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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향한 두 여정, 미얀마와 앙뚜

기사승인 2021.07.09  09: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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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욱 PD odw0201@nate.com

- [미디어비평]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는 협회 사이트에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이'들의 수를 알리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1일부터 7월 8일까지 898명.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인된 사람 수만 세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많다. 미얀마 군부 세력이 폭력으로 독재를 이어갈수록 이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시민들은 ‘정치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존재 가치와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사진 왼쪽 상단부터 시작하는 파란색 선은 '린포체'인 앙뚜와 그의 스승 우르간이 걸어간 길이다. 두 사람은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바리나시를 거쳐 중국 국경지대인 라충에 도착한다. 구글 지도로 추정한 거리는 2,470km에 이른다. © 구글 지도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린포체(환생한 큰 스님) 앙뚜는 인도 라다크에서 티베트 캄에 있는 자기 사원을 찾아 길을 떠난다. 평균 고도는 해발 3500m고 길이는 총 3000km가 넘는 멀고 험한 여정이다. 열두 살 앙뚜는 자기 사원을 찾아가기 위해 이 길을 걸어간다. 린포체로서 그가 해야 하는 일이다. 오직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일흔 살의 스승 우르간이 그 길을 함께 한다. 자기 사원을 찾아 떠나는 앙뚜와 스승 우르간의 간절함이 왜 민주화를 바라는 미얀마 시민의 그것과 겹쳐 보이는 걸까?

린포체의 운명

앙뚜는 전생의 기억을 갖고 환생한 승려 린포체다. 전생의 이름은 ‘족첸 귤멧 나톤 왕보’. 티베트 캄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고승이다. 앙뚜와 같은 린포체에게는 한 가지 운명이 있다. '자기 사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앙뚜는 여섯 살에 린포체에 올랐지만, 7년째 전생에 제자들을 가르치던 티베트의 자기 사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 마을 잔치에 찾아간 앙뚜와 우르간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음식을 얻어먹는 앙뚜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다. ©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앙뚜는 인도 라다크의 작은 암자에 산다. 오랫동안 자기 사원으로 돌아가지 못해 공부하던 라다크 사원에서 쫓겨났다. '한 사원에 두 린포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이다. 본래대로라면 전생에 가르친 제자들이 라다크로 찾아와 앙뚜를 캄의 사원으로 데려갔어야 했다. 중국 정부의 티베트 병탄과 국경봉쇄로 그 길은 막혔다. 앙뚜는 암자에서 제자들을 기다리며 7년을 보냈다. 그동안 전생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라다크 사회의 배척은 심해졌다. 린포체로서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린포체는 환생자의 운명을 이행해야 한다. 앙뚜가 스승 우르간과 함께 자기 사원을 향해 길을 떠난 이유다.

미얀마 청년의 운명

“누가 체포되든 이 항쟁을 앞으로 계속해 나간다”, 몽유와 지역에서 항쟁을 벌이다 체포된 청년 지도자 웨이 모 나잉(26)은 이렇게 외쳤다. 군부에 저항하는 청년들은 웨이 모 나잉의 말을 기억한다. 지난 10년간 민주적인 시절을 보내왔는데 나라가 갑자기 퇴보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청년들은 항쟁 대열의 맨 앞에 섰다. 몽유와 지역에선 칸 웨이 표(26)가 웨이 모 나잉의 뒤를 이어 청년들을 조직했다. 군부는 불법 체포와 고문, 증거조작으로 항쟁을 진압했다. 프라임 뉴스 시간에는 체포당한 젊은 시위 주동자들이 고문당한 모습을 내보내기도 했다. 미얀마 시민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 군부의 탄압으로 미얀마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열린 양곤 약학대 1학년 칸 니하르 하인의 장례식 장면. © KBS

미얀마 혁명이 시작되기 전에도 군부가 통치하는 미얀마는 죽음과 공포의 공간이었다. 군부는 소수민족 학살, 노동자 억압, 언론사 폐간, 정적 숙청, 고문과 납치를 지속했다. 미얀마에서 첫 번째 쿠데타를 일으킨 네 윈은 아웅산 장군이 소수민족과 연방정부를 구성하겠다며 맺은 팡롱협약을 어기고 로힝야족을 학살했다. 아웅산 수치는 25년간 자택에 감금당했다. 미얀마 청년들은 군부독재 밑에서 ‘시민으로서의 죽음’ ’일상의 죽음’을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민주화는 운명이다.

혼자는 갈 수 없는 길

앙뚜가 티베트로 향하는 길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행선지가 맞아 가까운 곳까지 태워주는 트럭 기사도 있고, 심심한 앙뚜와 함께 배드민턴을 쳐주는 또래 아이도 있다. 인도 라충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추운 곳에서 떠는 앙뚜를 안으로 들여 따뜻한 나이 차를 대접하고, 중국이 곳곳에서 국경을 막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앙뚜는 그들이 사는 도시 야경을 보면서 “땅에 있는 별빛”이라고 한다. 하늘에 외롭게 뜬 별이 아니라 연결된 별, 앙뚜에게 그 불빛은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별’이다.

