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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라

기사승인 2021.08.01  21: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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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진 기자 ihj1995@naver.com

- [단비인터뷰] 배옥병 전국먹거리연대 공동대표

배옥병(65) 전국먹거리연대 공동대표는 1970년대에 서울 구로공단 가발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로 출발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2002년부터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로서 학교급식 직영 전환, 교복 공동구매 등 학부모운동에 앞장섰고, 이후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을 거쳐 먹거리 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상임이사로 선임돼 농산물 수급안정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가 주장하는 ‘먹거리 기본권’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5월 21일 서울 혜화역 부근 <단비뉴스> 서울취재본부에서 배 대표를 만나고, 지난달 29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노동운동, 학부모운동에서 먹거리운동으로 

   
▲ 배옥병 전국먹거리연대 공동대표가 <단비뉴스> 서울취재본부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먹거리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임효진

“먹거리운동은 학교 현장의 학부모들이 시작했어요.”

배 대표는 한창 여성노동자운동을 하던 1995년에 아들의 학부모로서 초등학교에 갔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으로 각 학교에 학교운영위원회가 설치됐는데, 배 대표도 학부모위원이 됐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했더니, 급식문제가 건의사항에 가장 많이 올라왔다. 당시 학교급식은 열악했다. 위탁급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아 값싼 수입농산물이 사용됐고, 음식물 관리가 소홀해 식중독 사고도 빈발했다. 그는 학부모 활동으로 학교급식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학교급식에 바퀴벌레 껍데기나 철수세미가 나왔다는 게 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얘기였어요.”

그러나 학교 한 곳을 감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는 2002년 11월 학부모, 교사, 영양사, 농부 등과 함께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학급넷)’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급식 운동을 시작했다. 배 대표는 학급넷의 상임대표로 활동했다. 처음에는 어느 학교가 잘하고 못하는지 정도의 정보 교류 수준에 그쳤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우리 농산물 사용, 직영급식 전환, 점진적 무상급식 실현 등 3가지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정리해 각 시도의 조례제정과 국회 입법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300만 명이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 참여

배 대표가 주도한 학교급식지원 조례제정운동은 전국에서 3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국민운동이었다. 급식조례제정운동은 지역주민들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우리 농산물을 먹이고 농민의 소득을 보장하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촉구하면서 시작됐다. 기초단위 의회가 움직이지 않자, 지방자치법에 따른 주민조례 제정·개정·폐지 청구(주민조례청구) 제도를 이용했다. 

2002년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대전, 인천, 제주 등에서 학부모들이 주민조례청구를 하면서 급식조례제정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서울에서는 2004년에 주민조례청구 서명에 22만 명이 참여했다. 행정안전부가 2017년 내놓은 ‘주민생활에 필요한 조례, 더욱 쉽게 만든다’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적으로 학교급식지원조례에 관한 주민조례제정운동이 일어나 98건의 청구가 제기됐고, 그 결과 조례가 제정되면서 학교급식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배 대표는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 건강 때문에 먹거리 안전에 관한 공감을 형성하고 있었다”며 “아이들도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하교 후에 거리에 나가서 서명을 받아 왔다”고 회고했다. 2010년까지 17개 광역지자체 모두와 기초 지자체 189곳(82%)에서 학교급식지원조례가 제정됐다. 학교급식지원조례에는 학교급식에 안전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질적 개선, 직영급식 확대 등을 통한 위생관리 강화, 저소득층 학생 급식비 지원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후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 

배 대표의 학교급식운동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안전한 먹거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 무상급식운동으로 전환됐다. 2010년 지방선거의 핵심공약으로 친환경 무상급식이 떠올랐고, 학교급식네트워크, 참여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 2200여 시민단체가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를 결성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에 동의하는 시민 3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전국 16개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후보들에게 전달했다. 무상급식을 향한 관심은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실시한 서울시 무상급식주민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전체 학생의 97.4%를 대상으로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야권 5당은 친환경무상급식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무상급식 확대 및 친환경 식재료 조달을 약속하는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가운데가 친환경급식연대 상임운영위원장으로서 정책협약식에 참여한 배옥병 대표. ⓒ 배옥병 페이스북

배 대표는 친환경 무상급식을 위해 쌀부터 전년에 생산된 무농약 쌀로 바꿀 것을 서울시교육청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급식에 쓰이는 쌀은 정부가 쌀값 조절을 위해 사들인 정부미, 즉 묵은쌀이었다. 끈질긴 설득 끝에 무농약 쌀 공급이 시작됐다. 

