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최배근 건국대 교수 주제 ② 경제개혁 실패와 언론 실패: 재정과 금융 민주화

엇박자 정책으로 아파트 값 폭등

최배근 교수는 한국 경제의 풍경을 보여주며 두 번째 주제 ‘경제개혁 실패와 언론 실패: 재정과 금융 민주화’에 관해 강연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풍경이었다. 그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는 상충하는 두 정책, 곧 수요 억제 대책과 임대 활성화 대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최배근 교수가 지난 4월 22일 ‘경제개혁 실패와 언론 실패’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이성현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불허하고,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가계부채 총량관리제 도입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주택 공급을 늘려도 다주택자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집을 사들이니, 수요를 억제하는 게 더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수요 억제 대책은 집권 후 부동산 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집을 사기 위한 대출 수요와 매수 동기를 줄여 기대수익을 낮추려 했다. 기대수익을 낮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세금 인상과 공공임대주택 공급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공공임대 물량을 하루아침에 공급하긴 힘들었다. 최 교수는 “이때 일부 관료들이 민간 임대 활성화 대책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기간에 공급하지 못하는 공공임대주택의 부족분을 민간에서 메꾸려 했고, 유인책으로 임대사업자들에게 세금과 건강보험료 인하 등의 혜택을 줬다. 

“사람들이 임대사업을 결정하는 건 결국 무엇일까요? 자신이 돈을 투자했을 때 ‘기대이익을 얻을 수 있냐’일 것입니다.“

결국 이 대책은 다주택 소유 장려책이 됐다. 임대사업자들은 재산세, 양도세, 종부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받게 됐다. 최 교수는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니,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조차 수도권에 와서 임대사업을 했다”고 밝혔다. 임대사업이 지방 제조업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택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과 다주택을 장려하는 정책은 서로 엇박자를 냈고, 금리가 내려가 유동성이 풀리는 상황까지 겹치며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이어졌다. 

▲ 부동산 핀셋 규제는 마치 두더지 게임과 같다. 강남 집값이 오르면 쫓아가 누르고, 그러자 옆에 있는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집값이 올라 규제를 위해 다시 쫓아가는 식이다. ⓒ KBS <정치합시다> 

부동산 핀셋 정책은 두더지 잡기 게임

최 교수는 부동산값이 올라가는 지역만 쫓아다니면서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대출을 못 받게 하는 핀셋 대책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더지 잡기 게임은 모든 구멍을 다 막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최 교수는 부동산 핀셋 규제가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핀셋 규제를 할수록 풍선효과가 생겨 집값은 규제지역을 피해 옆 쪽으로 옮겨가고, 부동산 불패 신화는 멈추지 않는다. 

결국 대통령의 부동산 공약을 믿고 주택을 사지 않은 사람만 ‘벼락 거지’가 됐다. 다주택자 종부세 강화 등 7·11 대책과 임대차 3법 등이 나왔지만 효과는 미흡했다. 임대차 3법으로 재계약자가 증가해 전세 공급이 부족해져 ‘전세 대란’이 일어났다.

보수 언론과 일부 보수 성향 경제학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고 최 교수는 지적한다. 그들은 주택공급 물량이 부족하다는 프레임을 잡았다. 정부에게 주택 공급을 늘릴 것을 재촉했다. 일말의 희망이 보였던 순간도 있었다. 최 교수는 “2·4대책이 나왔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단기적으로 전세 시장이 압박을 받겠지만, 21년 6월부터는 보유세가 실질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전세 물량도 증가하고, 집값도 안정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LH 사태가 터지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관한 국민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정부는 기존 부동산 정책을 밀고 나가기 힘들게 됐다. 최 교수는 이러한 한국 경제의 마지막 풍경을 디스토피아로 그렸다. 보궐선거 이후, 여야에서 종부세 완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완화, 민간 주택 개발 등을 다시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는 다시 활개치고, 빚을 내도 집을 사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한국은행, 물가 외에 고용∙분배도 고려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정책 목표는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다. 작년 국정감사 때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들은 한국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금융 불안정의 가장 큰 원인은 소득 불평등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투자정책을 펼 때 고용 안정, 소득 분배 등 사회적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돈 풀기 외에는 딱히 마땅한 수단이 없고 그렇게 되면 금융 안정을 포기해야 한다’며 ‘취업난도 한국은행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 한국은행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7조4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세금을 낸 법인이 됐다. ⓒ KBS 뉴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위원회는 고용 안정, 물가 안정, 금융 안정을 목표로 한다. 최 교수는 “그중 고용 안정이 있는 이유는 계급적인 타협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고용법에는 국가가 최종 고용자 역할을 하도록 규정돼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의 목표에는 고용 안정이 없다. 한국은행법 제1조(목적) 1항에는 물가 안정 도모, 2항에는 금융 안정이 규정돼 있을 뿐이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의 95%가 미국에서 주류경제학을 공부하여 보수 성향을 띠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중앙은행이 고용을 높이는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제 사각지대에 있는 한국은행

정부는 재정을 사용할 때 선출권력인 국회의원들에게 예산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이유로 간섭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 돈을 찍어내는 일은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은행이 굉장한 특권을 가지고 국민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통제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시중은행도 비판했다. 시중은행은 돈을 빌려주며 이자를 매겨 수익을 얻는다. 돈을 굴리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시중은행은 자금조달비용을 최소화하고 대출 금리는 높게 책정해, 금리 차이로 이윤을 얻는다. 또, 은행이 파산했을 때 뱅크런 사태를 막기 위해 예금자 보험제도가 도입됐는데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대신 지급한다. 일반인은 사업할 때 자금 조달을 못하면 파산하지만, 은행은 유동성 위기가 왔을 때도 중앙은행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해준다. 중앙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정부와 시중은행뿐이고 일반인은 이용하지 못한다. 

