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빈센조'와 '모범택시'

근래 콘텐츠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사적 복수’다. 이를 담은 tvN <빈센조>, SBS <모범택시>가 차례대로 인기를 끌었다. 그 전부터 사적 복수에 관한 수요는 있었다. 네이버 웹툰에 2018년부터 연재된 김규삼의 <비질란테>에서는 사적 '자경단'이 무력한 경찰에 앞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 같은 해 한동우의 <세상은 돈과 권력>에서도 사적 존재가 거대 자본이 통제하는 학교를 통쾌하게 부수며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비질란테>와 <세상은 돈과 권력>을 보며 ‘사이다물'이라고 했다. 한때의 바람이라고 생각했던 ‘사이다물’이 3년이 지나고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빈센조>와 <모범택시> 뒤에 가려진 욕망은 무엇일까? 

빈센조 까사노, 악을 처단하는 악

바벨은 구약성경에서 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쌓아 올린 탑이다. 극 중 대기업으로 나오는 바벨도 단 한 명이 쌓은 탑이 아니다. 여기에는 기득권의 욕망이 층층이 쌓여있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왜곡된 프레임으로 시민을 선동하는 언론, 자기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하고 범죄자를 풀어주는 검찰, 약자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경찰, 혐오와 증오를 양산하는 정치권, 온갖 법 논리로 진실을 가리는 대형 로펌까지 그들은 대기업 바벨을 도와 바벨 타워 건설에 편의를 제공하고 대기업 바벨은 그들의 욕망을 돈으로 채워준다. <빈센조>에서 이 구조는 ‘코리아 카르텔’이라고 규정된다. 드라마의 최종 목적은 그 ‘카르텔’을 깨는 것이다. 방법은 ‘더 강한 악’을 동원하는 것이다.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역)는 때론 잔혹하고 때론 통쾌하게 그 카르텔을 깨부순다.

▲ 주인공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역)는 이탈리아 마피아 고문 변호사다. 방화를 일삼고 일 처리에 방해가 되는 사람을 스스럼 없이 죽인다. 그는 숨겨둔 금을 찾으러 한국으로 온다. 금가프라자 지하 밀실에는 1조 원 상당의 금이 숨겨져 있다. 빈센조는 금가프라자에 있는 상인을 내보내고 금을 찾으려 한다. 대기업 바벨도 프라자를 허물고 바벨 타워를 만들려고 한다. 빈센조와 바벨의 충돌 지점이다. © tvN

악이 악을 처단하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다. 처벌은 전적으로 법 테두리 밖에서 이뤄진다. 살해와 협박, 조롱과 거짓이 일상적으로 동원된다. 돼지 피를 주사기에 꽂아 적 보스에게 보내거나 불을 질러 적의 창고를 폭발시킨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괴물이 되어줄 수 없냐”는 극 중 인권변호사 홍유찬(유재명 역)의 말은 ‘혼란과 분쟁을 일으켜 이익을 쫓는 괴물을 통제하는 리바이어던’을 떠올리게 한다. 본래 국가가 이런 역할을 하지만, 극 중에서는 빈센조 까사노가 맡는다. 그는 질서 유지를 위한 공적 처벌 시스템의 공백을 사적 보복으로 메운다. 처벌과 통제, 빈센조가 사회악을 다루는 방식이다. 

김도기, 보복을 원하는 피해자

김도기는 파랑새 재단에서 모범택시를 몰며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한다. 모범택시에서 김도기의 타깃은 범죄자들이다. 저항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약한 사람을 지속해서 괴롭히는 악한 강자다. 돈 많고 권력 있는 부모를 믿고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학생,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하며 쌓은 명망 뒤에 숨어 장애인을 착취하는 사업가, 그리고 불법 성착취영상을 유포하며 번 돈으로 온갖 갑질을 일삼는 IT 기업가가 그 면면이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법망을 피해가거나 약한 처벌을 받는다.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풀 수 없다. 피해자의 원한은 김도기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김도기는 그들을 대신해 범죄자들을 응징한다. 