   
▲ 앙뚜는 자기 사원을 찾아 인도 북부 라다크에서 티베트 캄까지 걸어간다. 늙은 스승과 함께 아직 덜 여문 두 다리로 길을 떠난다. 티베트 캄으로 가려면 산을 여럿 넘어야 한다. 영화는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히말라야산맥을 자꾸 비춘다. 두 사제가 가야 할 길은 그만큼 힘들다. © <다시 태어나도 우리>

군부의 탄압이 심해질수록 미얀마 시민은 연대한다.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60일간 진행된 냄비 투쟁, 3월 24일 진행된 총파업과 침묵시위는 대표적이다. 주부들은 집집마다 가정용 바지를 준비했다. 시위대가 도망 오면 자기 아들 딸이라고 하려고. 지금도 미얀마 전역에서 시민 불복종운동이 매일 진행되고 있다. 파업이 오래 계속되면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연대로 극복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만달레이 지역의 청년 지도자 타이자 산은 <다큐앤드뉴스> 대표인 김영미 PD와 인터뷰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필요하면 가져가고 남으면 기부하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식료품을 주민들끼리 나누고 있다”고 증언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함께하고 있다.

동행의 의미

티베트를 향해 떠나기 전, 앙뚜와 우르간은 갈등을 겪었다. 우르간이 “좋은 린포체가 되려면 교리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자, 앙뚜가 성질을 낸 것이 발단이었다. 우르간은 스승으로서 해야 할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앙뚜는 사원으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공부 얘기만 하는 스승이 미웠다. 우르간과 앙뚜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다. 우르간의 잔소리는 고성으로 바뀌었고, 앙뚜는 암자를 뛰쳐나와 집으로 향했다.

   
▲ 인도 라충에서 티베트 캄으로 가는 길. 두 사제는 깊은 눈을 헤치며 가고 있다. 앙뚜는 "스승과 함께라서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갈등은 앙뚜와 우르간이 티베트 캄으로 가게 되며 풀렸다. 목표를 향해 걷자 앙뚜의 막연하던 불안감은 극복 욕구, 도전 욕구로 바뀌었다. 목표를 향해 함께 걸으며 제자는 길을 함께한 스승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스승은 자기 사원을 원하는 제자를 헤아린다. 동행을 통해 관계가 바뀐 것이다. 둘은 같이 사는 미래를 약속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앙뚜는 “15년 뒤 공부가 끝나면 스승을 모시고 살 것”이라 다짐한다. 앙뚜와 우르간에게 남은 것은 ‘함께 사는 미래’다.

미얀마 ‘혁명’의 마지막 장면

시위에 함께 나선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의 압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고자 한다. 민족이나 계층, 종교를 넘어서 한마음으로 뭉쳤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섰다. 민족이 달라 학살당했던 소수민족이 시민의 편에서 참전 의사를 밝히고, 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가 시위의 전면에 나서며, 불교국가에서 억압받던 이슬람과 기독교인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남성우월주의가 강한 미얀마에서 여성들이 ‘여성 치마 아래로 지나가는 남자는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을 이용해 군경이 진입할 곳에 치마로 바리케이드를 치기도 했다.

   
▲ 미얀마 시민들은 '연대'의 힘으로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있다. © KBS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을 통해 민족, 종교, 사회, 성별 억압에서 해방되고 있다. 사회 다수인 버마족 시민들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소수민족 군대는 시위 중인 버마족 시민들을 보호하고 군사훈련까지 시켜준다. 타 종교를 배제하고 불교 교리만 강요하는 모습도 사라지고 있다. Z세대 3인 지도자인 에이 띤자 마웅(양곤), 타자 산(만달레이), 와이 모 나잉(몽유와)은 각각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신자지만, 각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성역화한 불교를 넘어서고 있다. SNS에서는 남성 시위자가 남녀차별 철폐를 태그하며 여성 치마를 머리에 두른 사진을 올린다. 시민들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해방을 경험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에게 남은 것은 항쟁하며 얻은 ‘해방'의 경험이다. 이것은 ‘함께 사는 미래’를 약속하게 한다.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내각 인원 60%는 소수민족 출신이다. 두와 라시 라 대통령 대행은 카친족 지도자이고, 만 윈 카잉 딴 총리는 카렌족이다. 지난 5월 29일에는 소수민족 무장조직인 친국민전선(CNF)과 첫 동맹을 체결하기도 했다. 미얀마 ‘혁명’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일까?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마지막 장면은 어린 린포체와 늙은 스승이 미래를 함께하길 약속하는 장면이다. 해방된 민족, 종교, 계층 그리고 성별이 함께 사는 미얀마, ‘봄 혁명’의 마지막도 이런 장면일까?


편집 : 최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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