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부실한 제천시 학교 공공급식체계

충북 제천은 농촌지역이지만 공공급식체계 부실로 학생들이 신선한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먹지 못하고 있다. 작년 9월까지 학교에 공급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쌀과 잡곡 위주였고 신선한 채소는 없었다. 제천은 지난해 10~12월까지 엽채류 등 친환경 농산물 4개 품목을 6개 학교에 시범으로 공급했다. 올해부터는 10개 학교에 9개 품목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2021년 기준 제천에서 학교급식을 직접 조리하는 학교는 32곳인데 22개 학교 학생들은 여전히 기존 방식대로 재배한 관행 농산물을 먹고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 확대는 문재인 정부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 중 하나다. 이 전략은 안전한 먹거리 보장, 지속가능한 농업,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친환경 학교급식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지역 친환경 농가의 판로를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의 공공급식체계가 필요하다.

첫발 뗀 제천 공공급식

제천은 지난해부터 공공급식체계를 마련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작년 7월 ‘제천시 지역농식품의 공공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공공급식체계를 갖추려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례에 따라 제천은 올해부터 공공급식지원센터를 거쳐 농산물을 현물로 지원한다. 올해 1월부터 ‘제천하늘뜨레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이 공공급식지원센터 구실을 하고 있다. 조공법인은 제천 농산물 통합마케팅과 유통을 전담할 목적으로 작년 1월 설립됐다.

▲ 왼쪽은 올해부터 공급하는 9개 친환경 농산물 품목이다. 오른쪽은 4월 19일에 시범학교 중 하나인 제천 명지초등학교가 사용한 친환경 농산물 품목이다. ⓒ 임효진

올해 3월부터는 처음으로 10개 학교에 9개 품목 친환경 농산물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시범학교는 기존 급식 예산에 더해 친환경 농산물을 지원받는다. 시범학교로는 초등학교 3곳(화산초, 장락초, 중앙초), 중학교 3곳(제천중, 제천동중, 제천여중), 고등학교 4곳(제천산업고, 제천상업고, 제일고)이 있다. 친환경 농산물로는 감자, 양배추, 얼갈이배추, 무, 열무, 시금치, 양파, 대파, 아욱이 들어간다. 그중 양파와 대파는 7월 이후 공급될 예정이다.

취재 결과 친환경 농산물 공급 학교로 선정된 10개 학교 영양교사가 답한 친환경식재료 사용 비율은 30~50% 수준이었다. 영양교사들은 공통으로 친환경 농산물 무상 지원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전에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친환경 농산물을 무상으로 지원받으면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났다. 남정여 제천중 영양교사는 “지원받는 농산물로 식재료비를 줄일 수 있어서 다른 부분에서 급식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양교사들은 대체로 친환경 농산물 품질에 만족했다. 함미애 장락초 영양교사는 “보내주는 농산물은 신선한 편”이라며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교환해준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 품목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정여 교사는 “품목이 몇 가지 안 돼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며 “오이 같은 것은 제천에서 많이 재배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품목이 늘어나면 메뉴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친환경 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제주도는 상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등 다양한 채소류를 공급하고 있다. 채소류 말고 버섯과 과일도 학교급식으로 들어간다.

▲ 제천 명지초등학교 급식조리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 임효진
▲ 5월 7일 명지초등학교 급식으로 나온 햄버거 재료는 양배추, 양파, 토마토 등 친환경 농산물이 사용됐다. ⓒ 임효진

제천 학교급식 친환경 식재료 사용 비율은 다른 시‧도에 견주어 여전히 낮은 편이다. 제천교육지원청은 ‘2021 학교급식 기본방향’에서 친환경 식재료를 32% 넘게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친환경 식재료를 70% 넘게 사용하도록 한다. 서울에서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전체 농산물 대비 친환경 농산물 비율은 2017년에 61.2%였다. 남정여 교사는 “지금은 쌀과 잡곡, 채소류까지 포함해서 35% 이상 나오면 높게 나오는 거”라며 “올 하반기부터 대파와 양파도 공급되면 35%를 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8년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전체 농산물 중에서 친환경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55%였다. 전남(91.5%)과 제주(88.3%)는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지원하고 있어 친환경 농산물 사용 비율이 높다.

