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한미관계'

▲ 고성욱  기자

주변에서 쓸데없는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이라고 답할 것 같다. 남들은 내가 신중하다고 말하지만 실은 겁이 많은 편이다. 일을 시작할 때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차일까 봐 두려워 고백을 못 한 적도 있다. 

이런 내 성격을 프레임 관점에서 보면 ‘회피 프레임’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책 <프레임>에는 ‘회피 프레임’과 ‘접근 프레임’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회피 프레임’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성공보상보다 실패 가능성에 주목한다. 성취감을 맛보기보다는 일을 도모하다 망신을 당하거나 자존심 상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반면에 ‘접근 프레임’에 능숙한 사람들은 실패의 불안감보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면서 얻는 ‘보상’과 성취감에 중점을 둔다.

<구약성서>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12명을 보내 정탐을 한다. 10명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들의 힘이 강하다며, 가나안 땅에 발을 붙이기 전에 패배할 것이라는 부정적 이야기를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강조한다. 진입하는 것에 회의적인 10명은 ‘회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접근 프레임’을 가진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정착에 성공한다. 

▲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KBS

’회피‘와 ’접근‘의 프레임은 사람뿐 아니라 국제외교에도 통용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미국 쪽으로 한발짝 다가갔다. ‘회피 프레임’에 갇힌 보수 언론은 과거 고립된 사례를 들며 하루빨리 미국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중국을 겨냥한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가입을 미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미루는 행동이 ’한미동맹‘을 해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냉전체제 속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에게 버림받아 중국의 속국이 될 것이라고 극단적인 비판을 하는 이도 있다.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를 ‘이해 상관자’(stakeholder)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여러 번 이런 구실을 할 기회가 있었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클린턴 정부의 ‘페리 프로세스’와 문재인 정부 초기의 ‘한반도 운전자론’ 등이 있다. ‘페리 프로세스’는 보수적인 부시 행정부로 바뀌면서 실패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던 ‘한반도 운전자론’은 싱가폴 회담 결렬로 좌초했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서 우리나라는 큰 위기에 직면한 듯하지만 ‘이해 상관자’ 구실을 할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보수 언론도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미국이 전부였던 시기가 있었다. 미국 원조로 경제성장 토대를 마련했고, 사회 기반도 미국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국 의견이 곧 우리나라 의견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미국 의견에 반대하면 천벌을 받을 거야’ 같은 최악의 결말만을 생각하는 ‘회피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위험하다. 위험하다 해서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항상 ‘실패’다. ‘접근 프레임’으로 실패의 위험성 대신 성공의 가능성에 주목할 때가 됐다. 최인철은 “안락한 지대에서 벗어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용기 있는 행동은 오직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만 가능하다”고 했다. 한미관계도 그래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성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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