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당신을 기다리는 '심심한 책방'

기사승인 2021.06.05  12:22:42

공유
default_news_ad1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 [단비현장] 그림책·만화책 전문 독립서점 운영하는 신혜원·이은홍 작가

초록이 짙은 지난 5월, 산 넘고 물 건너 작은 책방에 도착했다. 좁고 굽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 도착한 이 책방은 충북 제천시 덕산면 신현2리 월악산 자락에 있다. 용바위 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에는 약 80가구가 산다. 주민 대부분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다. 마을 인구는 100여 명 정도다. 대부분은 사과나 브로콜리, 치커리 같은 양채 농사를 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이 마을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뒤 도시에 나갔다 다시 돌아온 30·40대 주민 10여 명이 살고 있다. 농촌치고는 ‘젊은 마을’인 것이다. 그리고 여느 마을에서는 보기 어려운 멋진 책방도 이곳에 있다. 

지난달 13일, 그림책·만화책 전문 독립서점 ‘심심한 책방’의 문을 두드렸다. 책방을 운영하는 신혜원(58)·이은홍(61) 부부를 만났다. 아내인 신 씨가 서점 대표를 맡고 있다. 신 대표는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펴낸 그림책 작가다. 남편 이 씨는 만화책을 주로 펴낸 만화 작가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19년 <평등은 개뿔>이라는 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 '심심한 책방' 건물 앞에 신혜원(오른쪽)·이은홍 부부가 나란히 서있다. 책방 외벽에는 신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심심이’가 그려져 있다. © 오동욱

‘심심한 책방’은 작가인 두 부부의 작업 시간 확보를 위해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함께 생활했던 아들(31)은 어느덧 독립해 서울에서 살고 부부만 남아 오붓하게 책방을 돌본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라면 ‘심심한 책방’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궁금해 할 것이다. 신 대표는 심오한 뜻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심심하면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놀 궁리를 한다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심심할 때 와서 책을 보고 놀 수 있는 그런 책방이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지었어요. 손님들이 오면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옆에 있던 이 작가가 거들었다. ‘심심한’ 산골에 있으니까 ‘심심한 책방’이고, 우리가 심심한 위로, 심심한 사과, 마음을 다한다고 말할 때 쓰는 ‘심심’, 그런 마음을 다하는 ‘심심한 책방’도 된다고 말했다.

   
▲ 지난 2019년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해 만든 <평등은 개뿔>이 책방 한 편에 비치돼 있다. © 오동욱

꿈만 꿨던 책방을 열 수 있었던 이유   

신 대표와 이 작가는 문화 운동단체에서 일하다 만나서 1989년 결혼했다. 몇 년 뒤, 부부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예쁘고 작은 집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뭐 하는 곳인지 물어봤다. 어느 콜라주 작가가 작업실로 쓰면서, 자신의 작품도 파는 곳이었다. 부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동네 책방을 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2004년 제천으로 이사한 뒤, 9평짜리 작은 집을 구했다. 부부는 갖고 있던 책들을 꽂아놓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한동안 책방의 꿈을 접었다. 

그러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었다. 먼 곳까지 찾아가 작고 예쁜 공간을 둘러보며 행복을 느끼는 ‘소확행’ 문화가 번졌다. 독립서점만 구경하러 다니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런 변화에 부부는 용기를 얻었다. 

   
지난 13일, ‘심심한 책방’ 내부에서 1시간 30분가량 인터뷰를 진행했다. 왼쪽은 신혜원 씨, 오른쪽은 이은홍 씨. © 오동욱

제천으로 터전을 옮긴 지 16년만인 지난해 5월 16일, ‘심심한 책방’의 문을 열었다. “독립 책방이나 작은 책방을 하셨던 분들이 기반을 쌓아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용감하게 이 산골에서 열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신 대표가 겸손하게 말했다. 

개점 잔치는 마을 사람 몇 명만 불러 조촐하게 치르려 했다. 그런데도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50여 명 넘는 손님이 책방을 찾아왔다. 지역에서 만드는 쿠키를 주문해 음료와 함께 다과를 나눠 먹었다. 

책방의 전반적인 관리 및 운영은 신 대표가 맡고, 이 작가는 ‘책방지기’, ‘책방 전무’, ‘이사’ 등의 호칭으로 불리며 아내를 도와 책방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 ‘심심한 책방’의 책 큐레이팅 및 운영은 주로 신 대표가 맡고 있다. 판매하는 책의 대부분은 그림책과 만화책이지만 문학이나 인문학 관련 서적도 책방 한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오동욱

작가초청 행사부터 책 동무 회원제 프로그램까지···1년 만에 널리 알려져 

‘심심한 책방’에 큰 출판사의 책은 거의 없다. 마케팅을 잘하는 큰 출판사의 책은 이곳에서 팔지 않아도 잘 팔리니까, 영세한 출판사나 독립 출판물을 발굴해 판매하고 싶었다고 신 대표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부부가 좋아하는 책을 팔고 있다. 그래서 그림책이나 만화책이 많다. 어른이 읽으면 좋은 책, 아이가 읽으면 더 좋은 책을 구분해 분류해뒀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책방으로 오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책방 앞에 경사로를 만들었다.  

