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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망치는 ‘공유지의 비극’

기사승인 2021.07.18  12: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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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shimpro1@naver.com

- [심석태 칼럼] 두 젊은이의 죽음을 다룬 보도에 대해

지난 봄, 안타까운 두 젊은이의 죽음을 언론이 보도하는 방식을 놓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언론 전문지 <신문과 방송> 7월호에서는 “죽음도 차별이 되나요”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이 글은 그 중에서 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짚어본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양해를 얻어 단비뉴스 독자를 위해 게재한다.

   
▲ 심석태 교수

평택항과 한강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두 청년의 죽음에 대한 언론 보도를 놓고 논란이다. 한 청년이 항만에서 일하다 비극적으로 숨진 것이 한강 변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던 청년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비해 너무 소홀히 다뤄졌다는 것이다. 언론이 세상을 선택적으로, 차별적으로 바라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어떤 행동의 동기를 찾는 것은 항상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갖는다.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일부 언론에서 유난히 많이 다루는 것도 언론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해석 방법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언론인의 출신이나 경제력 등이 무엇을 보도하는지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는 엄밀하게 연구된 바는 없더라도 경험적으로 타당성 높은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며 언론이 어떤 사안을 다루는 태도를 기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이해하는 데 편리할 수는 있겠으나 실질적 분석으로 나아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평소 어떤 것을 ‘뉴스’라고 인식하는지, 어떤 사안을 더 많이 다루는지 같은 언론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통상 언론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르는 그 대상이 사실은 얼마나 이질적이고 개별적인지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정확하지도 않다. 그 많은 언론인이 극소수의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일 리도 없다. 

언론은 항상 강자보다 약자의 문제에 소홀하지 않느냐는 분석도 비슷하다.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움직이는 큰 흐름을 중심으로 뉴스 가치를 판단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적지 않은 언론이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발굴해서 보도해왔다는 점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 각종 언론상을 심사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훌륭한 보도가 많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저런 언론상 심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매년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다룬 보도가 많았다는 점과 함께 그것을 잘 모르고 넘어갔다는 점에 놀란다. 

추리물처럼 다뤄진 손정민 씨 사망 사건 

손정민 씨 사망 사건과 이선호 씨 사망 사건에 대한 보도로 돌아가 보자. 이 두 사안에 대한 보도를 비교해 보려면 먼저 두 사안의 속성과 전개 과정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손정민 씨 사건은 ‘한강 변 의대생 실종 사건’으로 처음 보도됐다. 첫 보도는 실종된 지 며칠이 지나서였고 손 씨는 곧바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시 수난구조대 활동 실적을 찾아보면 매년 80명에서 100명 안팎의 사람이 각종 사고로 한강에서 숨지지만 거의 보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이례적 측면을 갖고 있다.

   
▲ 서울 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故 손정민 씨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는 팻말. ⓒ KBS

화창한 날씨가 되면 서울 한강공원에서 밤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던 건장한 젊은이가 실종된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한강공원 곳곳을 비추는 그 많은 CCTV에도 불구하고 그 젊은이가 사라지는 과정은 영상으로 남아있지도 않았다. 하필이면 CCTV 사각지대가 있었다. 한강 변은 술을 마시던 청년이 실종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곳인데, CCTV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실종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실종 닷새 만에 발견된 시신을 부검해 익사로 결론이 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두 사람의 음주량 등 사건의 경위가 상당 부분 밝혀졌는데, 사건 초기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었다. 그동안 이 사건은 마치 추리물처럼 다뤄졌고 전통 언론들조차 이런 시중의 호기심에 편승한 보도를 이어갔다. 

언론이 처음 이 사건을 보도한 것은 실종자 신고를 요청하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경찰이 본격 수사를 시작한 날이었다. 언론이 너도나도 보도에 나선 것은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글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호기심 요소를 포착한 유튜버들이 달려들고, 온갖 추측과 확인되지 않은 억지 주장, 나아가 아예 허위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뒤늦게 경찰이 이런저런 사실을 밝혀도, 전통 언론들이 유튜버들의 엉터리 주장을 검증하는 보도를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경찰은 물론 언론도, 누군가의 엉터리 주장을 검증해서 정리할 만한 신뢰와 권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선호 씨 사망 사고를 외면했나?

평택항에서 발생한 고 이선호 씨 사망 사고는 산업재해다. 너무나 충격적인 영상으로 잘 드러났지만, 현장의 안전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는 점이 계속 드러났다. 이선호 씨 사망 사고에 대한 보도가 시작된 것은 한강 변 사망 사건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뒤 며칠이 지나서였다. 역시 유가족이 책임자 사과를 요구하며 장례를 거부하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진 뒤였다. 보도가 시작되자 정치인들이 잇따라 관심을 표명했고, 대통령까지 조문을 갔다.

산업재해로 숨지는 사람은 하루 평균 두 명이 넘는다. 통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하루 평균 다섯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산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작업 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것보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하는 게 비용 부담이 적다는 계산 때문에 이런 일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그런 사회적 논의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모든 억울한 죽음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루 평균 두 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지만 매일 그런 사연이 보도되지는 않는다. 다른 모든 사회현상이 그럴 것이다. 의료 과실로 숨지는 사람, 군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망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문제일수록, 개별 사건 하나하나를 언론이 보도하지는 않는다. 정치인들이 모든 산재 희생자를 찾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조문하러 갈 수도 없다. 이번에도 이 사안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언론 보도 이후에 시작됐다.

