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저자 박정훈

‘페미니즘(양성평등주의)’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면서 ‘안티(반)페미니즘’을 내건 일부 남성, 특히 ‘이대남(20대 남자)’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주의’ 혹은 ‘남성 혐오’라고 공격하면서 지에스(GS)25 불매운동 등으로 세를 과시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일부 제도권 정치인의 엄호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은 조롱받기 일쑤지만, 박정훈(35) <오마이뉴스> 기자는 아랑곳없이 할 말을 한다.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에 입사한 그는 요즘 주로 코로나19와 젠더(성), 인권에 관한 기사를 쓰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 등에 관한 의견을 눈치 보지 않고 올린다. SNS 글을 엮어 지난 5월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라는 책을 낸 그를 지난 6월 2일 서울 서교동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만나고 지난 4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인터넷 카페서 만난 또래들 덕에 페미니즘 눈 떠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서울 서교동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해솔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가 서울 서교동의 한 스터디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김해솔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진 남성도 많은데, 박 기자는 어떻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을 쓰게 됐을까. 그는 자신이 처음 페미니즘을 접했을 때도 지금처럼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반발 심리나 행동)’가 강했다고 말했다. 그가 청소년이었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은 여성부가 생기고 군 가산점이 없어지고 호주제 폐지 운동이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어떤 인터넷 게시판에 들어가도 ‘여성부를 폐지하라’는 글이 보였다.

“그때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새벽 2시에 하는 방송이어서인지 주변에 듣는 친구가 없었죠. 라디오 듣는 사람끼리 얘기하고 싶어 포털 다음에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는데, 거기서 ‘깨어있는’ 친구들과 만났어요.”

대부분 또래 여성이었던 친구들은 박 기자가 페미니즘에 불만을 드러내는 글을 쓰면 조목조목 반박하는 댓글을 달았다. 무지와 선입견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면, 차분하고 논리적인 어조로 잘못을 지적해주었다. 덕분에 그는 왜곡되지 않은 페미니즘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박 기자는 “고등학교 때 호주제 폐지 운동을 비난하는 수학 선생님에게 대들었다가 친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페미니즘을 보다 진지하게 마주한 것은 기자가 된 후였다. 그가 막 입사했던 2015년에 트위터에서 자신이 양성평등주의자임을 밝히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일어났다. 또 여성 혐오 표현을 ‘미러링(상대의 나쁜 행동을 그대로 모방해 잘못을 일깨우는 것)’하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등장해 남성들의 반발을 샀다. 2016년에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일어났다. 박 기자는 “그즈음부터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다른 남성들에게 페미니즘을 전달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했다”며 “그러다 보니 글을 하나하나씩 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에 첫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냈고 2년이 조금 안 돼 두 번째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를 냈다.

안티페미니즘의 토양은 20대 남자의 불안

▲ 지난 5월에 출간된 박정훈 기자의 두 번째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와 2019년에 나온 첫 책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첫 책은 저자가 남성으로서 남성 문화를 비판하고 성찰하는 데 주력했다면 두 번째 책은 여성 혐오의 근원이 남성들의 ‘기만’에 있음을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 예스24

박 기자는 “20대 남자가 성차별의 구조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오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들 눈에는 남녀가 평등해 보인다. 대학은 공평하게 들어오고, 취업 시장은 채용상 성차별이 없는 공무원 시험으로 대표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채용, 배치, 승진 등에서 겪는 차별과 결혼·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이들의 눈에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 불공평해 보인다. 지난 2019년 정책기획위원회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성 중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답한 비율은 20대 초반이 11%, 20대 후반이 20% 정도였다. 박 기자는 20대 후반 남성이 대개 군대 문제를 해결했고 취업의 불안도 줄어들었기 때문에 덜 불안해서 이런 차이가 나온다고 해석했다.

박 기자는 또 “20대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페미니즘을 수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이 지난 2019년 말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 75%가 ‘페미니즘을 싫어한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섹스보다 피임이 더 중요하다’ ‘맨스플레인(남성이 우월적 태도로 여성을 가르치려는 행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여자 친구 앞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혐오적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 등의 성평등 규범에도 70~80% 이상이 동의했다.

박 기자는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안티페미니즘이 확산되는 데는 극소수에 불과한 극단적 페미니스트 집단이 대표성을 가진 것처럼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는 탓도 크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페미니스트도 각자 다른 정체성이 있는데, 극히 일부인 ‘워마드(메갈리아에서 파생된 여성 중심 커뮤니티)’ 등이 지배적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와 언론, 포털이 백래시의 공범

박 기자는 “언론과 정치가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관한 남성들의 오해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이 페미니즘 이슈를 관점 없이 다루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GS25 손가락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이런 문제 제기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따져야죠. ‘남혐 논란’이라는 제목을 달아요. 이러면 독자는 ‘GS가 뭐 잘못했나 보다’라고 생각해요.”

