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물들다’

▲ 김계범 기자

지난 가을,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였다. 사실 그 몇 달 전 어느 여름날, 텁텁한 공기가 답답해 외출하면서 기분 전환도 할 겸 봉숭아 물들이기 키트를 하나 샀다. 막상 집에 돌아와 봉숭아 물을 들이려고 하니 귀찮고 괜히 망설여져서 키트를 책상 한 쪽으로 치워버렸다. 몇 달 뒤 영상 편집 실습 촬영을 핑계 삼아 열 손가락 모두 봉숭아 물을 들였다.

‘물들인다’는 것은 기억하겠다는 말과 같다. 물들어 가는 건 한순간이지만 순간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초가을 붉게 물들인 손톱의 흔적은 해를 넘기고 눈이 하얗게 땅을 뒤덮을 때까지 남아있었고 봉숭아 물을 들인 때의 날씨와 기분까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손톱뿐 아니라 처음 머리를 물들인 날도 쉽게 잊지 못한다. 스무 살 되던 해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시간이 지나자 머리카락은 다시 까만 색으로 돌아왔지만 그때 추억은 아직도 남아있다. 머리와 손톱은 물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한 번 물든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광복 이후, 거리와 광장은 여러 차례 붉게 물들곤 했다.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시민들은 광장과 거리에서 독재정권과 싸우며 붉은 피를 흘리기도 했다.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광장은 여러 차례 물들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광장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응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반값 등록금 요구 집회, 세월호 참사 추모 집회, 국정농단 규탄 촛불집회 등 시민들은 정치가 민의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다.

모스크바에는 ‘붉은 광장’이 있다. 나는 광장의 이름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중세 러시아어에서는 ‘붉다’는 형용사가 ‘아름답다’는 뜻으로도 쓰여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붉은 광장이 없지만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등이 있다. 촛불로 붉게 물든 광장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광장이 붉게 물든다는 것은 아직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의식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촛불을 드는 행위는 시민의 참여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국가 위기 때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촛불로 붉게 빛나는 광장은 서울의 ‘붉은 광장’ 곧 ‘아름다운 광장’이었다.

다시 5월이다. ‘잔인한 달’ 4월을 지나 푸른 5월이 왔지만 광주의 5월은 차라리 시퍼렇게 멍들었다고 할까? 아직도 1980년 봄 광주에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믿거나 5.18이 폭동이었다고 매도하는 자들이 있다. 가짜뉴스에 물든 자들과 달리 당시 광주시민들은 도청과 광장을 붉게 물들이며 싸웠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진실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5.18민주화운동을 몸으로 겪은 세대가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5.18을 대학에 가서야 조금 알게 됐다.

▲ 올해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많은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광주에 모였지만 진상규명은 아직도 미흡하다. © KBS

“광주는 살아있다 군사 파쇼 타도하자.” 1988년 박래전 열사가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박 열사가 다닌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할 때 모란공원 추모행사에 참여하면서 그가 5.18의 진상규명을 외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7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열사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진상규명을 다짐했다. 그러나 민주화를 외치다 유명을 달리하고도 유해를 못 찾거나 활동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무명투사’로 남겨진 이들이 많다.

18일 광주 추모행사에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앞장서서 진상규명을 해야 할 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자리에 조화만이 덩그러니 서있는 풍경은 해마다 반복된다. 광주의 아픔은 너무 커서 진상 규명이 완성되기 전까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그와 더불어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죄가 있을 때 광주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고 원한 대신 연민으로 가슴을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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