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② 사회정책 어떻게 펼 것인가

하루 평균 노동자 6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38명이 목숨을 끓는 사회. 그러면서도 한국은 2020년 국내총생산(GDP)으로 1조6240억달러(OECD∙추정치)를 기록해, 세계 10위 경제 규모의 국가로 올라섰다. 상반되는 현실을 앞에 두고, 우리는 지금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4월 8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열린 사회교양특강에서 김동춘 교수는 한국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진단하고 그 뿌리를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성장 신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 김동춘 교수는 한국의 취약한 사회정책 구조가 박정희식 성장 담론과 보수 안보 논리에 갇혀 성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신현우

경제는 10위, 행복지수는 50위

“우리나라는 민주화했다고 하는데, 왜 (개인의) 행복감은 높지 않을까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 사회를 더 힘들어할까요?”

김 교수는 한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성장했지만 막상 따라가보니 잘못된 길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이고, 국민의 평균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G7 국가인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의 반열에 올랐으나 국민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나 불행감은 다른 국가들에 견줘 높은 편이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행복지수는 95개국 중 50위로 나타났다. 일본은 40위였고, 대만이 19위로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 GDP로는 대만이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사회정책이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된 적이 없습니다. 말로는 ‘사회 가치’라 하지만 사회정책은 언제나 경제정책과 안보정책의 시녀입니다.”

김 교수는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안보’와 ‘성장’을 제외한 다른 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자리잡은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성장’은 민주화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방침에는 ‘경제’가 180번 나왔다. 반면 ‘복지’와 같은 성장과 대조되는 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7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선거캠프의 이름은 ‘국민성장’이었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여전히 박정희식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인 나라다. 특히 노인과 청소년 자살률이 높다. 

경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중요

“우리 사회는 재벌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이 패러다임에서 많은 비정규직과 청년은 열악한 조건에 놓입니다. 김용균이나 구의역 김 군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 김동춘 교수는 재하청이 거듭되는 하도급 구조에서 중소기업의 이윤이 대기업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가 시장논리가 아닌 경제권력에 의해 형성된다고 비판했다. ⓒ KBS뉴스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이 경제적 지배 구조에 있다고 말했다. 재하청 고리 속에서 재벌은 밑에 있는 중소기업의 이윤을 빨아들이고,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윤을 착취당한다. 재벌이 얻어들이는 이익의 상당 부분은 대개 단가 후려치기로 하청업체에서 끌어들인 것이다. 재벌은 시장논리가 아니라 권력으로 돈을 번다. 경제권력이 사회 전반에 균등하게 분배돼야 하는데, 한국은 재벌에 집중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권력을 분배해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는 기득권세력에게 표를 잃을까 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 매년 늘어나는 1인 가구 비중. 남자는 30대가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크고 20대가 뒤를 잇는다. 여자는 60대와 20대에서 1인 가구 비중이 가장 높다. ⓒ 통계청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청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위 10%를 제외한 90%는 월 200만원을 못 받는 상황에서 살고, 부모로부터 집을 상속받을 수 없는 90% 청년이 주거 불안을 겪는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중 35%가 이삼십대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40%는 ‘보증금 있는 월세’ 형태로 거주했다. 1인 가구 중 60%만 취업 상태에 있다. 청년들은 거주와 고용 양면에서 불안을 느낀다. 김 교수는 한국의 경제구조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과 건설, 그걸 통한 일자리 창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풍선이 되어버리는 ‘사회 정책’

“사회 정책의 목표는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에서 가끔 나올 뿐, 국가가 움직일 때는 공염불이 되거나 공허한 문구가 돼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 2019년 OECD 평균과 비교한 한국의 항목별 조세부담률. ⓒ 조세재정연구원

김 교수는 지출 여력이 부족한 ‘작은 정부’는 사회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회 복지 정책은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 규모의 영향을 받는데,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7년 기준으로 20.0%이다. 이는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평균 조세부담률 24.9%보다 꽤  낮은 수치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34.3%나 핀란드 31.2%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 크다. 한국의 공공부문 사회복지지출 규모도 GDP 대비 12.20%로 OECD 평균 20.0%를 한참 밑돈다. 스웨덴이 25.5%, 핀란드가 29.1% 규모이다.

