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농부의 농사일기] ② 씨 뿌리기

억눌렸던 일상에 봄볕이 내리쬔다. 신종 코로나19는 세계를 얼어붙게 했지만 오는 봄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꽃망울이 터지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 곳곳에도 연초록 새싹이 터져 나온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을 맞는 이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활기와 희망과 행복감.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잊고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 내린다. 봄은 늘 이렇게 희망과 함께 온다.

▲ 지난 10일 기자가 농장 한 쪽에 앉아 모종 판에 옥수수 씨를 심고 있다. ⓒ 박성준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씨를 뿌린다. 주말인 지난 10일 다시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솔휘농장을 찾아가 옥수수 씨를 심었다. 모종판에 흙을 담은 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틈을 만든다. 틈 사이에 씨앗 한 알을 넣고 다시 흙을 덮는다. 모종 한 판이 완성되면 물을 흠뻑 준다.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싹이 나온다고 한다. 농사를 막상 해보니 힘든 점이 많지만, 자연을 곁에 두고 일하는 것은 더 큰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농사는 자기성찰의 수단이다. 자연에서 호흡하며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강력한 비법이다. 흙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유 없는 생명이 없음을 알게 된다. 우리를 찌르는 가시나무도, 징그럽게 생긴 벌레나 지렁이도 다 이유가 있어 그곳에서 살아간다. 과한 꿈 없이 자신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들풀로부터 소박함을 배운다. 숲을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제 자리 아닌 곳을 탐하지 않는 나무를 볼 때마다 한결 차분하게 삶을 대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다음으로는 명이나물을 작은 화분에 옮겨 심었다. 대량으로 사온 식물에 각자 집을 만들어 주는 작업이다. 산마늘이라고도 불리는 명이나물은, 울릉도에 살던 사람들이 보릿고개에 이 나물을 먹고 목숨을 이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인간의 명을 이어준 명이나물은 자신도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있다. 뿌리를 반으로 잘라내도 화분에 심고 물을 주면 새롭게 뿌리를 내린다.

▲ 울릉도에 살던 사람들의 명을 이어줬다는 명이나물. 명이나물은 주로 장아찌로 많이 먹고, 쌈, 샐러드, 튀김 등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도 쓰인다. ⓒ 박성준

명이나물뿐 아니라 자연 속 모든 생명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모든 생명은 복원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역시 회복 가능한 범위 안에 있을 때 건강할 수 있다.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 터전을 복원력의 한계 지점 안에 머물게 해야 하는 이유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보금자리를 짓는 소재로 자연 그대로의 것을 사용한다. 복원력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람만 유독 그 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빽빽이 붙어 있는 콘크리트 건물, 아스팔트로 뒤덮인 길도 모자라 운동장까지 플라스틱 잔디로 도배한다. 이런 곳에서 생명이 제대로 살아갈 리 없다.

지난 7일 서울과 부산에서 새로운 시장이 뽑혔다. 건물을 더 높게 짓고 더 많이 짓는다고 한다. 흙은 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가 덮일 것이다. 건물이 높아지면 인간에게 아낌없이 내리쬐는 햇볕 또한 더 차단될 것이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서울처럼, 부산처럼 만들겠다고 한다.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데…


편집 :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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