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강훈 기자

좋아하는 정치인 연설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2월 21일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한 연설이라고 답하겠다. ‘작통권 연설’로 불리는 연설에서 노무현은 1시간 넘게 안보에 관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 연설이 좋은 이유는 안보와 외교에 관한 정확한 분석과 미래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말한 개념을 그가 직접 인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쟁을 대비하는 안보가 아닌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를 말한 그의 철학도 놀랍다

연설의 핵심은 전시작전통제권을 회수하고 주한미군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은 미국에 의존하는 국방은 자주국가의 안보의식과 원칙에 위배되며, 작통권을 한국이 가지고 있어야 주권국가로서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미연합훈련이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작통권이 미국에 있는 한 훈련을 거부할 명분도 작아진다. 노무현은 자주국방을 책임져야 할 군인들이 오히려 작통권 회수를 반대하는 모순에 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꾸짖는다. 군조직 개선, 병력 감축을 비롯한 병영문화 개선까지 그가 던진 숙제들은 15년이 지난 지금 문재인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2006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 KBS

노무현이 요구한 변화 중 어떤 것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게 있는가? 1950년 미국에 넘어간 작통권은 70년이 지나도 우리 손에 없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돌려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며 기약도 없이 미뤄버렸다. 주한미군 의존 문제는?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북한이 핵을 쏘고 탱크를 몰고 내려온다고 믿는 자들은 툭하면 광화문 앞을 성조기로 메운다. 개선하겠다던 병영문화도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범죄를 덮어주려던 뒤틀린 전우애는 결혼을 앞둔 여자 중사를 죽였다.

노무현의 개혁 실패 원인은 작통권 연설 마지막에 나온다. 그는 민간인 국방장관을 임명하는 일은 뒤로 미루겠다고 말했다.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대통령은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설 기회를 주겠다며 문민통제는 사실상 다음 정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넘겼다. 개혁이란 무엇인가? 모든 개혁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다. 누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안보개혁은 반세기 넘게 고정된 틀을 깨야 하므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가진 국방장관이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관점은 군부대 울타리를 벗어나 외교, 경제, 문화, 인권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국가안보를 생각할 수 있는 넓은 시각을 말한다. 또한 군에 사적인 이해관계를 갖지 않아야 공정한 개혁을 할 수 있기에 그런 사람이 국방장관 자리에 앉아야 한다. 노무현의 방식은 틀렸다. 안보개혁은 문민통제가 시작점이 됐어야 한다.

<감시와 처벌>에서 미셸 푸코는 병영이 가진 공간 특성과 군인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설명한다. 병영은 명령-복종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인간을 통제하기 위한 감시와 규율이 연속된다는 점에서 감옥과 병영은 본질이 같다. 감시받는 인간은 늘 감시받고 있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감시자는 중앙에서 모든 수용자를 볼 수 있는 ‘판옵티콘’ 개념도 감옥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병영도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보고체계를 통해 지휘통제실에서 감시가 가능하며, 군인은 감시당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고 규율에 따른다. 감시받는 처지는 감옥과 막사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 안으로 시야가 제한된다. 좁아진 시야는 상상력을 억제하고, 감시당하고 있다는 공포감을 조장해 스스로 규율에 복종하게 만든다. 죄수와 군인은 감시와 규율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군인은 명령과 복종으로 움직인다. 행동에 이르는 과정이 빠르고 명확하지만, 행동하는 이유에 관해 묻거나 의심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고범위에 제한이 생긴 군인들은 개혁, 변화, 진보와 거리가 멀어진다. 군인은 폐쇄적이며 집단을 만들어 권력을 형성한다. 군부권력은 변화를 거부하며, 사회를 자신의 질서에 편입시키려 한다. 군복을 벗어도 거의 평생을 막사에서 군인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군인 출신이 제대하고 민간인 신분으로 국방장관 자리에 앉더라도 그는 양복입은 군인일 뿐이다.

순서를 바꿔보자. 개혁을 먼저 하고 문민통제를 시작할 게 아니다. 개혁을 주도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앉히는 것에서 안보개혁을 시작하자. 지휘통제실 안에서 시작하는 변화는 공허하다. 한국 사회를 둘러싼 안보담론을 허무는 창조적 파괴를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문민통제를 구심점으로 노무현이 말한 작통권 환수와 주한미군 철수를 준비하자.


편집 :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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