김 교수는 한국은 60~70년대 개발독재 시기부터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맡겼다”며 “공적 영역의 비중이 굉장히 낮은 나라”라고 지적했다. 이는 ‘교육과 주택 부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육이 시작되는 유아 교육에서 국공립유치원과 어린이 집을 다니는 유아 비율은 21.1%에 불과하다. 대체로 마지막 교육 과정인 대학은 2017년 기준 사립 비율이 85.8%에 이른다. 그는 “자기 돈을 들여 학교에 다닌 사람들은 돈을 회수하려는 사적 동기를 강하게 갖는다”며 “공적으로 보장된다면, 공익에 부합하는 교육 감정이 앞서게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주택 역시 공공이 아닌 ‘내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7.6% 수준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사회 시스템은 교육과 주택의 사적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정부가 공적 부문에 개입하려 했지만, 이미 너무나 커져버린 사적 부문은 우리 사회에서 건드릴 수 없는 이해집단이 돼 버렸습니다.”

김동춘 교수에 따르면, 개발독재 시기는 ‘국가 주도의 개발’이 아니라 도리어 ‘사적 시장에 의존한 시스템’이었다. 그는 “사적 시장을 만들기 위해 ‘국가 공권력이 동원됐다”고 말했다. 후발 국가로서 국가 예산이 부족한 터라, 정부가 사적 부문에 상당 부분을 의존했기 때문이다. 70~8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로 몰려들자, 정부는 학교 설립을 ‘인가해주는 식’으로 민간에 의존했다. 주택 개발에서는 정부가 강제수용한 토지를 기업들이 개발하도록 했다. 이들은 오늘에 이르러 사립 재단과 재벌이 된다. 김 교수는 “강력한 이해 집단을 건드릴 수 없는 시스템이 90년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취약한 사회의 뿌리: 미국과 외환위기

“한국 사회 시스템의 특징은 초기의 사회주의적이고 사회민주적인 요소를 탈색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작은 정부와 취약한 사회 시스템이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광복 후 1948년 7월에 시행된 '제헌헌법'에는 '사회민주적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이익균점법’이라고 알려진 제18조는 사기업에 속한 노동자는 법률에 따라 이익의 분배를 고르게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제82조는 공공 성격이 짙은 지하자원 등을 공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유화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김 교수는 “(광복 뒤) 일본이 남긴 재산을 사기업에 불하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다”며 “(당시의 관념으로) 국가가 운영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헌헌법을 ‘사회주의’로 판단한 미국은 6.25 전쟁이 끝난 뒤 시장경제 중심 헌법으로 개정하도록 한국을 압박한다.

김 교수는 또 다른 요인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꼽았다. 그는 외환위기를 (외화가 부족한) 유동성 위기로 보고, “한국 경제의 근본적 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에 요구한 사항은 외환 자유화, 금융 자유화,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조처였다. 김 교수는 수출에 의존한 경제 구조에서, 김대중 정부가 IMF의 요구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한국이 외국 자본에게 완전히 노출되고 그 과정에서 실업자 양산과 비정규직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양극화의 길로 가게 됐다는 것이다. 

‘떴다방’ 수준의 사회 정책

“유럽의 복지국가는 사회 정책을 세울 때 노동세력이 뒷받침되지만 한국은 노동세력이 취약합니다. 노동조합 조직력이 10%도 안 되니 정치인들은 노동세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죠.”

김 교수는 시민의 세력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주택협동조합원이 900만에 이르러 정치권에서 주거 정책을 세울 때 조합원 의견이 중시된다. 만약 시민세력이 없다면 정치인들은 장기적인 사회 정책을 수립하기보다 표가 되는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바꾸기 쉽다. 한국은 주택 관련 조합원이 9만도 안 된다. 이 규모로는 건설업체를 상대할 수 없다. 정치권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지형에서 건설업계 논리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주택 문제를 개혁하려는 정치인이 나와도 한국에서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세력이 부족하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사회 정책을 수립하려면 학자들이 모여서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싱크탱크에서 지속적으로 정책 대안을 내야 한다. 어떤 분야의 전문성과 함께 현실에 적용이 가능하고, 관료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집단이 있어야 제대로 된 사회 정책을 세울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은 ‘떴다방’처럼 선거 때 급하게 꾸려지는 선거 캠프가 싱크탱크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선거 캠프는 표가 되는 정책을 세울 뿐 제대로 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김 교수는 지금 문재인 정부가 초기의 인기를 잃은 이유도 제대로 된 정책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김 교수는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언론은 여론을 만드는 구실을 합니다. 정치권에서는 표를 의식해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세우는데 언론이 그대로 따라가면 여론 형성도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지요. 언론이 어떤 사회적 담론을 설정할지, 독자들에게 어떻게 사회 정책을 소개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현경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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