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위원장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폭증하면서 지난해 음식 배달 거래액이 전년 대비 43% 늘어난 20조1005억 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오토바이 등으로 배달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라이더)의 일거리도 그만큼 늘어났다. 배달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는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37) 위원장도 더욱 바빠졌다. 그는 주중에 유니온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배달을 나간다. 지부 모임에 참석하고, 언론에 기고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일 등으로 주중 일정이 빼곡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동교동의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박 위원장을 만났다.

주중엔 노동자 권익보호, 주말엔 직접 배달 전선에

▲ 서울 동교동의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박정훈 위원장. Ⓒ 이강원

라이더유니온은 대표적인 ‘플랫폼노동자’ 결사체다.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플랫폼은 노동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데, ‘알바천국’이나 ‘알바몬’ 같은 모집 사이트는 단순 중개로 일이 끝난다. 반면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의 배달중개 플랫폼은 단순 중개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 제공부터 노동의 대가 지급까지 전 과정에 관여한다. 여기서 라이더 문제가 시작된다.

박 위원장은 배달의민족 등 배달중개 플랫폼이 극단적인 노동유연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달노동자를 직원으로 고용하면 해고하기도 어렵고 4대 보험 같은 고정비도 나가기 때문에, 배달중개 플랫폼기업이 배달노동자들을 ‘사장님’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고, 플랫폼기업은 ‘바로고’나 ‘부릉’같은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라이더가 이 배달대행업체와 사업자간 위·수탁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만든다. 라이더는 자영업자 신분으로 배달대행업체에서 일감을 받는 것이다.

▲ 충북 제천시 청전동의 바로고 사무실 앞에 주차된 배달용 오토바이들. 배달중개 플랫폼 ‘요기요’가 연상되는 로고가 찍혀 있다. Ⓒ 이강원

박 위원장은 “하지만 배달노동자는 배달중개 플랫폼의 업무지시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배달중개 플랫폼이 만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일감을 받고, 많은 경우 그 회사의 로고를 달고 배달한다. 개인 사정으로 일감을 거부하면 알고리즘이 작동해 일정 시간 일거리를 주지 않는 페널티(불이익)가 부과된다. 음식배달앱 ‘쿠팡이츠’는 배달노동자 동선 감시 기능도 있다. 박 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배달노동자의 권익 침해에 맞서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효순이·미선이 사건'에서 시작된 '운동가 인생'

박 위원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지난 2002년 경기도 광주에서 미군 차량에 두 여중생이 압사당한 ‘효순이·미선이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학교 급식과 복장, 체벌 등에도 문제제기를 했다. 2013년에는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이 일로 2014년 4월부터 1년 6개월간 복역하면서 집중적으로 노동법을 공부했다. 그는 출소 후 시간제노동(아르바이트)을 하면서 2016년부터 2년여 동안 알바노조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알바노조를 그만둔 후에 그는 맥도널드의 라이더가 됐는데, 2018년 7월에는 ‘100원 폭염수당’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배달노동자는 폭우나 폭염 등 기상 조건에 상관없이 배달 한 건당 400원 수당을 받았다. 어느 날 ‘더위에 쓰러질 것 같다’는 동료의 말이 그를 붙잡았다. 한 달간 이어간 시위에 라이더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언론과 사회도 주목했다. 그는 “이 관심을 노조로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회고했다.

온라인 오픈채팅방에 노조 활동에 관심 있는 라이더들이 모였다. 온라인 모임은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결됐다. 처음 모임에 열댓 명이 나왔는데, 이들이 라이더유니온의 주축이 됐다. 2019년 5월 1일 노동절에 배달노동자 50명이 라이더유니온의 출범을 알리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종로구 청와대까지 오토바이 행진을 벌였다. 라이더유니온은 노동법상 정식 노조로, 2020년 11월 고용노동부에서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았다.

▲ 지난해 1월 라이더유니온 사무실에서 열린 노조설명회에서 가입 방법 등을 설명하는 박정훈 위원장. ⓒ 라이더유니온

노조결성에 '반신반의' 혹은 '악플'

라이더유니온이 출범하자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악플(악성 댓글)이 달렸다. ‘라이더가 무슨 노동조합을 만드느냐’는 내용이었다. 박 위원장은 “이런 시선이 악플을 다는 사람과 유니온을 좋게 보는 사람 모두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라이더들은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존재가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라이더들 자신도 노동조합에 관해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는 “50명만 모여도 성공이라 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1년 현재 라이더유니온의 조합원은 700명이 넘는다.

