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공영장례 지원 ‘나눔과나눔’ 김민석 활동가

비영리단체 ‘나눔과나눔’의 김민석(29) 팀장은 연고 없이 죽은 이의 장례를 치르고, 삶의 조각을 모아주는 사람이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11년째 지원하고 있는 이 단체에서 유일한 ‘풀타임(전일)’ 근무자로, 팀원 2명과 함께 현장 작업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 이 일을 시작한 후 거의 매일,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장례를 치른다. 사망자 시신처리 의뢰공문과 함께 오는 사망진단서 사본, 수급자 증명서 등을 토대로 고인의 삶과 죽음의 경위를 추적·정리하고, 부고를 쓰고, 유족에게 유품을 전달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좋은 사람이었든 나쁜 사람이었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제공받아야 할 복지’인 장례를 정성껏 치러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김 팀장을 지난 5월 20일 서울 아현동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만나고 지난 6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지난해 660여 명 ‘마지막 길’ 배웅  

▲ 서울 아현동 나눔과나눔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김민석 팀장. 자신이 장례를 치렀던 이들에 관해 담담하게 설명했다. ⓒ 김지윤

실용음악을 전공한 후 장애인복지관과 아동복지시설에서 음악강사로 활동하며 작곡도 했던 그는 유통사 위주의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수익구조에 답답함을 느끼고 구직에 나섰다가 나눔과나눔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생각보다 장례가 많아 놀랐다”며 맞은 편 벽에 걸린 전신거울을 가리켰다. 거울에는 지난해 사망한 무연고자들의 이름이 화이트 펜으로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2020년 연간 장례를 치른 무연고자는 665명으로 전년도의 423명보다 242명 늘었다. 올해는 5월 초에 이미 300명을 넘겨, 지난해보다 총 숫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무연고 사망자가 3가지로 정의된다고 설명했다. 말 그대로 연고자가 없는 사망자,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사망자,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사망자다.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두고 ‘가족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개인 사이 문제는 다 알 수 없고, 어떤 아픔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는 게 나눔과나눔의 시각이다.

▲ 나눔과나눔 사무실에 걸려있는 전신거울. 작년 사망한 무연고자 665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한 해 동안 사망한 무연고자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 김민석

그는 장례를 치르며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사는 삶’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장례를 치른 20대 청년이었다. 청년은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도 그가 갓 20세가 됐을 때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황, 청년은 반지하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팀장은 “사람은 누구나 삐끗할 수 있는데, 삐끗했을 때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것과 없는 건 큰 차이”라며 “등 뒤에 절벽을 두고 사는 삶을 지금 사회가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등 뒤에 절벽을 둔 삶’ 만드는 사회 

최근에는 무연고 사망자 중 2030세대를 포함한 40세 미만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발표한 보건복지부 자료 분석에 따르면 40세 미만 무연고 사망자는 2017년 63명에서 2020년 100명으로 늘었다. 이와 관련,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1인 가구 청년과 지역사회의 관계 맺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김 팀장은 청년들에게 와 닿지 않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사회에 관심도 의지도 없는 청년들에게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 형성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복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사회적 고립을 겪으며 외롭게 살다 혼자 생을 마감하는 무연고 사망자가 늘고 있다. 고립된 이들의 손을 잡아줄 복지제도는 미비하다. ⓒ KBS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무연고자들을 위해 굳이 장례를 치러줄 필요가 있냐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팀장은 이런 시선과 관련,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은 쪽방촌에서 공영장례의 존재는 특히 의미를 갖는다. 독거노인들은 자신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얼굴빛이 바뀌며 안심한다고 한다. 그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한 주민은 방 벽에 나눔과나눔 전화번호를 크게 붙여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무연고 사망자가 모두 ‘순백의 피해자’는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지난해 경찰이 수습한 무연고 사망자 중 한 명이 인신매매범이라는 사실을 장례 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무고하게, 빈곤에 의해,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사정에 의해 돌아가시는 분들만 있는 건 아니다”며 연민의 감정으로만 무연고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눔과나눔 활동가들은 당시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미리 사실을 알았어도 변함없이 장례를 치렀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인권단체로서 도덕적 딜레마를 겪을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 이유는 그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에요.”

유언장 미리 쓰며 삶을 돌아보다  

나눔과나눔은 정부 예산지원을 받지 않고,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김 팀장을 포함한 3명의 활동가들은 월급을 받고 일한다. 설립자들은 이 단체를 만들 때 ‘공영장례를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로 확립하고 20년 후 사라진다’를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사회 인식과 정책이 쉽게 변하지 않음을 느낀다고 한다. 김 팀장은 먼저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 관련 통계부터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지 7년째지만 지자체별로 기준과 방식이 달라 복지부 통계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집계는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치르는 무연고 사망자보다 많아야 정상인데 오히려 적다고 한다. 김 팀장은 “통계를 신뢰할 수 없는데 정책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 김민석 팀장이 지난해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의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 김지윤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김 팀장에게 죽음은 삶과 분리될 수 없는 무언가가 됐다. 죽음 이후에도 관계는 계속된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그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반년에 한 번씩 유언장을 새로 쓴다고 한다. 장례의식은 애인과 가족이 원하는 대로, 조문객에게 제공되는 식사에는 고기가 없도록, 고양이들의 밥과 간식은 누가 맡아줬으면 좋겠다 등을 기록해둔다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았던 학창시절 죽음을 가까이 느끼고 유언장을 써봤는데, 나눔과나눔에 들어오고 난 후 구체적인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김 팀장은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장례를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장례는 어떠면 좋겠는지 생각해보세요. 누군가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장례를 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빈소를 마련하지 않는 장례를 원할 수도 있어요.”

무연고 사망자를 차갑게 대하는 시선도 있지만, 김 팀장은 현장에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쪽방촌 주민들이 이웃의 부고를 듣고 생전에 모르던 사이여도 장례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60대인 한 자원봉사자는 황망하게 떠나보낸 아내 때문에 괴로워했는데, 공영장례를 몇 번 치른 후 나름대로 마음의 매듭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못하게 된다면 떠날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죽음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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