▲ 가족이 살해당했다. 경찰 수사로 범인은 잡혔지만, 처벌은 약했다. 억울한 마음에 포토라인에 선 범인에게 달려들었다. 경찰은 폭력으로 진압했다. 범인은 경찰 뒤에서 웃고 있다. 드라마 <모범택시> 속 피해자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역)도 그런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장성철(김의성 역)에 의해 '복수대행업체' 무지개 운수에 영입된다. 김도기는 모범택시를 몰며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한다. © SBS

보복은 법보다 강하고 잔혹하다. 운수업체로 포장한 '복수대행업체' 무지개 운수의 기본 원칙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피해자가 있는 현장에 접근해 가해자를 천천히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학교폭력, 착취와 감금에는 똑같은 미러링 방식으로, 갑질에는 주변인을 하나하나 죽이면서 가해자의 모든 것을 빼앗는 방식으로 복수한다. <모범택시>에 나오는 보복 장면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통쾌하다. 범죄자들이 낮은 형을 살고 사회에 다시 나오는 것은 낯익은 모습이다. 모범택시는 채워지지 않은 보복 욕망을 충족시킨다. 복수 대행은 ‘정의 구현’이다. 모범택시는 시민의 법 감정을 충족하지 못하는 공권력에 의한 처벌을 대신한다. 

악이 필요한 시대?

공적 처벌은 난무하는 사적 보복으로 인한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사회에 공적 처벌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개인은 공적 처벌에 의지하지만, 공적 처벌 시스템이 망가지면 개인은 사적 보복을 꿈꾼다. 사적 보복 욕망이 발생하는 기준은 ‘효용’이다. 효용이 있다고 느끼면 법에 의지하지만, 효용이 없다면 다른 작동원리를 찾는다.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형벌 수위에 관한 물음에 응답자 87%가 형벌이 가볍다고 답했다. 법이 사회악을 충분히 처벌하지 못하자 피해자들은 사적 보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드라마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그 욕망을 짚었다. 우리 법이 채우지 못하는 ‘효용 있는 처벌’을 사적 보복으로 채웠다. 사람들은 악을 해치우는 더 큰 악에 환호한다. 화제성 조사 기업인 굿데이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빈센조>는 4월 4주 연속 드라마 화제성 1위를 지켰다. 4월 5주 차 드라마 화제성 부문 점유율이 45%에 이른다. <모범택시>는 10%대 시청률로 시작해 지금은 15%대다. 화제성도 꾸준히 상승해 4월 5주 차에는 2위에 올랐다. 정말 '악을 해치우는 악’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일까? 법과 제도를 통한 공적 처벌은 효용을 상실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왜 공적 처벌을 불신하는가

‘부패한' 혹은 ‘무력한' 검찰과 경찰은 각각 <빈센조>와 <모범택시>에 드러난 공적 처벌을 담당한 집행자의 모습이다. 전자는 범죄를 색출할 의지가 없고, 후자는 범죄를 멈추게 할 능력이 없다. 이런 모습은 극적 재미를 위해 과장된 것일까? 사람들의 인식은 드라마와 별 차이가 없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 한국의 사회지표’는 사람들이 형사사법기관인 검찰(36.3%), 법원(41.1%), 경찰(46.4%)을 절반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왜 이렇게 공적 처벌 시스템은 불신받게 됐을까? 

현실에서 법망은 사람을 가려 성기기도 하고 촘촘하기도 하다. ‘LH 투기 사태’ 가담자에 대한 처벌은 성긴 케이스다. LH 직원들은 내부정보를 활용해 투기했지만, 처벌은 쉽지 않다.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는 내부정보 활용 부정 이득에 관한 처벌 규정이 있지만, 직접적인 업무 연관성이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 

지난해 대구에서는 배달 족발 4만 9000원어치를 훔친 노숙자가 잡혔다. 생계형 범죄였다. 변호사는 불구속을 요청했지만, 주거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재판과정에서 출석을 확보할 목적으로 만든 이 구속 요건은 외국인 노동자나 노숙자 등 집 없는 피의자를 가두는 요건으로 작용한다. 집이 있는 자에게 한없이 성긴 법이 집이 없는 자에게는 가혹하게 촘촘한 게 우리 현실이다. 불공정한 법망은 불신의 시작이다.

