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전교일등’

▲ 박성준 기자

사회관계망에는 잘나가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근육질 몸매를 뽐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행을 즐기는 사람, 비싼 명품을 은근히 내보이는 사람까지, 다들 자기 자랑하기 바쁘다. 그런 사진에 견주어 내 모습은 초라하다. 질 수 없다. 뭐라도 하나는 기어코 그들보다 잘나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고 운동한 뒤 사회관계망에 인증샷을 올린다. 요즘 나 같은 사람 많다. ‘모닝 루틴’이 붙은 영상이 지난 석 달 새 3000건 넘게 유튜브에 올라왔다. 자기계발을 해야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청년들 자화상이다.

우리만큼 열등감에 찌들어 있는 사람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왔다. 옆집 친구가 영어 백 점 맞아오면 나는 국어에서 백 점을 맞아야 했고 그게 안 되면 축구라도 그보다 잘해야 했다. 대학 입시는 어땠나? 나는 지방대인데 친구는 ‘스카이’ 간 게 친구들 사이 이슈였다. 

열등감의 근원은 경쟁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일등이 되려면 한 사람 한 사람 꺾고 정상을 향해 혹독하게 자신을 밀어붙여야 한다. 세상이 점점 ‘전쟁터’가 되어 간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건 쉽지 않다. 끈기와 열정 그리고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거기에 칼을 꽂을 수 있는 잔인함이 받쳐줘야 한다. 이렇게 맨 꼭대기에 오르면 사람들 존경을 받고 권력까지 거머쥔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다는 건 공기가 희박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 산소가 부족해 제대로 생각을 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높은 곳에서 출발한 사람은 인간의 도리를 무시한 채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오만에 빠진다. 엘리트 의식에 젖은 ‘전교 일등’들이 그렇다. 상당수 의사와 법관들이 괴물로 자라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구설에 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기가 적은 곳에 오래 있어온 탓이다.

▲ 경쟁에서 이겼다고 경쟁자들보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 Unsplash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과 삶의 행복은 다른 문제다. 남들과 하는 경쟁에서는 이기지만 자기 인생에서는 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최후의 승리란 없다. 승자가 힘이 빠지면 다른 경쟁자가 그 자리를 빼앗는다. 야생에서 영원한 강자가 없는 것과 같다. 경쟁을 통해서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등보다 일류가 돼야 한다. 일등은 남을 이기지만 일류는 자신을 이긴다. ‘어제의 나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 어제의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 이처럼 성찰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일류’라 부르고 존경한다. 남을 짓밟는 일등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일류가 될 수 없지만, 자신을 이기는 일류는 굳이 일등이 될 필요가 없다.

서점에 가면 남들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많다. 반면 현자들은 우리에게 욕심부리지 말고 베풀라고 가르쳤다. 노자는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했고 공자는 ‘자기 자신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는’(克己復禮) 것을 인(仁)이라고 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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