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자산어보'가 보여주는 현대사회

“나는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살려 한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 소설 <흑산>, 김훈 

▲ 죄인으로 귀양 온 정약전과 흑산도 청년 어부 창대는 벗이 되어 서로를 깊이 알아가며 자신도 깊어진다.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영화는 형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의 유배 길로 시작한다. 약용과 그 형제들을 아꼈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즉위하자 노론 벽파는 남인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들은 남인 시파에 속했던 약용 형제들을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성리학을 부정하는 사교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이미 실권은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 정순왕후로 넘어갔고, 신유년(1801) 약용의 셋째 형 약종과 매형 이승훈은 사형을 당했던 터였다. 다른 형제(약전과 약용)들은 천주교를 등졌다는 약종의 신앙고백으로 약전과 약용이  살아남기는 했지만 유배형을 면할 수는 없었다. 조정은 유연하게 신조를 지키는 형 약전이 동생 약용보다  위험한 인물이라 여기고 약용을 강진으로, 약전을 서쪽 바다 끝 흑산도로 보낸다. 

흑산도는 목포에서 약 50해리 떨어진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에 ‘험난한 바다와 악독한 장기가 다른 유배지보다 심하다’라고 기록할 만큼 공포와 두려움의 장소였다. 해변의 높은 바위들로 섬 전체가 검게 보이고, 휘몰아치는 파도는 흑산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약전은 흑산도에 갇혀 자신의 가족과 이별했다. 그는 그곳에서 유배 생활 16년을 보내고 우이도(소흑산도)에서 사망했다.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 

성리학을 추앙하던 조선 시대에 서학을 따랐던 대역죄인 약전은 시대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 경전 속의 선인들을 벗 삼는 약용과도 달랐다. 양반 신분으로 교만을 부리지 않았다. 바다 가운데로 흑산도로 들어온 때부터 술을 마시며 어부와 함께 어울렸다. 약전은 거친 어부와 물고기 그리고 해초에서 피안의 세계를 보았다. 책 안의 세상에서 살아온 그가 직접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그는 모든 사대부가 매진하는 경학 대신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을 쓰기로 한다. 

‘섬 안에는 창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성격이 정밀하여 대체로 초목과 조어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여 그 성징을 이해하고 있었다.’ – 책 <자산어보>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마을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천주교를 믿었던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번에 거절한다. 창대는 집안이 가난하여 배움을 받지 못했지만,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는 '상놈'이었다. 그런 창대가 행여 서학에 물들까 봐 정약전의 요청을 거절했다. 약전은 이 먼 흑산도까지 전해진 주자의 힘을 실감한다. 

▲ 정약전은 독학으로 성리학을 공부하는 창대에게 ‘도움’이 아닌 ‘거래’를 제안한다. ⓒ 영화 <자산어보> 예고편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서학에 물드는 두려움보다 성리학을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 때문일까? 혼자 머리를 싸매며 공부하던 창대는 약전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간다.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라 말하는 창대의 말에 약전은 실학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렇게 둘은 오늘날 현대 어류학의 교본인 <자산어보>를 써 내려간다. 비늘 있는 '인류' 71종, 비늘이 없는 ‘무인류’ 43종, 껍질이 있는 ‘게류’ 68종 등을 특징, 습성, 맛까지 자세하게 실험하고 관찰한 최신식 어류백과사전이다. 

약전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임금 품에 들려는 창대의 욕망까지도 존중한다. 그가 남긴 책 <자산어보>엔 ‘창대가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다수 있다. 200년 전 조선 최고 양반이 어린 '상놈'의 이름까지 기술한다는 건 당시 세계관을 뒤집는 일이다. 

창대는 스승 약전을 떠나 관직을 얻지만, 부패한 성리학과 백성의 고통을 목도하며 혼란을 겪는다. 결국 이미 죽은 사람과 어린아이에게까지 군포를 거두는 파렴치한 아전의 목을 조른다. 이때 창대를 향한 약전의 헌사가 겹친다.

 ‘갑오징어 뼈는 또한 말의 상처와 당나귀의 동참을 다스리는데, 뼈가 아니면 이것들을 고치지 못한다. 또한 먹물을 취하여 글씨를 쓰면 색이 매우 윤기가 있다. 오래되면 벗겨져서 흔적이 없어지지만, 바닷물에 넣으면 먹의 흔적이 다시 살아난다.’  - 영화 <자산어보>  속 약전의 대사 

▲ 정약전은 경학이 아닌, 거친 어부와 물고기를 관찰하며 피안의 세계를 보았다. ⓒ 영화 <자산어보> 예고편

약전은 창대가 오징어 먹물처럼 현실을 살아가며 서서히 그 뜻이 흐려지더라도 언젠가 맑은 물에 담겨 다시 선명해지기를 기원한다. 썩은 성리학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창대를 존중해주는 약전의 마음이다.

