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태 칼럼] 핵심은 ‘취재원의 의도’가 아니라 ‘사실 여부’

▲ 심석태 교수

최근 예비 언론인이나 수습기자,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언론 윤리 강의를 할 때 ‘취재원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특히 취재원이 언론 보도를 이용하려는 어떤 ‘의도’를 갖고 접근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많았다. 

언론인을 준비하거나 막 언론인이 된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 ‘보도 자체’가 아니라 제보자를 포함한 취재원이나 보도의 ‘의도’를 따지는 질문이 많아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취재원이 기자의 취재에 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생각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단순히 기자와의 친분 때문에, 혹은 자신이 가진 정보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알리거나, 경쟁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경우도 있다. 사실 그대로를 밝힐 수도 있지만, 허위 사실을 꾸며 퍼뜨리기도 한다. 제보자도 마찬가지다. 언론에 제보하는 것은 물론 수사기관이나 국회,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을 찾는 사람들도 그렇다. 여기서는 일단 언론의 취재원 얘기로 국한해보자.

언론 윤리 규범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대부분 ‘취재원 보호’ 원칙은 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한 법을 제정한 나라도 있다. 미국의 상당수 주에는 ‘방패법’이라는 독특한 명칭의 취재원 보호법이 있다. 독일은 취재원을 밝히기 위한 압수수색을 금지하고 있다. 법률이 따로 없는 나라에서도 ‘취재원 보호’는 언론 윤리 규범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 규범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언론 악법’으로 이름 높았던 5공화국의 언론기본법에 취재원 보호 원칙이 들어 있다가 법 폐지와 함께 사라졌다. 민사소송법에 증언 거부에 관한 규정이 있을 뿐 명시적인 취재원 보호의 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취재 자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나와도 집행을 물리적으로 막는다. 공무집행방해에 따른 처벌을 감수한다. 영장 집행을 막았다가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기자들이 법을 지켜야지 영장 집행을 막으면 되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수사기관을 포함해서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있다. 집행을 막은 사람들의 대표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가 만나 본 일부 판사들도 기자들이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쨌든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취재원 보호 원칙이다.

그런데 왜 예비언론인과 신입 기자들은 이런 원칙적인 측면이 아니라, ‘취재원의 의도’에 대해 고민이 많을까? 정말 기자는 취재원이 어떤 의도로 취재에 응한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 취재원에게 제보를 받으면 먼저 사안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취재 내용과 제보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취재원이나 제보자가 준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 Unsplash

나는 취재 과정에서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사안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취재 내용과 제보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취재원이 준 정보나 제보가 사실이라도 사안의 전체적 맥락 속에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사건의 본질을 헷갈리게 할 수 있는 사소한 내용을 언론을 통해 퍼뜨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취재원이나 제보자의 의도가 아니라 제보 내용 자체의 비중이나 의미이다. 취재원이 무엇을 의도했든, 기자가 잘 판단하면 된다. 취재원의 의도는 사안의 종합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일 뿐이다.

두 번째는 더 본질적인 것으로, 취재원이나 제보자가 준 정보의 사실 여부다. 공식 발표든 몰래 건네준 제보든, 그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자의 책임이다. 기자가 취재했거나 제보받은 내용을 잘못 다뤄 문제가 됐던 사안을 몇 가지 되짚어보자. 젊은 기자들의 성명을 초래했던 한겨레의 이용구 법무차관 관련 오보는 아직 현행 법률에 맞게 개정되지 않아 효력이 없는 일선 지방검찰청의 지침을 의미가 있는 것처럼 잘못 보도한 것이다. 제보자는 이 차관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검찰 고위 인사였다고 한다. 그 제보자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보를 한 의도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보도를 한겨레가 사과한 것은 제보자의 의도 때문이 아니라 보도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 녹취록 오보 사건도 마찬가지다. KBS의 누군가에게 사실과 다른 녹취록 내용을 알려준 사람은 역시 검찰 고위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 검찰 고위 인사가 하루 만에 거짓으로 탄로 날 내용을 기자에게 건넨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KBS 보도가 잘못이었던 이유는 그 검찰 내 제보자의 의도 때문이 아니라 취재 내용이 사실인지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것이었다. 반론 취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두 사례는 제보자의 의도가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선의로 보이는 제보도 얼마든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SBS가 2017년 대선 직전 내보냈던 ‘세월호 고의 인양 지연설’ 오보가 그랬다. 이후 외부 인사들이 중심이 된 조사에서 제보자, 기자, 보도 책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어떤 나쁜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한 제보자의 말을 확인 없이 너무 쉽게 믿었고, 그 파장은 엄청났다. 조선일보의 조국 전 장관 딸의 세브란스 병원 인턴 지원설 관련 오보도 우연히 접한 ‘전언의 전언’을 직접 취재 없이 보도한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언급된 모든 사례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건, 제보자를 비롯한 취재원의 의도는 핵심 변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① 사안 전체의 맥락에서 볼때 취재했거나 제보받은 내용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②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취재원의 의도가 논란이 될 때의 ‘2단계 검증 목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 제보의 진위를 검증하는 건 언론의 일이다. ⓒ Unsplash

