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골계미를 중심으로 본 영화 '메기'

‘믿음’을 가지는 것. 어느 때부터인가 사치로 들리는 말이 돼버렸다. 믿기 보다는 의심하고, 그래야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또 다른 믿음’이 하나의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메기>는 이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풍자로 풀어낸다. 믿고 있는 당신, 진정 안전한가요?

피해자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믿는 척’ 하려는 우리

영화 <메기>는 2018년 작품이다. 여러 독립영화를 통해 주목받은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부터 지원한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열네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펼쳐지는 믿음과 의심의 이야기가 중심 스토리다. 최근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영화 <야구소녀>로 잘 알려진 이주영이 윤영 역할을, 영화 <모가디슈>와 <반도>에 출연한 구교환이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 역할을 맡았다. 빠른 리듬감과 색다른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지금까지의 인권 영화와는 전혀 다른 결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 영화 <메기>는 기존의 인권영화에서 느껴졌던 무거움을 집어 던진다. 대신 경쾌함을 바탕에 깔고 그 속에서 인권을 이야기한다. 영화가 전하는 인권의 중심에는 믿고, 배반당하고, 다시 또 믿는 우리의 지지부진한 삶이 있다. ⓒ (주)엣나인필름

<메기>는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소재를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 에피소드는 믿음에 대한 여러 가지 태도를 우리에게 전한다. 이 영화가 전하는 믿음에 대한 첫 번째 태도는 ‘피해자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허름한 외관을 자랑하는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어느 날, 의문의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발견된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엑스레이 사진으로 찍혀버린 것. 그 사진을 두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 사진을 유출한 사람보다 그 사진에 찍힌 피해자를 찾는데 몰두한다. 곳곳에 걸린 사진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사람들 사이로 이 병원에서 일하는 윤영은 걱정 어린 표정을 한 채 주변을 살핀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영은 과거 자신의 경험이 들켜버린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후 윤영은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사건 당사자로 추측하는 자신의 남자친구 성원과 함께 사직서를 준비한다. 자신의 치부를 들춘 회사를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병원 부원장인 경진이 윤영에게 “윤영 씨를 위한 말이에요. 뒷문으로 나가요. 그리고 당분간 쉬어요.”라는 배려 아닌 배려에 윤영은 마음을 바꾼다.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회사를 계속해 다니기로 한 것이다.

윤영이 사건을 인지하고 이후 대처하는 과정은 ‘피해자다움’과 ‘피해자다움을 벗어버리려는 노력’의 대치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진지하지 않다. 피해자가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조직을 떠나는 장면에서 사직서라는 단어를 한글로 썼다가, 한자로 썼다가, Good bye로 바꿔가며 웃음의 강도를 높인다. 그뿐만 아니라 윤영이 ‘피해자다움을 버리는’ 과정에서도 골계는 이어진다. 남자친구가 사직서를 쓰며 골몰하자 윤영은 관두자고 이야기한다. 관두자는 윤영의 말에 당황하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보고 윤영은 이야기한다. “뭔가 착각한 것 같은 게, 내가 관두자 한 게 병원을 관둔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의심하고 힘들어하는 이 상황을 관둬보자 이런 거였거든. 무슨 말인지 알지?” 그리고 남자친구 성원이 답한다. “무슨 말이지?”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려는 개인과 그 개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영화는 간략하고 재치 있게 보여준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회

<메기> 속에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고, 상처받는 사람의 모습이 연이어 나온다. 성원은 일하던 공사장에서 윤영이 자신에게 사준 백금 반지를 잃어버린다. 백금 반지를 찾던 그는 같이 일하는 동료의 발가락에 백금 반지와 똑같은 링이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성원은 동료를 의심하고 결국 발가락에 낀 링을 받아내지만, 발가락에 맞는 링이 손가락에 맞을 일은 없다. 그는 ‘헛된 의심’의 결과물을 오랜 의심 끝에 받아들인다. 

