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하늘빛'

▲ 방재혁 기자

고등학생일 때 다니던 학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은근한 텃세, 시기와 질투, 그 밖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밥도 혼자 먹어야 했다. 폭력과 폭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투명인간이었다. 초반에는 몇몇이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익숙해지자 아무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따돌림은 석 달이 지나 수능을 마치고 학원을 그만둘 때까지 이어졌다. 꺾이지 않으려고 독해졌다. 학원에서는 구석에서 고독한 싸움을, 집에서는 밝고 긍정적인 아들 연기를 했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점점 망가졌다. 긍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성적을 유지하지 못했다. 첫 수험생활이 끝나고, 그제야 부모님께 털어놓고 눈물을 흘리며 재수를 다짐했다.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들 핑계를 대기에는 성적이 많이 부족했다. 왜 따돌렸는지 궁금한 것도 아니다. 그들 이름은 기억에서 지웠고, 기억 속 얼굴은 희미하다. 당시 하늘만 머릿속에 남았다. 외출하면 하늘을 보는 습관이 있다. 맑은 하늘, 구름 낀 하늘, 노을 진 하늘, 어두운 밤하늘까지 모든 하늘을 좋아한다. 

학원을 다닐 때는 밝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학원 안에서는 구석진 자리에서 할 일을 하느라 따돌림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학원을 마치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무리와 떨어져 침묵한 채 걷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일부러 학원에 남거나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른 사람들이 가길 기다린 뒤 밖에 나서면 하늘은 밤이 되어 캄캄했다. 석 달 동안 밝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해가 떠있는 낮에도 마음은 어두웠다.

▲ 따돌림에 시달렸던 석 달 동안 하늘은 늘 어두웠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27만.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어두운 하늘 아래 학교에 다닌다. ⓒ Pixabay

학교 폭력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너무 많은 피해자들과 그보다 더 많은 가해자와 방관자들이 있다. 인기 스타가 받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타인에게 심은 어둠이 있었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가해자는 더 많을 것이다. 교육부 학교폭력 전수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27만이나 됐다. 그만큼 많은 학생들이 어두운 하늘 아래 학교에 다닌다. 

‘하늘이 저렇게 파란데 왜 어둡다는 거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피해 학생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스타가 된 것이 배 아파 거짓폭로를 한 것이다’ 같은 이야기들. 폭력이 있었는지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하지만, 그렇게 무심코 던진 말들은 누군가의 하늘을 더 어둡게 만든다.

과학자들은 하늘이 파란 것이 태양빛의 산란 때문이라고 한다. 밤하늘이 어두운 것은 우주가 팽창해 지구에 닿는 별빛이 유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해는 유난히 밤하늘이 어두웠고 내게 닿는 별빛이 없었다. 내 우주는 그만큼 팽창했을까? 늘 밝으려 노력했고 밝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단 석 달 간 경험이 드리운 어둠은 아직도 그림자로 남았다.

▲ 학교폭력, 따돌림은 특별한 이유가 없거나 장난인 경우가 많지만 당하는 학생의 하늘은 늘 어둡다. ⓒ KBS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나종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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