   
▲ 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아버지 이재훈 씨가 지난 6월 19일 오전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씨의 시민장(葬)에서 추모사를 하던 중 추모객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언론은 정말 이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을까? 손정민 씨 사건과 이선호 씨 사건을 직접 대놓고 비교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발생한,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사건 보도를 직접 비교하는 것보다는 해당 기간에도 매일같이 일어난 산업재해 전반을 언론이 어떻게 다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맞다.

손정민 씨 실종이 처음 보도된 4월 29일부터 5월 31일까지 지상파 방송 3사 메인 뉴스를 살펴봤다. 지상파 3사가 이 기간에 손정민 씨 사건을 보도한 것은 리포트 35건(중계나 출연 포함)에 단신 1건이다. 이선호 씨 사건을 보도한 것은 리포트 18건에 단신 1건. 그런데 같은 기간에 산업재해를 다룬 보도는 리포트 94건에 단신 3건이다. 이선호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고 당시 작업계획서도 없었다거나, 불법 도급 의혹이 있다는 등의 발굴 보도도 있었다. 신문은 매체별 차이가 크긴 하지만 큰 흐름은 얼추 비슷했다.

언론이 이선호 씨 사건을 외면했다는 질타와 이런 수치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언론이 손정민 씨 사건에만 집중하고 산업 현장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은 외면한다고 생각했을까? 우선 사람들은 이런 지상파 메인뉴스나 신문의 지면 기사만을 언론 보도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방송과 신문들이 조회 수를 의식해 이른바 ‘이슈 대응’ 차원에서 쏟아낸 인터넷용 기사들의 수는 이런 방송이나 지면 기사의 몇 배가 된다. 여기에 ‘언론’으로 통칭하는 다양한 매체들이 쏟아낸 인터넷 기사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손정민 씨와 이선호 씨 개인을 놓고 보도량을 직접 비교하며 젊은이의 목숨을 차별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업재해는 구조적 문제다.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연을 길어 올리는 보도도 있어야겠지만 전반적인 산업재해의 양상을 보도하고, 그 속에서 고쳐야 할 문제들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적 문제는 결국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가치나 일터에서의 위험의 문제 등 부조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김용균, 구의역 김모 씨 등등 수없이 많은 희생이 쌓이며 형성된 것이겠지만 그래도 일터에 나간 사람이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관련 법제도 조금씩 정비되고 있다. 산업재해에 관한 양형 기준도 강화됐다. 언론이 사회적 논의를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의제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그럼 이번 사안에서 언론 보도의 문제는 없는 걸까? 필자는 오히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아쉬움을 갖고 있다. 먼저 개별 보도의 적절성 문제다. 손정민 씨에 대한 보도 가운데 실종에 관한 보도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속보까지는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후 인터넷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들을 쫓아가면서 보도를 이어간 것은 기사 판단 기능을 온라인에서의 관심도에 넘겨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사안이 단순히 재미로만 따라갈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손정민 씨의 죽음에서 어떤 범죄적 단서를 읽어내려는 모든 주장은 그 자체로 함께 술을 마셨던 또 다른 젊은이를 잠재적 살인범으로 지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숨진 사람만 중요하고 살아 있는 그 친구는 중요하지 않나. 손정민 씨 관련 보도는 이선호 씨가 아니라 A 씨라고 알려진 그 친구의 인권과 관련해서 보다 엄정하게 평가돼야 한다. 특히 A 씨나 경찰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무책임하게 전달한 보도들은 그야말로 ‘언론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수사 대상이 된 유튜버들의 허위 주장들과는 별개로, 명색이 정론을 추구한다는 언론들이 이 사안을 놓고 벌인 조회 수 경쟁에 대해 관련자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 지난 6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 노동자 합동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영정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서울 시내 10인 이상 집회가 금지된 가운데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충돌을 빚었다. ⓒ 연합뉴스

다음으로 이선호 씨 사망을 비롯한 산업재해 관련 보도에 대해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상파 방송사 3사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산업재해에 대해 모두 94건으로 평균 거의 매일 1건씩의 보도를 했다는 것은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5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산업재해에 대한 보도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인지는 솔직히 믿음이 잘 안 간다. 위에서 살펴본 기간 이전의 보도에서는 산업재해 사망 관련 보도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5월에 있었던 산업재해 관련 보도가 이선호 씨 사망 사건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의식한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꼭 언급할 것이 하나 있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얘기 말이다. ‘손정민’, ‘한강 변 의대생’, ‘한강 변 실종’ 등등이 키워드로 들어간 기사들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구호를 외치며 경찰서로 행진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순 사고사일 수 있다는 단서를 보도한 언론사 앞에서는 항의 시위도 벌어졌다. 정파적 편 가르기가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이 단순히 이런 맹목적 행동주의의 실상을 거울처럼 비추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문, 방송을 떠나 어떤 언론사든 이번 사안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것이 분명하다. 더하고 덜한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다들 이 사건에 몰린 열기를 잘 활용했다. 별것도 아닌 내용이라도 기사 형태로 써서 올리기만 하면 트래픽이라는 현금을 가져다주는 상황에서 유혹을 느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수익화가 언론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사안은 이선호 씨 사망 사건에 대한 보도와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누가 얼마나 기사 형식의 관심팔이로 돈벌이에 열중했는지, 그래서 언론 전체의 미래에 얼마나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말이다. 이익은 각자가 챙기고 피해는 함께 책임져야 하는 상황, 우리 언론이 빠져든 ‘공유지의 비극’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 :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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