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나만의 이야기가 쌓이는 책방 운영하는 이경신 대표

충북 제천시의 유일한 인문학 독립서점 ‘안녕, 책’이 작년 5월 31일 문을 연 후 개점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제천시 덕산면에 그림책·만화책 전문 독립서점이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종합해 다루는 독립서점은 제천에서 ‘안녕, 책’이 유일하다.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작은 마을에서 ‘안녕, 책’을 운영하는 이경신(41) 대표를 만나 지역 독립서점의 가치를 물었다. 3월 17일부터 4월 9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 ‘안녕, 책’ 서점의 외관. 하얀 외벽의 단층 건물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 이예진

‘안녕, 책’은 어떤 곳인가요?
누구나 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즐길 수 있는 서점입니다. 한국에서는 책을 정독하고 완독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잖아요. 저는 책이 흥밋거리, 재밋거리였으면 해요. 책이 무겁고 힘든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안녕, 책’이라고 서점 이름을 지은 것도 책을 가깝고 친숙한 것으로 느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에요. ‘안녕, 책’에 온 손님이 책 제목을 보고 피식 웃기만 해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꼭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책을 통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제천에 책을 즐길 공간이 적은 편인가요?
제천시립도서관이나 제천기적의도서관 등 좋은 공간들이 있어요. 다만 도서관은 조용히 이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운 것 같아요. 가끔 어린이와 함께 온 손님이 아이를 조용히 시키곤 하는데 ‘안녕, 책’에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소리 내서 호기심과 신기함을 표출하는 공간이길 바라요. 또 참고서나 기성출판물을 파는 동네서점들도 있어요. 다만 기존 서점들은 시내에 몰려 있고 많이 팔릴 만한 서적 위주로 구성돼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볼 수 없는 책들을 가져다 놓으려고 노력해요. 독립출판물과 기성출판물이 섞여 있고요. 문학, 역사, 과학, 어린이, 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갖다 놓았어요. 일상을 떠나 여행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어요. ‘안녕, 책’은 시내의 공간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책을 경험하실 수 있는 곳이에요. 더 즐거운 방향으로요.

구체적으로 어떤 즐거움인가요?
독립서점은 책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책을 볼 때는 필요한 책을 검색해서 사는 것으로 끝나잖아요. 빠르고 간편하지만 책에 관해 나만의 이야기를 쌓기는 힘들어요. 서점에서 책을 보면 그날의 날씨, 기분, 상황의 영향을 받아요. 똑같은 책도 다르게 느낄 수 있어요. 우연히 들른 책방에서 취향에 맞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 새로운 분야에 관한 호기심, 상황에 맞는 책을 통한 위로 등을 경험하는 거죠. 특히 독립서점은 어떤 책이 있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연에 의한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전화로 특정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98%는 없어요. (웃음) 문의하시는 책이 대부분 유명한 책이에요. 그런데 베스트셀러는 다른 서점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안녕, 책’에서는 필요한 책을 100m 달리기처럼 빠르게 사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산책하는 기분으로 세상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천천히 둘러보는 여유를 누리시길 바라요. 

▲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경신 대표. 이 대표는 독립서점의 의미를 기승전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다. ⓒ 이예진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육아할 때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결정적인 것 같아요. 육아하기 전에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첫째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어요. 책은 다른 세계와 이어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경로였죠. 본격적으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 읽은 책이 삶의 태도나 방향을 바꾸는 데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이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상상에 그쳤거든요. 책을 읽으면서는 원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계획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어요. 육아할 때 책을 통해 위로받고 즐거웠던 경험이 쌓여서 서점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겨서 서점을 운영하게 됐죠.

육아할 때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무엇인가요?
원가희 작가의 <마당의 기억>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마당이 있는 한옥에 살면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모은 책이에요. 육아할 때 대형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인데 서점을 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이에요. 당시에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은 꿈이 있어서 제목만 보고 샀는데 책 내용도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도 저처럼 육아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저와 달리 일상에서 소소한 변화를 만들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실행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행동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안녕, 책’ 첫 북토크로 원가희 작가와 남편인 정성갑 작가를 함께 모셔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해요.

