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안과 밖, 피해자가 가려진 공간] ③ 부족한 학폭 피해전담기관

2020년 기준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은 7,196개로 확인됐다. 그에 비해 피해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피해자 전담지원 기관은 139개에 불과하다. 피해자 전담지원 기관은 2019년 49개에서 1년 만에 2.8배 늘었다.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 정민재 사무관은 “피해자 지원을 위한 기관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전담지원 기관을 늘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맑음센터 정세미 선생님은 “현재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위한 기관을 보면 피해자 보호와 치유, 회복이 부차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전보다 피해자 전담 지원기관이 늘었지만, 여전히 학교폭력 피해자 전담지원 기관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민재 사무관은 “피해자 전담지원 기관은 피해학생에게 교육뿐 아니라 의료, 상담, 심리 지원을 하는 만큼, 기관의 질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며 시·도교육청에서 질적인 부분을 고려하면서 지역 내 연계망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지원 기관의 숫자로만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이 피해자 전담지원 기관보다 50배 이상 많다는 점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 전국 가해학생 특별교육기관과 피해자 전담지원기관의 수는 50배 넘게 차이가 난다. © 단비뉴스

현 학교폭력예방법은 피해자 보호 조치를 ‘권고’ 사항으로 두고 있다. 피해학생 보호에 관한 규정인 학교폭력예방법 제16조 1항에는 “심의위는 피해학생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피해학생에 대해 각호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조치를 할 것을 교육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피해자 보호 조치를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세미 선생님은 지난 3월 법이 개정돼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즉시 가해자와 피해학생을 분리 조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선생님은 “아직도 학교 측에서 아이들을 가해학생과 분리하는 것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부차적인 사항’으로 여겨지는 피해자 보호 조치

아들이 학교폭력을 겪은 뒤, '아빠가 되어줄게'라는 책을 펴낸 '더나은미래연구소' 이해준 소장 역시 학교 폭력 피해 사실 확인서를 내러 학교에 갔을 때 ‘긴급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긴급조치는 피해학생이 실제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고 불안해하면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즉시 격리하고 피해학생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치유하기 위한 조치를 우선 실시하는 제도다. 이 씨의 경우에도 자신이 교육청에 강력하게 항의한 이후에야 긴급조치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 더나은미래연구소의 이해준 소장은 5월20일 인터뷰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들이 학교폭력을 겪은 뒤 학폭 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단비뉴스

그는 학교 측의 대처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피해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 아들과 함께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피해학생을 따뜻하게 대해주거나 지금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봐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9년 교육부는 학교장 자체 해결제를 도입해 경미한 사안은 학교가 처리할 수 있도록 학교의 권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학교가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로 넘어가는 사안에서는 학교 측 대처의 미흡한 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기숙형 학교는 해맑음센터가 전국에서 유일

대전에 있는 해맑음센터는 전국17개 시·도교육청의 지정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위탁형 기숙 대안학교다. 학교에 출석하기를 꺼리는 학생은 해맑음센터를 다니며 출석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정세미 선생님은 피해학생이 가해학생과 가까이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숙학교는 피해학생이 가해학생을 맞닥뜨리며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학생 학부모도 자식이 또래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새로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해맑음센터는 2018년도에는 입소를 희망하는 여학생이 많아 대기자 명단을 받은 적도 있다. 정세미 선생님은 “경기도 포천, 경남 통영에서 이곳까지 온 피해학생도 있다”고 밝혔다. 주말마다 편도 2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오고 가며 해맑음센터에 머무른다고 했다. 기숙형 학교가 전국에서 이곳뿐이다 보니 먼 거리를 감내해야만 대안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이다.

▲ 지난 4월 대전 해맑음센터에서 만난 정세미 선생님은 피해학생이 가해학생과 마주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점이 기숙형 센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24시간 함께 생활하면서 교사가 아이들의 심리적인 변화와 행동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도 했다. © 단비뉴스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특별교부금으로 운영되는 센터

해맑음센터는 특별교부금으로 운영된다. 특별교부금은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재원으로, 그야말로 ‘특별한’ 재정수요가 발생하거나 재정수입이 감소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편성한 것이다. 지방교부세법 제9조에 따르면 ①특별한 재정수요가 있을 때 ②재정수입의 감소가 있을 때 ③자치단체의 청사나 공공복지시설의 신설‧복구‧보수 등의 사유가 있을 때 지방교부세 총액의 11분의 1을 지정하여 교부한다. 학교폭력 피해지원은 어떤 특정한 날에 갑자기 필요하거나, 비정기적인 행사를 치르는 것도 아닌데, 정식 예산 배정 없이 이렇게 특별교부금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해맑음센터뿐 아니라 각 시·도교육청이 선정하고 운영하는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기관 역시 특별교부금으로 운영된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2018년부터 해마다 학교폭력 피해학생 전담지원 기관을 선정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원 자체는 미미하다. 지난해에는 21개 기관에 각500만 원씩 지원했고, 올해는 25개 기관에 560만 원씩 지원했다. 특별교부금 특성상 내년에는 금액이 늘어날지, 줄어들지, 어쩌면 아예 없어질지 알 수 없다. 교육부 정민재 사무관은 “해맑음센터는 지역을 벗어나 전국단위의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련된 곳으로, 시·도교육청이 협력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특별교부금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 치유가 잘 이루어진 나라 참고해야

문용린 푸른나무재단 이사장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사회복지사가 피해자를 보살피는 쪽으로 시스템이 발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실제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는 피해자 부모조차 잘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피해자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독일의 경우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찾고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것과는 별도로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과정이 사회복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독일의 학교들에는 대부분 사회복지사나 사회교육사가 배치돼 있다. 사회교육사는 어려움에 놓인 학생과 가족을 상담해주고 다양한 기관과 연계해 필요한 돌봄을 지원한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강균석 교사는 “피해학생에게 가장 좋은 치유는 다시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피해자’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원만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학생의 부모가 겪는 고통도 크다고 했다. 강 교사는 “교육부가 주도해 피해학생과 피해학생 부모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려면 학교와 학교 외부 기관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회복 문제를 당사자들에게 떠맡겨 놓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폭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1년 현재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단비뉴스> 학폭취재팀은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교폭력 현실을 조명하고, 미흡한 제도를 살펴봤다. 이 시리즈는 <한국일보> 주최 제2회 기획취재물 공모전에서 학생 부문 우수상으로 선정됐고,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를 비롯해 네이버 뉴스에 3주에 걸쳐 보도됐다. 일부 내용을 보완해 단비뉴스에 게재한다. (편집자주)

① 학교폭력, ‘피해자 회복’이 우선이다

② 학폭 피해 호소해도 선생님은 '묵묵부답'


편집 : 현경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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