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① 가족주의: 한국인의 에너지

“밥그릇 문제에서는 이념의 문제보다 누가 내 울타리 속에 있는 사람인가, 누가 내 가족인가가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신현우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4월 8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가족주의: 한국인의 에너지’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한국의 가족주의에 관해 본인의 경험담부터 털어놨다. 그는 ‘가족’이 한국 사회에서 사람 간의 관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걸 많이 느꼈다고 한다. 김 교수는 80년대 운동권 안에서도 연고에 따라 사람들 노선이 달라지는 걸 목격했다. 그는 사회과학자로서 한국 사회 중심에 가족 네트워크가 왜 생겼는지 질문을 던졌고,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한 문제의식이 연구의 시발점이었다. 그의 연구는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라는 저술로 이어졌다.

경제성장 동력이면서 부작용도

김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가족주의였다고 했다. 가족주의는 과거 경제성장 시기에 가족에 대한 헌신과 열정의 형태로 나타났고,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로 작용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가족주의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이념 이상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며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가족의 범위는 흔히 ‘연고’라고 부르는 학교와 고향이 마치 혈연처럼 작용해서 유대감을 공유하는 집단까지 포함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 이유로 농촌의 붕괴를 꼽았다. 과거 농촌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주로 같은 지역에서 성이 같은 사람끼리 뭉쳤다. 그는 농촌공동체가 붕괴한 70년대 이후에는 혈연 네트워크의 자리를 학연 네트워크가 대체했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연고 네트워크가 가장 많이 작용하는 분야로 교수 채용를 예로 들었다. 그는 국내 대학에서 신규 교수 채용을 할 때, 채용 대상의 이념이나 실력이 좌우하는 것보다 출신 대학에 따른 선후배 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연고주의와 가족 신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트러스트>를 인용했다. 후쿠야마는 연고주의를 비롯한 ‘가족 신뢰’는 혈연 네트워크를 신뢰의 기반으로 삼는 나라에서 많이 나타나는 네트워크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한 혈연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한 신뢰 기반으로 작용하는 사회를 저신뢰사회, 반대로 혈연 네트워크를 넘어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회를 고신뢰사회로 나눴다. 김 교수는 한국 같은 저신뢰사회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가족주의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 저신뢰사회와 고신뢰사회의 차이, 가족신뢰가 사회에서 중요한 네트워크로 작용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 한국경제신문사

가족주의, 권력투쟁의 표현

김 교수는 본인의 논문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에서 “한국 가족주의는 유교 문화의 전통이라기보다는 권력투쟁의 한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권력투쟁의 표현이라는 말은 사회적 신뢰가 없어졌을 때 한국 사람들이 그 잃어버린 신뢰를 대신해주는 대상으로 가족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그는 가족주의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 개신교의 교단 분열을 예로 들었다. 우리나라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북 출신인데, 남북 분단 시기에 월남해 남한에서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북 출신 목사들의 교회는 보수 성향의 예수교장로회와 진보 성향의 기독교장로회로 교파가 나뉜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성경에 관한 해석 때문에 교파가 분리됐지만, 내막에는 평안도 목사들과 함경도 목사들의 출신 지역에 따른 파벌 형성이 원인이라고 말했다.

가족주의 근원에 ‘밥그릇 싸움’

분단 이후 한국 사회의 발전 양상은 좌와 우의 치열한 대립 과정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념보다 더 위에 있는 상위 가치가 ‘가족주의’라고 일컬었다. 그는 “저 사람은 굉장히 진보적이고, 저 사람은 보수적인데 어떻게 친한지 의문을 가져 본 적 있느냐”며 청중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념 이전에 인간의 역사는 누가 먹거리를 차지하느냐에 닿아 있다. 먹거리 투쟁은 곧 권력 투쟁을 의미한다. 권력 투쟁에 있어 한국 사회는 철저히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움직였다.

김 교수는 학연이나 지연을 대표적인 현대판 가족주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전에는 주로 농촌 공동체 중심 가족주의가 나타났다면, 7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 변화에 따라 학연 중심 가족주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학연이 혈연까지는 아니지만 변할 수 없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가령 채용을 하는 문제에서 실력이 모두 엇비슷하다면, 채용자는 자신과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을 뽑을 확률이 높다. 그는 그 이유가 일자리 문제는 결국 밥그릇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밥을 누구와 같이 먹을 것인가는 결국 가족 문제이기 때문에 가족변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김동춘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신현우

한국 가족주의의 뿌리

가족주의가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 이는 6·25전쟁 이후 만성적인 전쟁 위협과 함께 불투명한 미래 전망에 있다. 김 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강해질 수 없는 상황이 가족 네트워크에 더욱 집착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고신뢰사회로 가지 못하고 저신뢰사회에 머무는 이유는 가족 네트워크만이 사회적 신뢰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족 네트워크가 형성된 이후로 가족은 지위를 획득하는 하나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보호 체계로 부상하기도 했다. 가족과 권력이 한데 묶이는 정치적 메커니즘은 1950년대 지역 사회 네트워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5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시·군·읍·면에서 가족 단위로 살았습니다. 이 지역에서 중요한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가족 대 가족의 경쟁이었죠. 연결된 쪽수가 많은 가족에서 시장과 군수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나왔습니다. 또, 이 친족 네트워크 여럿이 모이면 국회의원을 만들 수 있고, 중앙 정부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이어진 네트워크는 그 가족 일원에게 취직자리를 보장합니다. 지금이랑 똑같아요.”