▲ 2014년에 출간한 원가희 작가의 <마당의 기억>. 책이 절판돼 서점에서 판매할 수 없어 아쉽다며 이 대표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을 꺼내 보였다. ⓒ 이예진

‘안녕, 책’에서 북토크 외의 다른 활동도 하고 있는지요?
코로나19가 심하지 않을 때는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등도 했어요. 공간 대여도 했었죠. 지금은 코로나19가 심해져서 잠시 쉬고 있어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책을 매개로 한 문화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어요. 특히 제천에 청소년이 갈 만한 곳이 많이 없거든요. 학원 이외에 갈 수 있는 곳이 시내에도 많이 없어요. 청소년이 부담 없이 이 공간에 와서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어요. 스마트폰이 아닌 책으로도 단순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소개하고 싶어요.

독립서점은 동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습니다.
단골손님 중에 80대 노인분이 계세요. 책을 굉장히 좋아하세요. 그런데 매번 책을 사는 건 부담되잖아요. 그래서 시립도서관이랑 연계한 대출 서비스를 등록해드렸어요. 동네서점에서 신간 도서를 빌려서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시립도서관에 일 보러 갈 때 원하시는 책을 빌려다 드리기도 해요. 여기는 시립도서관까지 거리가 있는 동네라서 ‘안녕, 책’이 가교가 될 수 있죠. 최근에는 시립도서관의 ‘희망도서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방문하는 동네 손님이 늘고 있어요. 동네 분들이 책을 매개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어서 좋아요.

‘희망도서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가 서점 운영에도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해당 서비스를 ‘안녕, 책’에서 많이 이용하실수록 서점 운영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시립도서관이 신간도서를 ‘안녕, 책’에서 구매해서 신청자에게 대출하는 구조거든요. 가끔 책을 빌리기만 한다고 미안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안녕, 책’ 입장에서는 도서를 판매한 것과 같아요. 시민은 집과 가까운 곳에서 책을 빌려 가고, 동네서점은 수익을 올리고, 도서관은 이용률을 높이는 상생 구조입니다.

▲ 평일 점심시간, 두 손님이 ‘안녕, 책’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다. ⓒ 이예진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이 자리에서 30년 동안 운영하는 게 목표예요. 오랜 시간 역사가 쌓여서 이야기가 많은 서점이 되면 좋겠어요. 손님이 서점에 오래 머물면서 구석구석 봐주시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요즘에는 시간이 돈이잖아요. 내 시간을 아껴줄 서비스를 돈으로 사는 시대인데 24시간 중에 30분, 1시간, 2시간을 ‘안녕, 책’에서 보낸다는 건 손님의 재산을 나눠 받은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웃음) 시간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책 선정할 때도 더 신중하고, 책 진열 방식도 주기적으로 바꿔요. 혹시나 손님이 원하는 책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잖아요. 그때 빈손으로 나가는 걸 멋쩍어 하실까 봐 500원짜리부터 다양한 금액대의 문구류도 갖다 놓았어요. 허리 아래에 있는 책장도 편히 구경하실 수 있게 앉은뱅이 의자도 만들었고요. ‘안녕, 책’에 머무는 동안 좋은 추억을 갖고 가실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공간을 꾸미고 싶어요. 서점의 역사는 손님과 함께 할 때 쌓이니까요. 지금은 동네 분들보다 제천에 여행 오신 분들이 더 많이 찾아주시는데 앞으로는 동네 분들에게도 사랑받는 서점이 되고 싶어요. 집 가까운 곳에 언제든 가볍게,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서점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셔서 책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게 앞으로도 따뜻하고 다정하게 운영하겠습니다.

이 기사에 담지 못한 ‘안녕, 책’ 내부 곳곳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경신 대표에게 책은 어떤 의미인지 등 기사에 없는 인터뷰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


편집: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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