그림책과 만화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다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연령대별로 맞는 책을 무 자르듯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어른들도 관심 있게 볼 수 있는 책을 따로 비치해뒀다. 주로 인생이나 죽음에 관한 철학이 담긴 책이다. 이곳에서는 <세 엄마 이야기>, <할머니에게는 뭔가 있어!>와 같이 신혜원·이은홍 부부가 각각 쓰거나 함께 작업한 책들도 판매하고 있다. 

   
▲ ‘심심한 책방’에서는 4월부터 ‘마을, 문학을 만나다’라는 작가초청 행사를 열고 있다. © 오동욱

개점 1년 만에 ‘심심한 책방’은 제법 유명해졌다. ‘작가와의 만남’ 등 각종 행사를 열면서 그림책·만화책을 전문으로 하는 책방으로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한국작가회의가 주최하는 ‘마을, 문학을 만나다’라는 프로그램도 지난 4월부터 시작했다. 이 행사는 작가 강연과 질의응답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오는 10월까지 매달 두 차례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열릴 예정이다. 앞으로 김용택(6월), 이안(7월) 등의 작가를 초청할 예정이다. 

서점은 ‘친절한 은홍 씨와 책 동무하기’라는 제목의 회원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책을 보내준다. 1년에 10만 원(그림책은 12만원)을 내면, 이 작가가 엄선한 6권의 책을 3차례에 걸쳐 받을 수 있다. 연령이나 관심 영역별로 ‘어른 책 동무’, ‘청소년 책 동무’, ‘어린이 책 동무’, ‘그림 책 동무’의 회원이 될 수 있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이 작가가 직접 쓰고 신 작가가 디자인한 에세이 ‘책이야기’도 전자우편으로 받을 수 있다. 

책 동무 회원은 현재 70여 명이다. 회원 가운데는 마을 주민보다 다른 지역 사람이 더 많다. 이 가운데 ‘그림책 동무’는 약 30% 정도다. 요즘은 그림책이 성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림책은 함축적이다. 글로 서술하면 한없이 길어질 수 있는 내용을 그림책은 함축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지금까지 회원들에게 그래픽 노블 <엑시트 운즈>,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바봇>,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 <빨강차 달린다> 등을 보냈다. 

   
▲ 신 대표와 이 작가가 매달 ‘책 동무’에게 발송하는 책 에세이를 태블릿 PC로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다. © 오동욱

손님이 채워나가는 공간, ‘심심한 책방’ 

‘심심한 책방’은 아이들이 많이 와서 뛰어 노는 날에는 ‘아이들을 위한 서점’이 됐고,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어른들이 오는 날에는 ‘어른들을 위한 서점’이 됐다고 신 대표는 말했다. 사람들이 와서 직접 공간을 채워가는 서점이 됐다는 것이다. 

   
▲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이 남기고 간 ‘84자 원고지’에 쓴 글이 책방 한 편에 전시돼 있다. © 오동욱

부부는 도시든 산골이든 책방은 어디에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면 단위 마다 하나씩 있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 책방이죠.” 이 작가는 동네 책방과 온라인 서점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동네 책방은 책을 앞에 두고 작가를 만나고 독자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그것이 온라인 서점과 동네 책방의 차이다. 그래서 책방은 동네마다 필요하다는 것이 이 작가의 생각이다.

   
▲ 인터뷰 도중 신혜원(왼쪽)·이은홍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오동욱

‘심심한 책방’은 마을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 작가초청 행사를 열면,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참석한다. 일요일마다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림 그리기와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신 대표가 화요일마다 수업을 나가고 있다는 미인가 대안학교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이 인터뷰 도중 서점을 견학 방문하기도 했다. “이 책방이 책을 매개로 하는 지역 공동체의 문화의 장이 되면 좋겠다”는 신 대표의 바람은 이미 실현 중인 것처럼 보였다.

‘소통’이 주는 책방 운영의 기쁨과 현실적인 어려움

서점의 수입은 두달 째 ‘마이너스’이다. “도시에서 임대료까지 내면서 책방을 운영하는 분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신 대표는 말했다. 그러나 책방을 운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점을 연 뒤부터 손님들과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됐다. 수입은 대단치 않고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그런 즐거움 때문에 ‘심심한 책방’을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돈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책방을 운영한다고 신 대표는 말했다. 그것은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그는 말했다. 

   
   
▲ ‘심심한 책방’ 건물 앞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어, 마을 전체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위). 책방 뒤편에는 ‘하이힐을 신고 농사지을 수 있는 텃밭’도 있다(아래). 책방을 찾은 이들은 텃밭과 닭장이 있는 마당까지 즐길 수 있다. © 오동욱

편집 : 신현우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