▲ 지난 5월 19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故) 이선호 씨 추모기도회를 마친 참석자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이 씨는 평택 하역장에서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무리한 지시’와 ‘안전관리 부실’이었다. 이 씨는 본래 자기 업무가 아니었는데도 지시를 받아 컨테이너 관련 일을 했다. 안전교육 및 안전예방을 위한 조처도 없었다. © 연합뉴스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할 법이 없는 경우에도 불신은 커진다. 구의역 김 군, 비정규직 김용균의 죽음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설치에 관한 여론을 환기했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찬성하는 의견은 58.2%로 나왔다. 원청에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원천적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통과됐지만,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삭제된 채였다. 지난달 22일 이선호(23) 씨는 평택항 하역장에서 300킬로그램(kg)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숨졌다. '또' 비정규직이었고 ‘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된 지 4개월이 채 안 된 기간에 똑같은 죽음이 다시 발생했다. 시간과 공간만 다른 같은 죽음을 보면서 법을 향한 불신은 늘어난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합당한 처벌이 없는 것도 법의 효용을 떨어뜨린다. 지난해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 씨는 억울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죽음에 대한 최소 보상이 될 수 있는 형량일까?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판결의 온도차-사법부와 국민 법 감정 사이'에 따르면, 살인 범죄에 대해 응답자의 92%가 지금보다 처벌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 전반에 걸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응답한 의견이 80%가 넘었다. 아파트 경비원인 최희석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입주민은 억울하다며 항소했다. 검찰은 1심과 같은 9년을 구형했다. 사람들의 법 감정은 우리 형사법이 피해에 맞는 처벌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드라마가 남긴 숙제

<빈센조>와 <모범택시>는 법을 향한 사람들의 불신을 사적 보복이라는 프레임으로 풀어냈다. 무능하고 부패한 법 집행기관을 보여줌으로써 사적 보복을 정당화했다. 사람들은 드라마 속 집행기관과 현실의 집행기관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10명 중 6명은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고, 그중 다섯은 차라리 인공지능 판사에게 판결을 받겠다고 말한다. 법이 공정한 기준으로서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드라마가 파고들어 찬사를 받은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러나 그 프레임이 전부일까? 현실에서 범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갑질과 억압, 불공정 경쟁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임재성 변호사는 지난 2월 한겨레 칼럼(엄벌주의로 쪼그라든 사회, 2021.2.24.)에서 사회문제 해결에는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 피해 복구, 그리고 인식과 제도 변화라는 네 측면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차적으로는 진실을 기초로 책임을 물어 피해를 복구하고, 이차적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구조 변화까지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두 드라마는 이 중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다룬다. 피해 복구는 아주 적은 분량 이뤄지거나 사적 보복에 따라오는 것으로 여기고, 구조 변화는 아예 다루지 않는다. 임 변호사는 ‘엄벌주의’는 사회문제를 납작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책임자 추궁에만 집중해 재발 방지를 위한 총체적인 진실규명과 구조 변화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약자를 위해 작동하는 사적인 힘은 없다. 있다 해도 그 힘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행위가 다시 처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판타지와 현실은 다르다. 사회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려면 인식과 제도라는 구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손정우, 조주빈, 양진호 모두 모습은 다르지만 혐오와 차별이라는 같은 주물에서 찍어낸 결과물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그 주물 자체를 치워버려야 한다. <빈센조>와 <모범택시> 속에서처럼 ‘정의 구현'을 통한 '사이다’를 현실에서도 맛보려면 공적 처벌 시스템을 제대로 확립함은 물론, 제도변화까지 추동해내야 한다. 


편집 : 김병준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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