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20대 중반 암환자가 49일 동안 극한 코스로 알려진 프랑스 뚜르 드 프랑스 코스를 완주하는 이야기.’

로그 라인 한 줄로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하 뚜르)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뚜르>는 유럽 곳곳을 자전거로 다니는 로드무비이자 동료들과 주인공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버디무비, 혼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암환자가 뚜르 드 프랑스를 자전거로 완주하는 이야기다. 관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로 가득하지만, 극복 서사를 중심으로 한 낯익은 스토리이기도 하다. 관객은 이윤혁이라는 20대 암환자의 이름을 알게 되고 묵묵히 그를 따라간다. 그러다 런닝타임 91분이 끝나갈 즈음 관객은 20대 암환자가 아닌, '인간 이윤혁'에 집중하게 된다.

▲ 뚜르 드 프랑스 중 난코스로 꼽히는 20코스를 오르고 있는 윤혁의 모습. 그는 ‘데스모 플라스틱 스몰라운드 셀튜머’라는 희소암 판정을 받았다. 2년 반 동안 항암치료를 받던 그는 병이 재발하자 치료를 중단하고 새로운 꿈을 위해 나섰다. 악명 높은 뚜르 드 프랑스를 자전거로 완주하는 것이다. ⓒ 리틀빅픽쳐스

91분을 보게 만드는 힘 - 이윤혁이라는 사람

다큐멘터리나 극영화 모두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 인물은 작품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요소다. 관객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하는 대상도 결국 인물이다. 짧게는 50분, 길게는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스크린의 낯선 인물과 사건을 집중해 보기 위해선 그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이윤혁에게는 어떤 힘이 있을까.

우선 윤혁이 처한 상황에 관객은 몰입한다. 운동을 좋아하던 스무 살 청년은 입대 후 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된다. 생존율이 극히 낮은 암이었다. 2년 반 동안 수술과 치료를 마쳤지만 병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윤혁은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뚜르 드 프랑스를 자전거로 완주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 뚜르 드 프랑스 완주계획을 세우고, 후원자와 동료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초반 10여 분간 보여준다. 그의 이런 모습에 관객은 빠르게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윤혁을 철저히 뚜르 드 프랑스의 번외 참가자 중 하나로만 취급한다. 이는 그를 극복 서사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영화 초반에 그의 병을 설명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카메라는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비춘다. 중간중간 주치의가 윤혁을 진찰하는 모습이 나오기는 하지만, 카메라는 그 누구보다 밝은 모습으로 유럽 곳곳을 쏘다니는 그를 따라간다. 하루를 마치고 동료들과 식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뚜르 드 프랑스 참가자의 모습이다. 영화는 개인의 아픔에만 주목하지 않고 그의 또 다른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극복 서사에 매몰되지 않고 그의 여정을 함께 할 수 있게 한다. 

영화를 이끄는 또 하나의 힘 ‘갈등’

다큐멘터리는 잔잔한 흐름 때문에 지루하다고 한다. 극영화는 기승전결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 흐름에 맞춰가다 보면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따라가는 구성이어서 극적 재미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스토리를 가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극적 흐름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갈등 구조를 활용해 집중도를 높이기도 한다.

<뚜르>는 윤혁을 제외한 인물의 갈등과 해소 과정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이 대회에는 페이스메이커, 머캐닉(자전거 수리), 주치의, 현지 코디 등을 비롯해 약 10여 명의 스태프가 윤혁과 함께 한다. 이들은 대회가 시작된 날부터 갈등 소지를 보인다. 제작 스태프가 자전거에 달아놓은 카메라 때문에 페이스메이커 중 한 명이 넘어져 뼈가 부러지고, 주치의는 숙소에 불만을 느끼고 항의하기도 한다. 영화는 이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들의 갈등이 제작진의 준비 부족으로 벌어진 해프닝으로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자전거 대회’라는 지루할 수 있는 여정에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 코스 진행과 관련해 현장 스태프들 간에 의견차가 발생한 모습. ⓒ 리틀빅픽쳐스

스태프의 캐릭터를 명확히 제시한 점도 집중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숙소에 불만을 가지고 항의를 하던 주치의는 이후 지도를 보는 능력을 발휘해 코스가 잘 진행되도록 능력을 발휘한다. 전체 코스를 총괄하는 현지 코디도 촉박한 진행 일정으로 일처리가 꼬여 스태프와 갈등을 일으키지만, 이내 문제를 해결하고 윤혁의 또 다른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인물이 각자의 명확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해소하면서 영화에 활력을 더한다.

갈등과 뚜렷한 캐릭터는 다시 윤혁에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태프들이 좌충우돌하고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가운데 카메라는 윤혁의 얼굴을 계속해서 담아낸다. 그 장면에서 윤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20여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창밖을 바라보거나, 밥을 먹거나, 자전거만 타고 있는 윤혁의 모습이 나온다. 극한의 코스임에도 노래하고 동료들을 북돋우며 헤쳐나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갈등은 철저히 영화의 흐름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될 뿐이다. 뚜르 드 프랑스 참가자 이윤혁을 중심으로 영화는 계속해서 나아간다. 

‘스물여섯 이윤혁'을 기억하는 방법

천천히 그를 밀고 앞으로 가던 영화는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영화 전반에 흐르는 힘찬 에너지와는 상반된 분위기로 전환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끝없는 하강의 모습이다. 안개가 낀 뚜르 드 프랑스 코스 곳곳을 윤혁과 그의 동료이자 페이스메이커인 훈이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계속해서 멀어지는 이미지이지만, 그가 가깝게 느껴지는 역설은 영화가 지켜낸 윤혁과의 거리감 때문이 아닐까.

▲ 영화 끝에서 카메라는 안개 속으로 끝없이 하강하는 윤혁의 모습을 담아낸다. ⓒ 리틀빅픽쳐스

이는 영화의 첫 장면과 대비된다. 첫 장면에서 윤혁은 오르막길을 끊임없이 올라간다. 카메라는 뒷모습이 아닌 그의 얼굴을 담아낸다. 윤혁은 지쳐 좌로 우로 비틀댄다. 지친 윤혁의 모습과 함께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항상 꿈을 꿨어요. 뚜르 드 프랑스를 가야겠다는 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윤혁을 밀고 끌며 함께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를 놓아주는 듯한 구성을 취한다. 하지만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윤혁의 모습은 흐릿하기 보다는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그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그를 바라보는 관객은 오히려 지난 여정 속에서 힘들게 길을 헤쳐나가던 윤혁을 생생히 떠올리게 된다. 이는 윤혁을 모든 걸 이겨낸 영웅이 아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내고자 한 의도 때문일 것이다.

신화 서사를 스토리텔링에 적용했던 노드롭 프라이는 신화 속 영웅 이야기를 공감대 높은 수준으로 만드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하위 모방’을 이야기했다. 독자나 관객은 신화 속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난을 겪어내는 사람에게 공감한다. <뚜르>가 그렇다. 이윤혁을 모든 걸 이겨내는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스물여섯의 청년이 주변의 갈등 속에 힘들어하면서도, 몸이 부서지게 힘든 코스를 겨우겨우 통과하여 목적지인 파리 개선문에 도달하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영화는 그대로 담아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안개 속에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윤혁을 모순되게도 선명하게 느꼈던 이유는. 극복하고 이겨내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갈등과 고난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 또한 또 다른 삶의 모습임을 그는 보여주고 있다.


편집 : 심미영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