“인식은 바뀌죠. 라이더가 무슨 노조냐 하는 인식이었는데, 지금 뭐 그런 주장을 하는 라이더는 없어요. 이제 사람들에게 라이더 유니온은 보편적 사실이 됐습니다.”

유니온은 출범 직후인 2019년에 라이더 근무환경에 관한 실태조사를 했다. 보험 문제, 안전사고 문제에 관한 사례를 수집하고 고발했다. 지난해 1월에는 요기요와 배달의민족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해 10월에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과 DH코리아(요기요)는 플랫폼업체가 사실상 고용자라는 점을 인정하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지난 2월에는 학원 직원이 배달원에게 막말을 한 ‘학원강사 갑질 사건’에 개입해 가해자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 라이더유니온이 거둔 성과를 설명하는 박정훈 위원장. 그는 “유니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이강원

'안전배달료 도입' '보험료 현실화' 등 국회에 요구

라이더유니온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아직 라이더의 권익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 위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여전히 라이더들은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라이더들은 실질적으로 플랫폼의 지시를 받지만 이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법의 보호 바깥에 머문다. 위험에도 자주 노출된다. 배달 건수가 많아야 돈을 벌 수 있고, 배달 앱의 알고리즘은 이들에게 촉박한 시간을 제시하기 때문에 라이더는 더 빨리, 더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박 위원장이 지난해 낸 책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를 보면 음식 픽업(인수)에 10분, 배달하는 데 10분, 다음 콜(호출)을 기다리는 데 10분이 걸리면 한 시간에 2~3개 배달이 한계고 최저임금도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전국 배달노동자의 노동실태 분석과 정책 대안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배달노동자들이 주당 평균 5~6일, 하루 9.6시간을 일해서 월평균 256만5000원을 받는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라이더는 산재보상을 받기도 어렵다.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된 라이더들이 산재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최소 월 124만2100원 이상 벌면서 월 118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데, 적용조건이 까다로워 가입률이 낮다. 지난 3월에 나온 <월간 노동법률>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보호 동향’을 보면 이들 중 3%만 산재보험에 가입한 상황이다.

라이더 개인이 보험을 들기도 어렵다. 30대 무사고 기준 이륜차 보험료는 1년에 3백만 원 정도다. 20대는 6백만~7백만 원까지 올라간다. 대인배상과 대물보상 용도이고, 본인이 다치는 것은 제외하는 데도 그렇다. 라이더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4월 28일 국회에서 ‘정책배달’ 행사를 열고 ‘안전배달료 도입’ ‘배달대행사업 등록제 도입’ ‘플랫폼 갑질 규제’ ‘오토바이 보험료 현실화’ ‘공정하고 투명한 알고리즘 시스템 도입’ 등을 요구했다.

▲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 4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안전배달료 도입과 배달업등록제 등을 요구하는 ‘정책배달’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김웅(국민의힘), 장철민(더불어민주당), 심상정(정의당), 이수진(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 라이더유니온

사고 빈발 쿠팡과 단체교섭 추진 중

안전배달료는 시간당 4건 배달료를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보다 더 많이 보장해주는 제도다. 1시간에 4건 이하로 배달하면 라이더는 교통법규를 준수하며 일할 수 있다. 오토바이 보험이 내려가면 이를 갚기 위해 라이더가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알고리즘이 투명하게 운영되면 라이더들은 자신의 활동 반경에 맞춰 배차를 선택할 수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해 쿠팡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쿠팡 측이 라이더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차원이었다. 또 배달료 삭감과 과도한 장거리 배달, 무보험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요구했다. 쿠팡은 교섭에 응했지만 쿠팡이츠를 자회사로 분리하면서 라이더유니온이 다시 교섭요구를 해야 했다. 현재 라이더유니온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 등 다른 노조와 창구단일화 작업을 하고 있다.

▲ 대형 플랫폼기업인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에 맞서 노동자 권익 투쟁에 나선 라이더유니온의 행진 포스터. Ⓒ 라이더유니온

박 위원장은 단체교섭 등에서 라이더유니온이 겪는 어려움에 관해 “운동과 갈등 속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며 잘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등에 고정칼럼을 쓰면서 배달노동자를 포함한 불안정노동 전반의 문제를 드러내고 대안을 촉구하는 일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편집 : 나종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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