갈 길 먼 공공급식체계

현재 제천 공공급식체계는 부실하다. 지난해 제천은 ‘충청북도 공공급식센터 건립사업’에 공모해 괴산군과 경합하다가 졌다. 괴산군은 지역 먹거리 생산-유통-소비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 최종 선정됐다. 제천이 떨어진 이유는 관행적 도매시장 중심 유통구조 때문이다. 일반 업체가 학교급식을 공급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나온 ‘제천형 학교급식 시스템 구축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제천 학교급식은 학교급식지원(유통)센터가 없어 일반 업체의 경쟁입찰 공급체계로 운영된다. 개별 학교 단위 입찰 방식은 식재료의 품질을 낮춘다. 경쟁입찰 방식이 식재료 단가를 올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시가 나서서 학교급식 공급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급식 유통망이 부실해 제천 친환경 농가들은 제천이 아닌 다른 시·도 학교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급식을 공급하는 친환경 농가가 피해봤다는 보도가 이어졌는데도 제천 친환경 농가가 코로나19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손해를 본 친환경 농가는 저장성이 낮은 채소를 급식으로 공급하는 농가였다. 제천에서는 친환경 쌀과 잡곡만 급식재료로 공급됐다.

제천에는 학교급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이 충분하다. ‘제천시 친환경 농산업 기본 자원 조사’에 따르면 제천시 친환경 농산물 인증 작물 생산량은 2019년 기준 벼가 460.3톤으로 가장 많고, 채소 364.9톤, 서류(감자, 고구마) 278.8톤 순이었다. 학교급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에서 제천 친환경단체들은 공통으로 공공급식센터 등 거점 공간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유통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제천친환경농업연합회 대표는 “친환경 쌀 공급은 십 몇 년 전부터 했지만 채소류는 그러지 못했다”며 “13년여 전부터 충주시와 청주시 학교급식을 공급했는데 제천에는 공급을 못했으니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제천 학교급식으로 들어가는 얼갈이 배추. ⓒ 학고을유기농원

학교급식에서 친환경 식재료가 사용되는 비율은 공공급식체계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2017년 기준 전국 지자체 245개 중 89개(36.6%) 지자체는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광역지자체 중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6곳이다.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 비율은 경북이 96%로 가장 높다. 경북 대부분 기초지자체는 학교급식센터를 운영한다. 경북 친환경농산물 사용 비율은 68%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보고서가 작성된 2017년까지만 해도 충북은 광역지자체 차원의 친환경 급식 예산 없이 기초지자체 자율에 맡겼다.

시설 갖추고 품목 늘려야

현행 공공급식 시스템에서 조공법인은 친환경 농가와 학교 사이에서 거점 구실을 한다. 학교 주문을 친환경 농가에 전달하고 운송 차량을 보낸다. 지금까지 운송이 늦은 적도 없고, 식재료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교환해줄 정도로 잘 운영됐다. 문제는 조공법인의 구실이 ‘운송’에 그친다는 점이다. 친환경 농가와 학교를 연결하는 유통만 담당한다. 친환경 농산물 검수도 하지만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 윤도철 조공법인 팀장은 “일단 외관 위주로 본다”며 “친환경 농산물은 외관상 관행 농산물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학교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조공법인이 거점 구실을 하는 제천 공공급식체계. ⓒ 제천시하늘뜨레조합공동사업법인 계획서

현재 조공법인은 농산물산지유통시설(APC: Agricultural Products Processing Center)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APC는 선별, 포장, 저장, 출하 등을 통해 농산물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일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재포장 취급자 인증을 받은 공공급식센터가 제천에는 없어 친환경 농가가 직접 소분해 운송 차량에 실어 보내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포장하거나 세척∙절단 등 단순 처리하여 포장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산물 재포장 취급자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천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학고을친환경영농조합법인이 농산물 포장과 소분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김동환 학고을 대표는 “공공급식지원센터에 APC 시설이 생기면 우리는 생산만 해서 가져다주면 끝”이라며 “지금은 생산 농가에서 소분하고 차량에 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가 보통 아픈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지역에 생산되는 농산물을 애들한테 안 먹일 수 없기 때문에 한다”고 토로했다.

APC가 없어 시범 학교도 불편을 겪는다. 전처리 식품은 세척과 손질이 모두 되어 있는 반면 친환경 농산물은 급식소에서 직접 세척하고 손질해야 한다. 박은순 명지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조리사들 일이 더 많아졌다”며 “아이들을 위해 배려해 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명지초등학교는 공급되는 친환경 식재료 중에 감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사는 “감자 탈피기가 없어 감자를 다듬을 엄두가 안 나서 감자는 어쩔 수 없이 전처리 식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남정여 제천중 영양교사는 “전문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제품 포장 상태가 미흡할 때가 있다”며 “세척해 달라고 요청은 하지만 협의를 통해 개선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충북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인 ‘2020년 지역 푸드플랜 구축 지원사업’에 선정되고나서 공공급식체계 구축에 착수했다. 지난해 괴산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현재 2곳(진천군, 음성군)에서 1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제천시청 농촌상생과 로컬푸드팀 김동국 주무관은 “제천에서 급식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지역 농산물이라기보다는 공판장에서 사다가 공급하는 것들이 많다”면서 “시 예산만으로 공공급식센터를 짓기 힘들어 연말에 충북 공모사업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편집 :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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