GS25사건은 캠핑용품을 홍보하는 편의점 광고에 들어간 손가락 그림을 보고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 회원들이 ‘남성을 비하하는 페미니즘 상징’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이자 회사가 황급히 사과한 사건이다. 언론은 이런 커뮤니티 사이트의 문제 제기를 다 받아 적고, 이렇게 보도된 기사는 다시 해당 커뮤니티에서 퍼가고, 청와대 청원 등 또 다른 압박의 동력을 만든다. 박 기자는 “포털에 종속된 언론 구조가 큰 문제”라고 말했다.

“포털은 ‘부정 편향적’이에요. 긍정적인 기사는 안 걸려요. ‘엔(n)번방’ 사건도 <한겨레>가 최초 기획했을 때 정말 많이 안 봤어요. 성폭력 보도 준칙을 정확하게 지켜서 자극적인 요소는 많이 덜어내고 정론에 가깝게 썼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도가 떨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저급한 논란을 일으키는 기사는 많은 ‘클릭’을 부르고, 양질의 보도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여성 할당제 왜곡 발언을 반박하는 기사 등 좋은 보도도 많이 나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기자는 “좋은 기사를 어떻게 노출시킬지 언론사들이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래시는 젠더 이슈를 진지하게 다루는 기자들에게도 정신적 외상을 입힌다. 남초 커뮤니티에 ‘좌표’가 찍힌 여성 기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협박성 메일과 댓글에 시달린다. 박 기자는 “주변 여기자가 성희롱성 메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페미니즘에 관한 기사와 글을 쓴다는 이유로 남성들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박 기자가 등장한 인터뷰에 인신공격성 악플(악성댓글)이 달리거나 그가 쓴 책 내용이 남성 커뮤니티에 올라가서 집단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는 인터넷서점의 별점 테러 (의도적으로 낮은 평가를 주는 것) 대상이 되기도 했다”며 “그에 딱히 대응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이해 못하고 살기 원하나

▲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박정훈 페이스북

박 기자는 자신을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게 좋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여성 페미니스트, 남성 페미니스트가 아닌 그냥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남성 페미니스트는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성이 페미니즘을 말하면 거부감 없이 듣는 남성이 많기 때문이다. 강의 등 현장에서 그를 많이 부르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박 기자는 “남성들이 제 강의나 북토크를 듣는 경우에, 아무래도 저와 비슷하게 경험한 남성문화에 대한 고민들을 쉽게 털어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도 남성에 기자인 내게 ‘발화 권력’이 있기 때문”이라며 “꼭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박 기자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조신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스스로 경험하지 않는 삶을 말할 때가 있으니 잘 모르는 말을 하거나 실수할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그는 반발에 부딪칠 수도 있지만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뭐는 해야 하고, 뭐는 하지 말아야 하고, 남성 페미니스트끼리 잣대를 하나씩 더 만든다”며 “여성들의 목소리만 듣고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으라는 요구는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나 스스로 수용해 내 관점으로 말해야 하는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같아요. 남성 페미니스트 한 명 한 명이 부족해요.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없어요. 누구라도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여성들한테도 연대감을 심어줄 수 있을 거예요.”

박 기자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넓어진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중심적이다. 그런데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즘을 인식하는 순간 한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성이, 성소수자가, 장애인이, 대상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이번 책에 여성뿐 아니라 어린이, 장애인, 성소수자에 관한 얘기도 담은 이유다. 나에게 편했던 것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을 수용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과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예를 들어서 <82년생 김지영> 같은 영화를 볼 때 페미니즘을 경유하지 않고는 여성의 고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보는 틀을 점검하자고 말했다.

“명절에 시댁에서 하루 이틀 일하고 오는 게 별거냐고 남자들이 얘기하는데, 여성은 그때 모멸감을 느끼는 거예요. 남편이랑 있을 때는 가족의 평등한 구성원이었는데, 그(시댁) 속에서는 계속 일이나 해야 하는 존재, 도구로서 취급되어 버리는 거죠. 그런 경험을 남성들이 잘 모르는 거예요. 여성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남자들이 이해를 못해요. 그러면 나랑 가장 가까운 사람을 하나도 이해 못하고 살게 되는 거잖아요. 그거는 누구도 원하는 삶이 아니죠.”


편집 : 유지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