신용은 모든 국민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종이화폐는 말 그대로 ‘종이’다. 이것으로 거래가 가능한 이유는 국민 전체가 보증하는 신용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법 제1조에 ‘이 법은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고 자금중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며 예금자를 보호하고 신용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있다. 법 조항에 은행의 ‘영리 추구’는 한마디도 없다. 은행은 돈을 벌 목적으로 설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금융의 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은행의 기본적인 역할은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돈을 공급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주로 제한적인 사람들에게 돈을 공급해왔다. 신용 6등급은 금융권에서 대출을 이용하기 힘들다. 은행은 전체 국민 20%의 신용을 배제했다. 신용등급이 1등급인 국민들에게 돈이 공급되면 소비하기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한다. 실물경제에 돈이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자산만 쌓이고 자산 불평등은 더 심해진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22년간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이 11배 정도 증가했지만 경제 전체에 공급된 통화량은 5배밖에 증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신과 우상’ 한국의 국가채무

국가채무와 개인 채무의 가장 큰 차이는 ‘돈을 어디에서 빌리느냐’에 있다. 개인이 빚을 지면 그 채무는 자기 돈이 아니기에, 빠른 시일 안에 갚아야 한다. 국가채무도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하는 건 같다. 하지만 최 교수는 국가채무 중 중앙은행에서 빌리는 원금의 경우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이 국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대출을 해주어, 국가는 그 채무를 언제든 상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채무의 원금에 강박적으로 상환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가채무가 마냥 증가하도록 둬야 하는 건 아니고 주의 깊게 관리해야 한다. 최 교수는 국가채무의 성격을 면밀히 구분해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국가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로 구분된다. 금융성 채무의 경우 채무는 곧 자산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5억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5억을 은행에서 빌렸다면, 5억은 아파트라는 자산이기도 해서 아파트를 팔면 즉각 상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적자성 채무는 다르다. 빌린 돈이 자산화하지 않고 사용되니까 금융성 채무처럼 바로 상환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이 빚을 통해 갚아 나가야 하는 국가의 적자성 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달리 국가경제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상승한 것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 ⓒ KBS 뉴스

최 교수는 국가채무가 늘어 국가경제가 위험하다는 일부 주장을 비판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60%가 적자성 채무, 40%가 금융성 채무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적자성 채무의 85%는 국민이 보유한 국가의 채권이다. 최 교수는 대부분 채무가 국가의 자산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적자성 채무 중 국민이 보유한 채권을 제외한 15%의 채무 중 절반가량도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안전한 채무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 우리는 국가채무가 낮아야 한다는 일종의 ‘미신과 우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이 미신과 우상의 배경에 국가채무의 성격에 관한 오해와 모피아가 득세한 금융계의 현실이 있다는 지적이다. ⓒ 최배근 교수

우리는 왜 국가채무에 집착하는가

최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국가채무 현황은 국가경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국가채무에 관한 미신과 우상화에 빠지게 됐을까? 최 교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경제 전문가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경상수지 흑자 유지가 필수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학 교과서들은 경상수지 흑자가 지나치게 높으면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미국 학자들이 미국의 입장에서 쓴 경제학 내용을 그대로 우리 학자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최 교수는 비판했다. 미국으로서는 해외로 유출된 달러가 많을수록 미국 통화정책이 교란되는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다른데도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최 교수는 일명 ‘모피아’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기재부 산하 금융기관들을 장악함으로써 재정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적극적인 재정 정책 추진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 최배근 

경제학자뿐 아니라 모피아가 득세하는 금융계 현실에 관해서도 최 교수는 비판했다. 모피아란 지금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산하기관을 장악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들은 회전문 인사로 금융기관이나 단체의 수장까지 거의 도맡아 재정 정책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최 교수는 현재 중요 금융기관장 자리에 옛 재경부 인사들이 얼마나 많이 포진해 있는지 보여주면서 이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투입 정책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모피아가 득세하는 금융계의 현실이 취약계층을 비롯한 국민들로 하여금 시장 금융에 의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재정과 금융 민주화는 제2의 민주화 

그렇다면 우리 경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최 교수는 ‘재정과 금융 민주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그 예시로 기본대출 제도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본대출은 모든 국민이 1천만원가량 금액을 신용 1등급 대출금리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최 교수는 “은행은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과 국민의 신용보증을 통해 영업을 할 수 있는 건데, 국민 모두가 은행 돈을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대출이 이뤄지면 저신용자는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은 큰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로부터 보존을 받는 방안을 만들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금융 정책을 펼 수 있다. 

최 교수는 외환보유액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강조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150%에 이르지만 외환보유액이 GDP 대비 70~100% 가량이다. 이를 활용해 환율방어, 국부펀드 등에 조달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현재 경상수지 흑자의 절반 정도만 외환보유액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를 더 늘려 해외자금 조달비율을 떨어뜨리는 등 제도 운용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정치와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돈이 적은 사람은 출발점부터 금융시장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있다”며 “금융 시장의 공공성을 살려 많은 국민이 채무가 채무를 낳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언론이 계속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경제학에서는 경쟁의 원리라고 하는데, 그 안에는 공정경쟁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습니다. 경쟁은 공정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은데 경쟁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국가 경제와 관련한 ‘미신과 우상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치계, 금융계, 경제전문가 등의 노력이 뒷받침될 때, 금융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모두를 위한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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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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