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정진명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하면서, 경색된 북미관계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커졌지만 이렇다 할 반전은 아직 없다. 2018년 4월 문재인·김정은 판문점 회동 이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껏 고조됐던 한반도 평화의 기대감은 이제 여운조차 찾기 어렵다. 지난 2000년 김대중,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뤘던 금강산관광·개성공단 등의 남북 경제협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잇달아 무너진 뒤 지난해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동안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저서 <70년의 대화>에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가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상대성을 말한 것이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하고 미사일을 쏘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돌출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한미 양국의 대응에 따른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 북한은 공개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지만, 미국은 상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았다.

▲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걸어가고 있다. ⓒ KBS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내 선거 일정에 휩쓸리며 냉·온탕을 오가는 대북정책으로 신뢰를 저버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국내 보수세력의 공세와 미국의 비협조에 흔들리며 남북 화해정책의 일관성과 뒷심을 보여주지 못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최근에 낸 책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에서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단계적 군비축소를 합의해놓고, 실제로는 사상 최대 규모 군비증강과 한미연합군사훈련으로 북한의 불신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이 핵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제 안전’이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적’이었던 미국의 위협에서 자국의 안보를 지키려면, 또 경제력과 재래식 군사력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는 남한과 맞서려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정도의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를 포함한 역대 미국 정부는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한다’는 ‘선 핵폐기론’을 고수했고, 잠깐 전향적 자세를 보였던 트럼프도 이런 노선으로 회귀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리 대화를 통해 핵폐기를 유도하는 ‘비핵화 출구론’을 내세웠지만, 미국이라는 큰 산에 가로막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핵무기가 유일한 자산인 북한에게 ‘다 내놓아야 떡을 준다’고 몰아세우는 전략은 애초에 통하기 어려웠다.

미국 정부가 교체되고 아직 새로운 대북전략이 확정되지 않은 지금이 문재인 정부에겐 마지막 기회다. 한때 ‘핵을 버리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섰다가 낙담하고 토라진 북한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대북전단 금지조처를 확실히 이행하고 자극적인 한미연합훈련과 군비 강화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한 정부답게 북미관계 회복을 위한 중재자로서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의 무원칙한 대화 전략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도 다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했다. 따라서 그는 실무진 의견에 따라 신중하게 움직이되, 오바마보다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북한이 국제자본을 받아 경제개발에 매진하게 만드는 것이 ‘완전한 비핵화’는 물론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제대로만 한다면, 문 대통령은 약 1년 후 ‘한반도 평화시대를 연 지도자’로서 큰 박수를 받으며 이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완전히 늦진 않았다.


편집 :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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