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안과 밖, 피해자가 가려진 공간] ② 학폭 피해학생 구제 못하는 학교

김시원(가명) 씨는 지난달 20일 푸른나무재단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교폭력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그는 언론 앞에서 자신의 피해 경험을 털어놨다. 김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죽음은 면했지만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학교에서 그를 도와준 이는 없었다. 김 씨는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학교 선생님에게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믿을 수 없다’, ‘그냥 넘어가자’는 말이었다. 선생님의 외면 이후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고 느낀 김 씨는 그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피해를 극복하고 용기 내 나온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당시 담임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던 점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 지난 4월 20일 푸른나무재단이 주최한 학교폭력 관련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김시원(가명) 씨.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그는 학생 간 갈등을 해결하려면 학교 내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 단비뉴스

올해 20살인 가영(가명) 씨 역시 중학교 3학년 때 학급 내에서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이름의 초성으로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놀림의 정도는 갈수록 심해졌다. 가해 학생들은 칠판에 공개적으로 그림을 그려 가영 씨를 특정하거나 수업 중에 대뜸 별명을 외치기도 했다. 장난은 가영 씨에게 더 이상 장난이 아니었다. 가영 씨는 고민 끝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고 싶다며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의 중재는 없었다. 그는 “당시 학교로부터 받은 보호나 대처는 전무했다”고 했다. 가영 씨 부모님이 직접 나서 가해 학생 학부모에게 연락했고 무리 중 단 한 명에게 사과문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학교폭력의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가영 씨는 당시 겪은 피해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다른 식으로 대처했으면 나았을까 자책하기도 했다. 주변 친구든 선생님이든 단 한 명이라도 그 장난을 멈추라고 했더라면. 성인이 된 후에도 가영 씨에게 그 학교는 여전히 불편한 곳으로 남아있다.

수년 전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던 두 사람 모두 학교장과 교직원의 대처가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도 여전히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장 등의 대처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20일 청소년 NGO 푸른나무재단이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학교폭력과 사이버폭력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폭력을 겪는 피해학생의 18.8%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선생님의 도움 받음’은 24.2%로 ‘부모의 도움 받음’ 25% 다음이었다. 피해 학생  4명 중 3명은 여전히 학교에서 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학폭 피해, 선생님 도움 받았다”는 24%뿐

그러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담임교사나 부모님 같은 어른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교육부가 제공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초, 중, 고를 통틀어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린 사람은 보호자나 친척이 45.3%, 학교 선생님은 23%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해도 교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 교육부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조사'와 푸른나무재단의 '2021년 학교폭력 사이버폭력 및 대책 발표 자료'의 일부. 피해 학생이 선생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경우가 두 번째로 많았지만, 19%에 가까운 아이들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일보 그래픽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 학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충북 제천의 한 중학교에서 1년 동안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에 대해 교사들이 폭력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에게 제설제를 먹이거나, 손 소독제를 손에 뿌리고 불을 지피는 등 가학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피해 학생이 교사를 찾아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6명의 가해 학생들은 교사나 학교로부터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 학생이 임원이거나 학업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학교는 폭력을 저지른 일부 학생들을 두둔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학교폭력예방법 제20조에는 학교폭력을 인지할 경우 교원은 학교의 장에게 보고하고 해당 학부모에게 알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가 나서기까지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해 학생을 보호하려는 교사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충북교육청 행복교육센터의 나광수 센터장은 “교육청에 학부모가 신고하기까지 학교로부터 어떤 보고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이 폭력의 두려움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안 가해학생들은 버젓이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학부모의 신고에 따라 교육청이 비로소 움직였고 분리조치를 내렸다. 가해 학생 6명은 지난 5월 21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통해 전학과 함께 5시간 특별교육 이수 조처를 받았다. 충북교육청과 통화한 지난 5월 31일, 피해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못한 채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는 중인데도 가해 학생들은 여전히 분리 조처가 시행되지 않은 채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학폭 시 교사개입 규정 모호

피해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을 보호하고 안정시키는 것도 교원이 해야 할 일이다. 지난 3월 개정된 2021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역시 교사는 심각한 신체폭력이 아닐지라도 학교폭력의 조짐이 있거나 발생을 목격할 경우 보호자나 해당 학교에 통보하거나 교육청에 보고나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 대처 과정에서 교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충남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 B 씨는 “학교폭력 전담교사도 사안 처리에 개입하는 부분이 사실상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교사로 할 수 있는 일은 발견된 폭력을 보고하거나, 학생의 진술서를 받고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도다. 학교폭력 전담기구인 심의위로 폭력사안이 회부되면 개별 교사는 추가적인 조처를 취할 의무가 없다. ‘학교폭력 전담 교사’는 그저 행정적 절차를 수행하는 데서 멈춰야 한다. 

