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무색사회:중앙정보부 60展

중앙정보부 창설 60주년을 맞아 평화박물관이 <무색사회:중앙정보부60>展을 열었다. 전시회는 ‘중앙정보부’라는 국가 정보기관이 시민을 통제하고 감시한 역사,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저지른 인권침해와 폭력, 지금도 우리 일상에 남아 있는 잔재를 조명한다. 전시장은 생각보다 좁고 작품은 소수였지만,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정보와 통제의 폭력에 주목한다. 중앙정보부에 의해 행해진 ‘폭력의 무게감’을 담아낸 작품들은 좁은 공간 속에서 무겁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 <남영동 대공분실>사진 시리즈 중 한 장. 몇 층인지 의식할 수 없도록 만든 나선형 계단. 폭력의 또 다른 얼굴이다. ⓒ 주용성

전시장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무색사회:중앙정보부 60> 전시회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만난다.

“이번 전시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피해자 개인들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중앙정보부는 ‘이적표현’이란 미명하에 예술표현을 검열하고 탄압해 온 국가보안법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 평화박물관 <무색사회:중앙정보부60>展 입구. ⓒ 김대호
▲ 평화박물관 <무색사회:중앙정보부60>展 전경. ⓒ 김대호

입구 안내문을 넘어서면 석관동 중앙정보부 사진이 말없이 관람객을 응시한다. 중정 60년 과거를 증언하는 사진 속에서 이곳을 거쳐 간 선량한 시민들의 아픈, 절망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가는 용도에 맞추어 동선과 구조, 위치를 정교하게 계산한 건축물 사진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국가권력이 건물부터 주도면밀하게 폭력을 기획했음을 보여준다. 석관동 중앙정보부와 함께 국가폭력의 또 다른 주체였던 남영동 대공분실 사진을 전시장 중앙 벽면에 배치해, 전시된 작품들이 전하려는 의미를 말없이 증언한다.

▲ <석관동 중앙정보부> 사진 시리즈. 작가는 용도에 맞추어 동선과 구조를 조형적으로 구현해 놓은 건축물의 완벽함을 보여 주면서 국가 폭력이 처음부터 기획되었음을 고발한다. ⓒ 주용성
▲ <남영동 대공분실>, <석관동 중앙정보부>를 보여주는 사진은 전시장 중앙에 전시돼 있다. 2021, pigment print (each 35x26.25, 45x33.75, 45x30cm), wood. ⓒ 주용성

사진 오른쪽에는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간첩 조작 사건을 기록하고 보고한 문건과 그동안 평화박물관에서 연구한 <국가폭력 고문피해 실태조사> 보고서가 전시돼 있다. 처음 만나는 건 영화 <자백>의 주인공인 김승효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의견서다. 국정원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다. 김씨는 1974년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 ‘북한의 지령으로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는 ‘조총련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모진 고문이 이어졌고, 그는 견디다 못해 결국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해야 했다. 법원은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1981년 가석방되었지만, 정신착란 증상 등 후유증을 앓아 21년여를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김씨의 형이 2016년 재심을 청구해, 2018년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를 받았지만, 그와 가족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울릉도를 거점으로 한 간첩단 사건’ 의견서도 전시돼 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1974년 3월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울릉도에 거점을 두고 간첩 활동을 한 47명을 적발했다’라고 밝힌 사건을 말한다. 이 중 32명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됐고, 김용득, 전영관, 전영봉 등 3명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 밖의 피고인들에게도 1~15년, 무기징역까지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형은 1977년 집행됐다. 이 사건의 피고인이었던 이상희 前 전북대학교 교수는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위원회는 2010년 “피해자들이 당시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를 당하며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후 대법원은 고인이 된 전영관 등 피해자 13명 당사자와 가족들이 청구한 재심에 대해 무죄·면소 확정판결을 내렸지만, 피해자들과 그 가족은 지난 40여 년을 고통과 절망 속에서 보내야 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은 중앙정보부에서 행해진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이었다.

어디 이 두 사건뿐인가. 전시된 국가보안법 위반 의견서에선 무수한 고문을 당한 뒤 무고하게 간첩으로 전락한 선량한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평생 겪었을 고통에 몸서리치게 된다. 한홍구 교수는 이 자료들을 헌책방에서 구했다고 했다. 어떻게 이 문건들이 헌책방까지 흘러나오게 되었을까. 자신의 업적을 세상과 권력 상층부에 자랑해 출세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들은 조작한 진실이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무소불위한 권력이 영원무궁하리라 믿었던 것일까?