가족주의가 극심해진 데는 이권을 누가 차지하느냐, 다른 말로 하면 먹거리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밥그릇 싸움’에 있다. 밥그릇 싸움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게 이른바 혈연, 학벌, 동향 등으로 묶이는 ‘가족주의’다. 김 교수는 “먹거리를 장악하기 위해 그 집안의 프레스티지(prestige)를 올리는 게 중요했다. 어느 가족에 속해 있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그래서 자신이 특정 친족과 가족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과시한다”고 현상을 설명했다.

이렇게 형성된 ‘가족 관계’가 노동, 정치권, 시민운동 등으로 확대돼 같은 패거리끼리 중요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한다. 가족주의의 현대판 변형 형태인 ‘연고 네트워크’가 사회 전반에서 공식적으로 움직인다. 이 조직들이 결국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가족주의로부터 일자리 문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회 세습, 재벌 세습이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뿐 아니라 가족주의는 중국, 베트남 등 타 공산주의 국가와 달리 북한이 왜 권력 세습으로 국가를 운영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즉, 가족주의는 그 동안 설명이 안 되던 우리 사회 문제의 본질과 같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사회학자로서 이러한 한국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 네트워크 중심 사회가 왜 생겼고,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이해해야만 21세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며 “어떤 네트워크로, 어떤 친소관계로, 어떤 신뢰관계 속에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주의 폐해, 교육열

김 교수는 한국 사람들의 에너지가 ‘가족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헌신과 열정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 해주었지만,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으로 교육열 문제가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극심한 교육열을 가족주의가 만들어 낸 하나의 폐해로 봤다. 그는 특히 교육을 중시하는 집단은 최상층이나 최하층이 아니라 중간에 있는 계층이라고 말했다.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상속과 문화적 자본의 투자인데, 엄청난 경제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상속보다는 문화적 자본 투자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 김 교수의 저서 <한국인의 에너지, 가족주의>는 개인의 보호막인 동시에 지위상승의 발판인 가족주의에 관해 분석했다. ⓒ 피어나

한국의 독특한 경제 구조인 재벌 체제 또한 가족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는 총수의 결정이 기업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이사회나 전문경영자가 결정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책임을 완전히 질 수 있는 오너 체제가 합리적이라고 생각됐다는 것이다. 그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재벌 체제, 혈연적 네트워크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한국 사회의 전쟁, 정치 권력과 기업 관계 등의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시장의 불확실성을 돌파할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혈연 네트워크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재벌이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권력 세습도 설명된다. 북한의 권력 세습을 ‘신봉건주의’, ‘왕조국가’라고 공격하는 의견에 관해 김 교수는 북한이 세습을 선택한 이유는 가족주의가 그들의 정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벌 세습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철학과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최적의 사람은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만성적 위험과 전쟁상황, 미국으로부터 포위된 상태, 체제 붕괴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전통적 가족주의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만성적 위기의식이 가족주의와 결합할 경우 굉장히 보수적인 가족주의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족은 해체되고 있지만…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가족주의라는 ‘생존 전략’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평생 고용 시대가 끝났고, 남성 가장 혼자서 자식을 먹여 살리기 힘들어진 것이다. 김 교수는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기 힘든 현재 상황이 1950년대 이전 상황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가족을 ‘사치재’에 가깝다고 설명한 그는, 전통사회에서 최소한 20% 이상의 사람이 홀로 살았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상대방을 부양할 능력이 없으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상 가족’이 가능했던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가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가족이 해체된 자리에 개인이 탄생한다. 김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를 두고 진정한 개인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이들 세대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개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완전한 개인은 아니지만, 기성세대보다 급진적인 개인이다. 김 교수는 서양과 한국의 부르주아 문화를 비교하며 한국의 근대와 개인주의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서양에서 근대 부르주아 문화는 개인주의와 결합해 있는데 한국에서 부르주아 문화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과 연결된다. 그는 개인이 없는 한국의 근대를 ‘전근대와 근대가 중첩된 시기’였다고 설명한다.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은 통계에서 드러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30.2%나 된다. 1인가구의 비중이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구의 비중을 넘어섰다. 김 교수는 사람들 삶의 방식이 가족 중심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을 찾는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은 사회가 가족주의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새로운 네트워크는 가능할까

“친밀성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인데, 그러면 그 친밀성을 가족이 아닌 어디에서 충족을 시킬 것이냐? 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고,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고, 고백하고 싶어 하고, 자기 것을 주고 싶어 하는데, 어디서 누구와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이냐, 그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친밀성의 욕구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고, 가족에서 충족할 수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충족해야 한다. 김 교수는 서양의 시민사회를 예로 들었다. 협회, 노동조합, 정당 같은 조직이 한국의 가족을 대신했다고 보는 것이다. 서양의 시민사회와 한국의 가족 간 차이는 개인에 있다. 시민사회는 개인에 기초한다. 그가 강의 초반에 언급한 저신뢰사회와 고신뢰사회 간 차이기도 하다.

강의 말미에 김 교수는 영화 <가족의 탄생>을 언급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후반부 경석(봉태규 분)은 애인 채현(정유미 분)의 집을 찾아가고, 채현의 두 엄마인 미라(문소리 분)와 무신(고두심 분)이 있는 집에서 식구가 된다. 이들이 꾸린 가족은 김 교수가 말한 ‘신가족’의 예시다. 21세기 새롭게 만들어질 네트워크에 관해 상상력을 발동해보라고 말한 김 교수는 학생들과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 2006년 김태용 감독 영화 <가족의 탄생>은 세 에피소드 안에 세 형태의 가족을 담았다. 영화에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 블루스톰㈜

“질문은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누구와 가까이 지내면서 즐겁게 놀고, 또 같이 뭔가를 뜻을 도모하고, 일을 같이하고, 사회적 역할을 하고, 친밀성 유지를 하고 이런 식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런 문제이기도 하고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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