흑백영화에서 빛이 보이는 이유

흑백영화는 제작비를 절감해주기도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대상에 더 집중하게 해준다. 화려한 색채가 배제되자 인물이 가진 본질이 보인다. 사소한 행동과 대화도 섬세하게 드러난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에서 '흑'을 담았다면 <자산어보>에는 '백'을 담았다고 말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간다.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약전도 삼정의 문란을 마주했고, 세도정치 하에서 모함을 받고 유배지로 보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약전의 우아한 미소는 흑백 속 빛으로 다가온다.

▲ 창대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성리학을 공부하다 서학을 받아들인 스승 약전의 뜻을 희미하게 발견한다. ⓒ 영화 <자산어보> 예고편

감독은 영화 속에 세 번 색을 가진 장면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창대가 밤바다에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성리학과 서학이 함께 가야 할 벗이라 말하는 약전의 뜻을 희미하게 느끼는 장면에서다. 이때 창대의 마음에 빛이 스며들듯 흑백의 밤하늘에 서서히 색이 입혀진다. 

두 번째는 배운 대로 못사니 생긴 대로 살겠다면서 부패한 아전의 목을 조른 창대가 감옥에 갇혀 약전의 '파랑새 이야기'를 회상할 때 나타난다. ‘창대가 말하기를 성게 입에서 새끼 새 한 마리가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새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비록 껍데기 속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이것이 변해 파랑새가 된 것입니다.’ 창대에게 보내는 시를 끝으로 약전은 숨을 거둔다. 부패한 성리학의 벽을 부순 창대는 흑백영화 속 유일한 파랑새가 되어 희망의 길을 찾아 날아간다. 

마지막으로 색이 입혀지는 장면은 영화의 끝에 흑산이 자산으로 변하듯 색채와 풍광이 살아나는 장면이다. 이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개인을 가두려는 시대에 이를 이겨내는 희망이 서서히 드러난다. 

▲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흑산도는 색채를 찾는다. 흑산은 자산이 된다. ⓒ KBS 숨 터 '흑산도'

영화는 해변의 높은 바위와 밀려오는 파도는 영화 속에서 흑백으로 그려지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에, 물고기에 그리고 인물에게 빛이 입혀진다. 마치 약전이 흑산도의 이름을 '깊숙한 빛이 새어 나오는 자산'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민초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한 약전의 생각과 성리학을 다시 세우려는 창대의 생각이 선명해지고, 두 세계관이 부딪히며 조화를 이루는 우정까지 서서히 드러난다.

역사 속 담담히 부서져 거름이 되었던 민초들

<왕의 남자>, <사도>, <동주>, <박열>까지 사극 영화 장인 이준익 감독은 거대한 사건과 영웅만을 좇지 않는다. 그 시대를 휘몰아치는 두려움과 불안에 신음하지만, 담담히 한 걸음을 내딛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사소한 개인의 삶이지만, 오히려 당시의 세계관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역사책에 이름 하나 달랑 있어도 이준익 감독은 그 인물의 빛나는 순간을 영화로 공감하게 만든다. 또한 위대한 인물 옆에 그에 못지않은 위대한 인물을 그린다. <동주>에는 송몽규가, <박열>에는 후미코가 있었다. <자산어보>에도 정약전 옆에 창대가 있다.

무능한 왕과 정치 밑에서 파도에 부딪힌 건 민초들이다. 영화 속 창대는 정약용의 '애절양'을 직접 마주한다. 과도한 군정에 못 견뎌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며 자신의 음경을 베어버린 사내와 그 부인의 슬픔을 노래한 시다. 무너져 버린 현실에서 창대는 기득권 세력과 야합을 하거나, 아전의 목을 조르며 자기 인생을 부서뜨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감독은 창대의 선택과 약전의 선택을 중첩한다. 

▲ 비범한 영웅이 아닌 민초들은 휘몰아치는 두려움과 불안에 신음하지만, 담담히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다. ⓒ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질긴 민초들의 삶은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전한다. 영화가 끝날 무렵 서서히 자신의 색채를 찾는 흑산도와 함께 현재로 돌아오면 아직도 민중에게 전가되는 고통은 여전하다 느껴진다. 현대 한국사회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여전히 <목민심서>와 <자산어보> 어느 쪽도 택하지 못하고 있다.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정약용과 그보다 먼저 민중의 삶을 바라보고 고통을 함께 하는 정약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진정한 학문의 길을 고민하는 창대가 있었다. 8.15 광복과 6.25전쟁을 겪고 국가 주도의 발전을 이룬 전통 세대와 이들에 대항해 치열한 민주항쟁을 치른 586세대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이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영화 <자산어보>가 던지는 질문이다. 배운 대로 살지 못하면 생긴 대로 사는 ‘창대’가 우리에게도 있을까.


편집 :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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