▲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국가보안법 위반 의견서 등의 아카이브 자료. 영화 <자백>의 주인공인 김승효씨의 이름과 ‘울릉도를 거점으로 한 간첩단사건’의견서가 보인다. 이들은 모두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 된 ‘피해자’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피해자와 가족들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였다. ⓒ 김대호

기억하라, 중앙정보부 60년

지난 7일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1960~80년대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개사과했다. 대상은 과거 중정·안기부로부터 불법 구금·자백 강요 등 인권침해를 당한 ‘인민 혁명당 사건’, ‘남조선 해방 전략당 사건’ 등 1기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국가 사과를 권고받은 27개 사건의 피해자 및 유가족 등이다.

대표적 조작사건인 인혁당 사건은 1차 (1964년 8월)와 2차(1974년 4월)로 나뉜다.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 중이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1차 인혁당 사건이다. 이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을 가한 사실이 드러나고, 기소 담당 검사들이 기소할 증거와 혐의를 찾지 못해 사표를 내는 등 소동을 벌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2차 인혁당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을 발표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판결 뒤 18시간 만에 8명의 사형을 집행한 사법살인이자,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건으로 불린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중앙정보부는 1961년 5월 20일, 5·16 군사 반란과 동시에 설립되었다. 국가보안법에 기대어 초법적 권력을 행사하며 군사독재 체제를 지탱해준 핵심기관이었다. 그 중앙정보부가 올해 창설 60년을 맞았다.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국민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등 국가폭력의 중심이었던 중정이 회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저지른 폭력은 <그때 그 사람들>, <1987>, <남산의 부장들>과 같은 영화로 제작되어 ‘미디어 속 과거 이야기’로 남았을 뿐이다. <무색사회:중앙정보부60>展은 ‘중앙정보부’라는 국가의 한 기관이 정보를 통제하고 감시한 역사, 독재 권력과 결탁하면서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력, 나아가 지금 우리의 일상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연결 고리를 살펴본다. 전시를 주관한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의 이사인 한홍구 교수의 말이다.

“국가에서 가장 강력한 기관이자,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기관이 중앙정보부이자 지금의 국정원이다. 그런 기관이 설립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그 의미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기관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가한 폭력과 그 잔재를 기억하고자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

우리 일상에 여전한 상처와 트라우마

전시회는 중앙정보부가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저지른 폭력과 인권침해가 우리 사회에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사람들에게는 어떤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지를 8명의 작가가 만든 14개의 작품을 통해 전한다. 작가들은 중앙정보부와 관련된 사건들을 그림, 영상아트, 만화, 조형물 등 다양한 양식으로 그려낸다. 작품들은 국가폭력에 의한 고통의 이야기들, 사회의 상처를 조명한다. 작가들은 인권과 인권을 말살한 거대한 권력의 폭력 이야기들을 지속함으로써, 우리 과거에 대한 반성과 자각,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면서 중앙정보부가 엮어낸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들로부터, 오늘 어떤 현재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확인한다.

▲ <말의 시작> (左) 2015, Acrylic and Oil on Canvas 162x130cm. 침묵의 공간을 상징하는 하얗게 지워진 빈 프레임들을 볼 수 있다. <출몰무대> (右) 2017, Oil on Canvas 130x162cm. 실체는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소리 없는 연극무대는 권력에 노출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노원희

노원희 작가는 <말의 시작>에서 하얗게 지워진 빈 사각형의 프레임들을 그려낸다. 프레임들은 침묵의 공간을 상징하며, 그 침묵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게 한다. 국가폭력에 대해 저항은커녕 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 국가폭력이라는 어두운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상황 등을 의미하는 듯하다. <출몰무대>는 실체는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연극무대를 보여준다. 빈 양복들 사이로 망령과도 같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체가 없어 아무 소리조차 존재하지 않는 연극 무대에서, ‘박정희로 상징되는 국가권력에 대해 그 누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 <국립극장> 2004, Single-channel video. 古 육영수 여사의 저격 장면을 반복 재현함으로써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박정희 시대의 잔재에 대해 얘기한다. ⓒ 송상희
▲ <그날 새벽 안양,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2014, Single-channel video.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소멸된다는 점을, 안양시의 풍경을 통해 보여준다. ⓒ 송상희

송상희 작가의 <국립극장>은 古 육영수 여사의 저격 장면을 반복 재현한다. 한 교수는 “온화하고 따뜻한, 이상화된 육영수라는 인물의 삶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반복되고 살아나는 박정희 시대의 잔재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꼬집은 작품이다”라고 밝혔다.

