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실험실] '위안부 판결', 주권 평등과 인권 사이에서

한 나라의 법원이 다른 나라의 정부를 재판할 수 있을까. 지난 1월과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두 재판부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한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고, 다른 재판부는 재판 자체를 열 수 없다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전혀 다른 결론으로 나뉜 배경에는 국제법의 주요 개념인 ‘주권 면제(국가 면제)와 강행 규범(절대 규범)’이 있다.

주권 면제는 ‘국가는 타국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국제법의 주요 원칙 가운데 하나로서, 주권 평등의 원칙을 보장하는 수단이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 자체가 ‘주권 면제’를 이유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4월 재판부(제15민사부)는 ‘주권 면제’를 이유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심리하기 위한 ‘재판 자체’를 열 수 없다고 봤다.

반면, 강행 규범은 국제 사회가 따라야 하는 절대 규범을 말한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주장하는 측에선, 일본 제국이 조직적·계획적으로 자행한 ‘일본군 위안소 운영’ 자체가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강행 규범에 위반하기 때문에, ‘주권 면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1월 재판부(제34민사부)는 판결문에서 “(주권 면제 이론은) 절대규범을 위반하여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 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적었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내가 살아있는 증거”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사실을 전 세계에 최초로 공개 증언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22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15명만이 남아있다.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의 ‘각하 결정’에 항소했다. 주권 면제와 강행 규범, 주권 평등과 인권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무게를 둬야 할까.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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