우리 사회에서는 제보자의 의도가 종종 쟁점이 된다. 추미애 전 장관 아들의 휴가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당직사병을 상대로는 ‘배후가 있을 것’이라거나, 아예 한발 더 나아가 ‘단독범일 리가 없다’는 식의 거친 공격이 가해졌다. 지금까지 그를 지켜준 것은 그가 선한 의도를 입증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허위 사실을 주장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당직사병은 이후 자신을 공격했던 사람들 가운데 사과하지 않은 이들을 향해 법적 대응 중이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서도 공익제보자 보호조치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특정인이 제보자로 지목되고 의도 논란 속에 고발 위협을 받았다. ‘미투 사건’들의 제보자들도 일단 의도를 의심받는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확인되어도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음모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공익 제보를 했다가 고초를 겪었던 이들이 최근 제보자를 향해 제기되는 공격적 분위기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제기할 정도다.

어떤 언론 보도를 두고 ‘취재원이나 제보자의 의도’를 문제 삼는 것은 해당 사안을 언론 윤리적 쟁점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이 사안 자체가 아니라 보도 경위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 보도를 둘러싼 ‘받아쓰기 보도’ 논란 가운데도 이런 사례가 있다. ‘받아쓰기 보도’라는 주장 하나로 보도 내용이 아닌 취재 경위로 문제를 전환해버린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비슷하게 사용된다.

예전에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든 ‘받아쓰기 보도’든, 보도한 내용 자체가 실체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된 경우가 많았다. 엉터리 주장을 받아 쓴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점점 보도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취재원이 어떤 ‘의도’를 갖고 제공한 정보를 보도함으로써 그 취재원의 의도에 이용당한 보도라는 비난의 의미를 담는 것으로 변했다. 아예 기자나 해당 언론이 적극적으로 취재원의 의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잘못된 주장을 받아써서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보도를 한 의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맹목적인 받아쓰기도 문제지만 이렇게 수사 보도 자체를 통째로 ‘의도’의 문제로 바꿔버리는 것 또한 위험하다.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그 의혹 자체를 따지고 해명하기보다는 취재원이나 언론의 의도에 문제가 있다는 쪽으로 공세적 대응을 하는 것이 잘 통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공격하는 기술이다. 이런 역공을 받으면 보도를 했던 기자들은 자기 검열에 들어가고, 제보를 했거나 취재에 응했던 사람들은 크게 위축된다. 시청자와 독자도 무엇이 진실인지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효과 만점이다.

▲ 취재원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취재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기자 자신의 책임이다. ⓒ Unsplash

현실 속에는 실제로 잘못된 언론 보도가 적지 않다. 사실 여부보다 의도를 묻는 사회 분위기에 대놓고 편승하는 보도도 많다. 자신에게 충성도 높은 사람들이 좋아할 방향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충성도 높은 사람만 보고 가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읽히는 뉴스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모든 면이 사설이나 칼럼으로 보이는 신문도 있다. 충성 독자나 시청자만 보고 가겠다는 의도는 맥락을 벗어나 사소한 내용을 침소봉대하거나 혹은 단순 사실까지 해석의 영역으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문제적 보도들은 모든 보도의 ‘의도’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할 재료가 된다. 잘못과 잘못이 서로를 키워주는 셈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 언론이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앞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제보를 포함해 취재된 내용이 사안 전체에서 갖는 맥락을 냉철하게 파악해서 보도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저한 사실 확인은 어떤 경우에도 유예되지 않는다는 점, 이 두 가지를 명심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 것 같다.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취재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취재원과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신입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몇몇 언론사의 취재 보도 규범에 나와 있다. ▲“취재원은 자신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위해 진실 추구를 방해하거나 왜곡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특정 취재원의 일방적 주장이나 이익을 그대로 반영하는 기사를 쓰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취재원과 유착하지 않는다.”(한겨레) ▲“취재원은 뉴스의 목적과 무관하거나 상반되는 자신의 이해관계 및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취재원의 신뢰도를 확인하고 취재원의 의도와 정확성을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검증한다.”(조선일보) KBS도 「방송제작가이드라인」에서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취재원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유착 관계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들 취재 규범은 앞에서 살펴본 취재나 제보 내용에 관한 2단계 검증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누가 보도 내용을 두고 제보자나 취재원의 의도, 나아가 보도한 사람의 의도를 문제 삼는다면 자신이 위의 2단계 검증을 거쳤는지를 따져보고 문제가 없다면 공연히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취재원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든, 취재 내용을 공익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기자 자신의 책임이라는 점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취재원 보호 원칙도 고의로 허위 사실을 제보하는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는 취재원의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기자를 속일 의도’일 것이다.


이 글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언론중재」 2021년 봄호의 ‘Journalism & Ethics’ 코너에 실린 것이다. 발행처의 양해를 얻어 <단비뉴스> 독자를 위해 게재한다.

편집 : 정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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