<그날 새벽 안양,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안양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안양安養은 일종의 유토피아로서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뜻한다. 경찰서, 학교, 경기장, 우체국 등의 기관 시설들을 통해 도시 시스템의 민낯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철저하게 인간을 분류하고 검열하는 SF적 세계가 안양이라는 평범한 도시와 중첩되는 순간들을 예민하게 잡아낸다. 작가는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개인의 사생활은 소멸되고 거대한 기획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 <우리는 We are···> 2012, 스티로폼 조각, 외부용 수성페인트, colored stryofoam, 140x105x35cm. 중앙정보부의 슬로건을 그대로 재현한 조각물. 중앙정보부 스스로 부정적인 면을 부훈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을 꼬집었다. ⓒ 권용주

권용주 작가는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라는, 과거 중앙정보부의 부훈(部訓)을 작품화했다. 작가는 중앙정보부를 만든 보수 정권이 오히려 원훈에서 ‘음지’, ‘무명’, ‘소리 없는’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원훈의 변천사에서 이러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 역대 중앙정보부 부훈(部訓) 변천사. ⓒ 김대호

전시회는 중앙정보부를 넘어 국가가 저지르는 거대한 폭력을 드러낸다. 전시장의 마지막 방은 우리 광주와 미얀마에서 군부정권이 저지른 살인을 고발한다.

▲ <아무리 얘기해도> 2020, a comic book. 작가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5·18민주화운동의 왜곡과 폄하를 지적한다. ⓒ 마영신

'The Tin Drummer'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스티커로 만들어 추모하며 이들의 목숨이 의미하는 바를 되새긴다. 평화박물관은 국가폭력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위해 이번 전시에 'The Tin Drummer'를 초대하였다. 양철북 치는 사람 'The Tin Drummer'는 2021년 발생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상황에서 결성된 작가집단이다. 이 전시에는 25명의 스티커로 구성되지만, 다른 전시에서는 더 많은 영웅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예술가들은 군부독재 쿠데타 상황에서 군사정부와는 어떤 협조도 하지 않을 것을 성명서로 내고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주와 별을 상징하는 조형을 사용하여, 희생자들의 얼굴로 은하계를 형성한다. 평화박물관 관계자는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퍼트리는 추모의 방식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 <미얀마의 은하계 봄> 2021, Installation, piece 25 of sticker, each 5cm diameter.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스티커로 만들어 추모하는 작품이다. ⓒ 양철북 치는 사람 The Tin Drummer

기록하고 기억해야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미처 소개하지 못한 정명우 작가의 <벽치기>, 서평주 작가의 <기억의 궁전> 등 다양한 영상 작품을 포함한 총 14점의 작품을 전시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서울시 구로구 평화박물관 2층에 위치한 <스페이스99> (02-735-5811~2)에서 이달 11일까지다. 2006년 총 4회의 릴레이 전시로 구성된 <안녕, 국가보안법> 展(2006)으로 전시를 시작한 평화박물관은 종로구 견지동에서 10년간 임흥순의 '비는 마음- 제주 4.3과 숭시', '귀국박스전', 홍성담의 '야스쿠니의 미망' 등 수많은 전시회를 개최했고, 박근혜가 출마한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에는 유신 40년 공동주제기획 6부작 전시회 <유체이탈>을 대안공간 풀과 함께 주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무색사회: 중앙정보부 60>은 평화박물관이 구로구 온수동으로 이사한 후 새로 마련한 전시공간에서 조지은 작가의 큐레이팅으로 열린 개관기념전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가폭력 고문 피해자 치유사진전, 국가폭력 피해자 사진 치유 프로그램 운영(2016-2017)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한 교수는 스페이스99에서 앞으로도 자체 전시프로그램과 교육을 통해 역사와 권력이 저지른 폭력의 ‘해원과 복원의 미학’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의 말이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의 완전한 치유는 쉽지 않겠지만, 국가 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 본 기사는 영상뉴스와 함께 제공됩니다. 영상뉴스에서는 미디어 아트 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BJwTzH6GZc


편집 : 유지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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