그런데 친환경 식재료 조달에는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하다. 곡물자급률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 중 국내 생산량 비율을 말한다.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4.7%로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국내 밀 자급률은 1%가 채 안 된다. 국내 친환경 농산물 인증면적은 2019년 기준 전체 농지의 5% 남짓이며, 이조차 감소하는 추세다. 친환경 농산물은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권장량의 1/3 이내로 사용한 농산물을 말하는데, 농촌 고령화로 인해 인증 농가도 감소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생산기반은 적은데 친환경 농산물이 어떻게 공급 가능하냐고 하는데, 정책이 생산기반 확대를 유도하는 쪽으로 가야죠. 그래서 도시 먹거리 정책이 중요해요.”

배 대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푸드하우스(Copenhagen House of Food)를 모범 사례로 들었다. 코펜하겐시는 2007년 설립된 코펜하겐 푸드하우스라는 비영리재단을 지원해 2015년까지 공공기관에서 쓰는 식재료의 90% 이상을 유기농산물로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기농 공공급식은 10%에서 시작해 2017년 90% 목표를 달성했다. 배 대표는 “덴마크 사례를 보고 도시 먹거리 정책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며 “서울시 푸드플랜을 만들면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유기농 비율을 높일 것인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푸드플랜은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공공이 먹거리 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말한다. 

서울 자치구와 농촌 지자체 연결 ‘도농상생 프로젝트’

서울시는 지난 2017년 시민주도형 ‘서울특별시 먹거리시민위원회’를 결성하고 먹거리마스터플랜 실행 계획을 발표했다. 배 대표는 위원장을 맡아 ‘도농상생공공급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도농상생공공급식은 서울 자치구와 농촌 기초지자체를 1:1로 연결해 산지의 친환경 농산물을 직거래로 공공급식시설에 공급하는 것이다. 전남 영광군과 중랑구, 전북 남원시와 동대문구, 경북 안동시와 송파구 등이 각각 손을 잡았다. 소비자에게는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생산자에게는 적정 가격과 지속 가능한 농업을 보장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중소농을 조직해서 다품목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통해 서울시 공공급식에서 요구하는 식재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하는 겁니다. 농민들이 유기농으로 가기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농민들이 유기농으로 전환해서 확실한 수입처가 있고, 수입처가 원하는 게 친환경 농산물이라면 생산방식도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배 대표는 2019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의 푸드플랜 실행 자원 전담 자문가(FD) 일도 하고 있다. FD는 지역 푸드플랜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세부계획 수립부터 실행체계 구축, 집행, 평가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문하는 민간 전문가다. 푸드플랜 정책은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가 ‘2018년 국가 및 지역단위 푸드플랜 수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면서 본격화했다. 푸드플랜은 생산에만 집중했던 과거 먹거리 체계와 달리,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소비·폐기 등을 하나의 선순환 체계로 묶어 관리하는 계획이다. 로컬푸드 직매장, 학교급식 등을 활성화해 신선하고 안전한 지역농산물을 공급·소비하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다. 2020년 기준 전국 67개 지자체(광역 15개, 기초 52개)에서 지역 푸드플랜을 수립했거나 준비 중이다. 

   
▲ 배옥병 대표가 지난 2019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푸드플랜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 배옥병 페이스북

배 대표는 인터뷰 내내 ‘먹거리 기본권’을 강조했다. 먹거리 기본권은 국민 누구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첫 번째는 전체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거죠.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전 국민 먹거리 기본권 보장. 두 번째는 전체 인구 중 10%에 달하는 520만 취약계층의 먹거리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농식품 바우처나 복지시설 급식 같은 방식으로요. 셋째, 공공급식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 먹거리 체계를 공공조달 체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서울시가 하고 있는 공공조달 체계를 (전국적으로) 구축하는 게 중요합니다.”


편집 :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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