▲ 성원은 ‘헛된 의심’으로 동료를 잃었고, 부원장 경진은 그 헛된 의심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벗어 던진다. <메기> 속 인물들은 믿고 의심하며 상처받은 채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다. ⓒ (주)엣나인필름

부원장 경진도 마찬가지다. 엑스레이실 사진 사건 이후 직원들 중 그 누구도 병원에 나오지 않는다. 경진은 모두가 엑스레이실에서 사랑을 나눈 것으로 의심한다. 그럴 수도 있지 왜 병원에는 안 나오냐며 의심하고 자기 생각대로 받아들인다. 윤영은 ‘믿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경진을 설득한다. 아파서 병원에 나오지 않은 거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경진에게 말한 윤영은 경진과 함께 출근하지 않은 한 의사의 집을 찾아가고, 실제로 그가 아파서 몸져누운 모습을 확인한다. 경진은 윤영의 ‘믿음 교육’ 덕에 자신이 품었던 의심을 해결한다. 

우리 삶 속에 의심은 끊임없이 존재한다. 그 사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의미 없는 의심으로 상대를 악마화하며 끊임없이 공격해 결국 모두가 상처받는 결과를 받아내는가, 수 없는 의심에도 한 번의 믿음으로 내 의심의 덧없음을 확인하는가. 성원은 근거 없는 의심으로 백금 반지와 동료를 잃었고, 경진은 한 번의 기회로 믿음을 회복했다. 

유일하게 풍자가 풀리는 순간, 가해자를 드러낼 때

영화는 끊임없이 의심하는 우리를 풍자한다. 하지만 그 풍자를 벗어던지는 순간이 있다. 폭력의 가해자를 그려낼 때다.

▲ 풍자를 통해 믿음이 배신당하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던 <메기>는 한순간 골계를 멈춘다. 가해자를 드러낼 때다. 윤영은 성원의 전 여자친구인 지연을 만나 성원이 데이트 폭력을 저지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윤영은 성원의 모든 모습에서 폭력성을 의심한다. 그 의심은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 (주)엣나인필름

윤영은 남자친구인 성원의 전 여자친구인 지연을 만난다. 지연이 윤영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처음에 윤영의 ‘의심’에서 둘이 만난 것처럼 영화에서는 그려진다. 성원이 백금 반지를 끼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윤영이 의심하는 모습 이후에 윤영과 지연의 만남 장면이 이어진다. 이 만남으로 윤영은 새로운 의심을 하게 된다. 지연이 윤영에게 한 질문 때문이다. 성원에게 맞아본 적이 있느냐는 것. 이후 윤영은 성원의 모든 행동을 폭력 가해자로 의심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새벽 출근길에 캔을 세게 밟는 모습에서 폭력성을 의심하고, 길을 잘못 일러준 그의 행동에서 자신을 해하려고 한 의지가 있었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윤영은 성원에게 질문한다. “여자 때린 적 있어?” 그리고 성원은 답한다. “어. 전 여친 때린 적 있어.” 그리고 성원은 뻥 뚫린 싱크홀에 빠지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끊임없는 풍자가 끊기는 유일한 지점, 성원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비꼬려고도 웃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그래서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는 ‘의심’을 도구로 활용해 찬찬히 그려낸다. 가해자에게는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싱크홀 바닥 깊은 곳으로 빠진다. 이 부분이 사회에 대한 풍자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가해자의 변명을 들어주느라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우리에게 가해자의 목소리를 그만 들으라고 영화는 외친다. 

▲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 문구를 두고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윤영과 성원을 통해 우리는 다시 ‘믿음’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게 된다. ⓒ (주)엣나인필름

의심을 의심하지 않는 일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일종의 명언인 듯 명언 아닌 문구가 다른 인물을 통해 전해진다. 처음 화자는 윤영이고, 마지막 화자는 윤영과 헤어진 후 윤영과 마주한 성원이다. 문구는 이렇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이 문구를 보고 윤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성원은 “윤영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윤영이 이 문구를 보고 생각하지 않기로 한 건 의심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의심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계 의식에 맞춰서 말이다. 반면 성원은 윤영이 자신을 의심해 헤어진 후 그 의심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문구를 윤영에게 전달했다.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파렴치한일 뿐이다.

결국 의심은 그 자체로 온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나의 의심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있다. 나 자신도 의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메기>의 나레이터인 어항 속 ‘메기’는 엑스레이 사진의 피해자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을 두고 말한다. “어른의 삶이란 오해를 견디는 일이라지만, 아, 이건 아니죠. 모르겠다.” 오해를 견디는 게 어른의 삶이지만, 그것만이 어른의 삶은 아니다. 온전치 못한 의심을 의심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의심 속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어른들이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편집 : 유희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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