 

견고한 ‘의료법 울타리’

뇌병변 장애 1급과 희귀난치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A씨(18)의 어머니 김미연(가명·45) 씨는 활동보조지원을 받지 못한 지 3개월이 넘었습니다. A씨는 남들보다 학교에 늦게 등교합니다. 학교에 가도 석션이나 위루관 섭식을 도와 줄 의료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늦더라도 집에서 미리 의료조치를 다 하고 가야 혼자서 학교생활을 마치고 하교할 수 있습니다.

A씨가 다니고 있는 특수학교에는 보건교사와 간호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행위를 직접 하지는 않습니다. 학급을 순회하면서 체온이나 컨디션을 체크하고, 응급상황에 대비하는 정도입니다. 간호사 역시 의료인이지만 법적으로 의료행위는 의사의 책임 아래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활의학 전문의가 1년에 4-5회 정도 방문하기는 하지만, 학생들에게 필요한 의료 상담을 진행하는 정도입니다.

지난 2012년 5월에 나온 대법원 판례는 의료행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1) 의료행위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는 경험과 기능으로 진찰, 검안, 처방, 투약 또는 외과적 시술을 시행하여 하는 질병의 예방 또는 치료행위 및 그 밖에 의료인이 행하지 아니하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라는 겁니다. 여기서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는 '추상적 위험으로도 충분하므로 환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해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의료행위가 여전히 견고한 울타리에 갇혀 있는 이유입니다.

일상에 꼭 필요한 의료행위, 정말 위험할까요?

▲ 씹고 삼키는 데 어려움이 있는 중증장애인들은 관을 통해 물을 마시고 음식을 먹습니다. © KBS

중증장애인의 일상을 위한 의료행위에 위험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체내에 삽입하여 소변, 가래 등을 뽑아내는 도관인 ’카테터(catheter)’는 비숙련자가 시술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무리하게 삽입할 경우 기관지 내벽에 상처가 생겨 감염될 수 있거든요. 기도에 차는 가래를 빼내는 석션 역시 처치가 잘못되면 흡인성 폐렴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요양원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법적으로 경관·위루관 섭식, 기도 석션은 모두 의료행위인데도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대신 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습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지난해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를 보면 의사와 간호사 수는 2016년을 기준으로 인구 천 명당 2.29명, 3.49명입니다. OECD 국가 평균인 3.32명, 7.17명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 의료행위를 지원할 수 있는 간병인·활동지원사를 찾는 공고가 구인 사이트에 올라와 있습니다. 의료행위 경력을 강조하는 자기소개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 단디헬퍼, 구성 현경아

그러나 '추상적인 위험' 때문에 의료인의 지시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가래를 빼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추상적인 위험을 예방하려다 도리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중증장애인 가정에서 의료법을 준수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셈입니다. 그래서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활동지원사를 찾기도 합니다. 간병인이나 활동지원사가 관행처럼 해 왔기 때문에 의료인보다 숙련된 사람들도 있거든요. 

현실을 놓친 법과 제도, 멍드는 일상

직계 가족 역시 의료인이 아니라 엄밀히 따지면 처벌 대상이 됩니다. 집 밖에서 의료행위를 받을 수 없으면 외부 활동도 할 수 없습니다. 보호자 역시 모든 일상을 쏟아야 하고요. 김미연 씨도 활동지원사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모든 일상을 돌봄에 들이고 있었습니다. A씨가 학교를 가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비장애인인 다른 자녀를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는 탓에 최근에는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런 중증장애인 가정의 일상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활동지원급여’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소득수준을 평가한 후 지원할 시간을 결정하면, 바우처를 받고 본인부담금을 납부합니다. 시군구에서 지정한 활동지원기관을 통해 계약을 하면 활동지원사를 가정으로 연결해 주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지원이 있어도 A씨 가정에서 선뜻 일하겠다는 활동지원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활동지원사는 돌봄노동의 특성상 중년 여성들이 많습니다. 곧 성인이 되는 A씨는 체구가 커서 신변처리를 할 때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다 매일 의료행위 지원이 필요합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길 경우 불법 행위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는 거죠. 활동지원사가 같은 급여를 받고 A씨 가정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현행 의료법, 모든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있나요?

또다른 대법원 판례를 보겠습니다. 2016년 7월에 나온 판결입니다.(2) 의료법은 면허된 것 외의 의료행위를 할 경우 형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면허된 의료행위’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의료행위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 개념 역시 의학 발달과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비록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중증장애인에게도 일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 Pixabay

세계보건기구 헌장은 건강을 신체·정신적 건강과 함께 ‘사회적 건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규정합니다. 그저 생존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토대로 의료행위를 해석한다면,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연한 법 해석을 고려할 필요도 있습니다. 의료인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취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이 가정 바깥에서도 잘 살아가려면 누군가는 의료 행위를 지원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방안이 있을까요? 영국은 활동지원제도 안에 신변처리와 같은 일상지원 업무는 물론 카테터 교환 등의 의료지원 역시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특수학교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의료 교육을 받으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일부 의료 행위를 직접 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요. 2011년에는 법을 개정해 한국의 간병인과 같은 ‘개호복지사’에게 석션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수시로 필요한 의료행위만큼은 별도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 허용하는 식의 개정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중증장애학생에게서 가래를 뽑아내는 조치를 교육상 필요한 정당한 편의로 인정하는 권고를 내놓았습니다. 장애학생의 건강과 생명유지, 학습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이기 때문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2항에 의한 정당한 편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중증장애인과 가족들은 2021년인 지금도, 견고한 의료법 울타리에 여전히 갇혀 있습니다.

[각주] 
1. 대법원 2012. 5. 10. 선고 2010도5964 판결.
2. 대법원 2016. 7. 21. 선고 2013도850 판결.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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