▲ 교육부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2021년 개정판)'의 일부. ‘점심시간, 쉬는 시간 등에 순회 지도’하도록 돼 있다. 2020년판에 쓴 ‘순찰’ 대신 ‘순회 지도’로 용어가 바뀌었다. 이 제도에 관해 교사 B 씨는 학교 규모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다고 말했다. 또한 쉬는 시간이라도 행정과 수업 업무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행하기 어렵고, 교사의 참여도도 제각각인 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일보 그래픽

또 교사는 학교폭력을 목격한 신고자라 하더라도 심의위가 열리는 동안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를 규정할 수 없다. 피해 장면을 목격해도 교사는 심의위 결정까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피해 학생 학부모였던 ‘더나은미래연구소’ 이해준 소장은 “폭력에 따른 상처를 온전히 피해 학생과 그의 가족이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폭위(현재 심의위)에서 결정이 나기까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한다는 것 자체를 현장에서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전담기구에는 빠져 있는 ‘담임교사와 교직원’

현재 개정된 가이드북은 피해 학생이 신고했을 경우, 교사는 피해 학생의 신변을 보호하고 ‘해결자’와 ‘상담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명시한다. 교사는 신고한 피해 학생을 지지해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학교의 학교폭력 대응을 위해 ‘담임교사 또는 교직원’, ‘학교폭력 전담기구’, ‘학교장 등 관리자’로 분류해 각자의 역할을 정리해 놓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북에 명기된 ‘담임교사’의 역할은 학교장에게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하거나 응급처치를 하는 것에서 그친다. 사안 조사는 ‘학교폭력 전담기구 또는 소속 교원’이 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 ‘담임교사와 교직원’이 빠져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 전담기구’가 규정하는 교사는 교감, 책임교사(학교폭력문제를 담당하는 교사), 보건교사, 전문상담교사 뿐이다. 전담기구에 속하지 않는 담임교사와 교직원의 역할은 △보호자 연락, △병원 이송 시 동승, △사안 조사에 협조하는 일이 전부다. 그 이상의 개입을 하려 해도 ‘학교폭력 전담기구’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사안 조사를 할 권한은 없고 심의위가 학폭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참고 진술을 하는 정도다.

전담기구에 속하지 않은 담임교사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사건 조사의 주체가 아닌 협조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자주적으로 해결할 의무가 없다. 특히 신고나 보고 권한만을 갖는 담임교사나 교직원들은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교감이나 학교장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구조이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학교 내 모든 교직원이 신고할 수 있지만 이후 해결을 위한 사안조사 과정에서 신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도 학교폭력이 발생한 것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면 그만인 상황이다.

담임교사는 자체적으로 관련 학생들을 중재하거나 대질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일단 피해 학생이 신고를 했을 경우 마음을 안정시키고 지지를 보내주어야 한다. 하지만 당장 피해 학생들이 담임교사에게 호소해도 교사는 학폭 전담기구 소속 교사에게 사안을 넘겨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다.

담임교사가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하는 등 사안에 개입할 권한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아예 손을 놓는 교사들이 나오기도 한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소속 강균석 교사는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민원이 쇄도하는 이유로 학교에 대한 신뢰 부족과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절차에 대한 신뢰가 없고,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다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만약 “학교가 무엇을 한다, 담임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면 민원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교사 개인’에게 준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강 교사는 권한이 없는 ‘교사는 허수아비'라고 느끼고 이후 그들이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데 그중 하나가 ‘진짜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피해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담임교사’의 의무 역시 가이드북에서 찾기 어렵다. 담임교사는 응급조치를 한 뒤에는 학폭 전담기구 소속 교원에게 사안을 넘겨야 한다. 학교 내 모든 권한은 대부분 ‘학교장’에게 있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한 긴급조치 결정권 역시 ‘학교장’의 권한이다. 사안조사 과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더라도 담임교사는 권한이 없으므로 책임질 일도 없다.

학생이 의지하는 교사의 역할 중요

그러나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교사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강 교사는 담임교사 역시 일차적으로 조사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폭력이 교실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조사를 먼저하고 이걸 넘겨받아 학교가 조사를 하고, 이 단계를 넘어서는 교육청이 조사하는 식으로 층위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강지연 하늘빛 정신의학과 의원 미술치료사는 “학교폭력을 호소하며 센터에 온 아이 중에 회복이 잘 된 경우는 대부분 선생님이 중재를 하며 화해의 장을 마련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만난 다수의 학생은 학교폭력을 겪는 와중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은 가해자, 피해자로 나뉘지만 어른이 개입된 것만으로도 이성적으로 변화하고 수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교사의 권한을 강화하면 따르는 책임이 있어서 교사 중에도 권한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평생 교직을 하신 분들이 학교폭력 문제와 교권침해 앞에서 자긍심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퇴장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결국 교사 개인이 사안에 개입할 권한을 갖는 것은 교권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학폭 미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1년 현재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단비뉴스> 학폭취재팀은 피해 학생이 소외되는 학교폭력 현실을 조명하고, 미흡한 제도를 살펴봤다. 이 시리즈는 <한국일보> 주최 제2회 기획취재물 공모전에서 학생 부문 우수상으로 선정됐고, <한국일보> 지면과 홈페이지를 비롯해 네이버 뉴스에 3주에 걸쳐 보도됐다. 일부 내용을 보완해 단비뉴스에 게재한다. (편집자주)

① 학교폭력, '피해자 회복'이 우선이다

② 학폭 피해 호소해도 선생님은 '묵묵부답'

③ 기숙학교는 한 곳, 특별교부금으로 연명


편집: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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