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종부세’

▲ 고성욱 기자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 게 그게 차별이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군이 대동법 유보를 주장하는 신하들을 비판하며 한 말이다. 대동법은 공납을 쌀로 통일하고, 과세기준을 결수로 바꿔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이다. 당시 지주∙양반층이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은 지금 ‘종합부동산세’를 ‘세금폭탄’이라고 부르는 기득권과 비슷하다.

<뉴스톱>에 따르면 2020년 종부세는 주택공시가격 6억 원, 1가구 1주택자 경우 9억 원 이상이면 고지서가 발부된다. 공시가격과 실거래가에 차이가 있어 아파트는 실거래가 14억 이상이면 종부세 과세대상이다. 보수 언론은 ‘강남 집 가진 연봉 1억 직장인, 5년 후 소득 절반 종부세로’ 같은 자극적인 기사로 우리나라 인구 3%에 해당하는 종부세 대상자를 마치 대다수가 대상자인양 기사를 썼다. ‘종부세’는 공시가격합계액이 과세기준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매기는 세금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처음 시행했다. 종부세 대상자는 전체 인구 중 상위 1%밖에 안 됐지만 야당과 보수 언론은 ‘세금폭탄’이라며 반발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12%까지 떨어졌고 여당은 잇달아 선거에 패배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3년 만에 종부세가 폐지됐고 ‘부동산 불패’는 ‘진실’이 됐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 KBS

문재인 정부는 더 강력한 종부세 정책을 사용했지만, 부동산은 급등했다. 세제 개편과 2.4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집값은 잠시 하락세를 보였다. 4.7 재보궐 선거 이후 재개발 지역 중심으로 다시 올라갔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직후 용적률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해 재개발 기대감을 부풀렸기 때문이다.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여당은 패인을 부동산정책에서 찾았다. 문제는 부동산정책의 방향이다. 여당은 결국 종부세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이에 보수 언론은 ‘민주당이 드디어 민심을 읽었다’며 부추겼다. 

민주당은 대선을 8개월 앞둔 지금 무엇이 민심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서울 인구 60%는 무주택자다. 당장 입김이 센 상위 1%를 대변한다고 해서, 그들이 여당에게 표를 주지는 않는다. 단기로는 공공임대주택 확충과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야 하고, 장기로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 토지공개념 3법을 주장한 노태우 정부. ⓒ KBS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 사용료는 개인이 사유할 수 없고 사회 전체가 누려야 한다고 했다. 사회는 진보하는데 극심한 빈곤과 주기적 경제 불황이 존재하는 원인이 토지 사유에 있다고 본 그는 토지 독점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심각하게 비판하며 ‘단일토지세’ 도입을 제안했다.

광해군은 폭정으로 인조반정을 맞았지만 ‘대동법’은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지금 토지공개념을 이야기하면 좌파라 비난하지만, 과거에도 도입한 사례가 있었다. 민주정부도 아닌 노태우 정권 때다. 토지∙주택 문제는 정쟁 대상이 아닌 생존 문제다. 폭군과 군사정권 계승자에게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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