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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과 회색은 공존할 수 없나

기사승인 2021.04.07  22: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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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기자 ksy14583@naver.com

- [상상사전] '백신 이기주의'

   
▲ 김신영 기자

옷을 사기 전에 하는 일이 있다. 올해의 색을 찾아보며 트렌드에 맞는 색깔의 옷을 고른다. 색채연구소 팬톤은 ‘일루미네이팅’과 ‘얼티미트 그레이’를 올해의 색으로 꼽았다. 이름이 어렵지만, 노랑과 회색이라는 뜻이다. 팬톤은 노랑을 ‘희망’, 회색을 ‘회복’으로 설명했다. 1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19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터널 끝의 빛’이라며 메시지에 힘을 보탰다.

나는 팬톤의 메시지가 ‘환상’이라 생각한다. 팬톤은 두 색상이 짝을 이루면 서로 보완된다며 ‘연대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노란색과 회색이 ‘공존’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두 색상은 ‘동등하게’ 공존할 수 없다. 그들 간에는 ‘우열’이 있다. 같은 양의 노랑, 회색 물감을 섞으면, 탁한 머스타드 색이 나온다. 서로 결합했을 때, 주된 색은 노랑이다. 노랑의 힘이 더 세다.

노랑은 오랫동안 차별과 혐오를 상징했다. 스페인에서 노랑은 사형 집행인이 입던 옷의 색이었다. 18세기 미국 신문은 멕시코 군인을 비아냥거릴 때 겁쟁이를 뜻하는 ‘yellow belly’라는 비속어를 사용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노랑을 모욕적인 표현으로 여겼다. 나치는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낼 때 가슴팍에 노란 다윗의 별을 달게 했다. 프랑스에서도 루이 19세는 유대인에게 끝이 뾰족한 노란 모자를 쓰게 했다. 비하와 차별의 상징으로 쓰인 색이 모두 노랑인 것은 우연일까?

   
▲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신흥국들은 대부분 내년 중반 이후에나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 한국은행은 신흥국보다 선진국의 회복 시기가 빠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 연합뉴스

팬톤의 메시지에 반발심이 든 건 ‘백신 이기주의’를 봤을 때다. 선진국은 필요 이상으로 백신을 많이 선점하고 있다. 영국은 인구의 340%, EU는 230%, 미국은 200%에 이르는 백신을 확보했고, 우리나라는 160%를 가져왔다. 초과 확보된 물량만큼 다른 나라 공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미국‧EU 등 선진국은 백신 관련 지식재산권 보호를 유예해 복제를 허용해달라는 개발도상국들 주장에 반대한다. 지재권 보호를 유예해도 복제 의약품을 개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개도국이 백신을 마련할 ‘제3안’은 제안하지 않으면서 반대표만 던지는 선진국들 모습이 노랑과 꽤 닮았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회색을 넘어 잿빛에 가깝다. 회색은 수동적이고 자발성이 없는 상태다. 이제 개도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하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서도 폭넓게 예방접종을 하기는 어렵다. 기본적 의료 인프라와 교통망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회색을 짓누른 채 노랑이 백신을 독점하며 두 색 간 균형은 무너졌다.

연대는 양보 없이 불가능하다. 백신은 한정되어있고, 인구는 많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인이 코로나19 백신에 목을 맨 이유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려면 전 세계에 집단면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국에 백신을 맞은 비중이 높아도, 타국에서 집단면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내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영국발,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올 수도 있다. 각국에서 이미 필요 이상 많은 백신을 확보했다면, 다시 나누는 것이 맞다.

노랑이 회색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힘의 크기가 백신 확보로 이어질 때 연대는 멀어진다. 노랑의 결단이 필요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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