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 이직자 분석’

취업한 청년 10명 중 4.6명이 직장을 옮긴 적이 있고, 이 가운데 절반은 두 차례 이상 이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청년핵심 정책 대상별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Ⅲ: 청년 이직자 - 총괄 보고서>를 내놓았다. 청년 이직의 이면을 담은 이 보고서가 발표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소개한 보도가 없다. <단비뉴스>가 이를 정리했다.

보고서를 보면,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 중 46.0%는 이직 경험이 있었다. 이 가운데 이직을 1회 한 사람은 45.5%, 2회 이상 이직한 사람은 55.5%였다. 4회 이상 이직을 한 사람도 15.0%에 달했다. 한 번이라도 이직한 적이 있는 청년 가운데 자발적으로 직장을 옮긴 경우는 88.4%였고, 나머지 11.6%는 해고를 당하는 등 원하지 않는 이직을 했다.

청년들의 이직 이유는 임금과 사내 복리후생이 23.9%로 가장 높았고, 직장 상사 등 근무환경이 20.4%로 뒤를 이었다. 육아와 가사 등 집안사정이 16.1%, 적성과 기술 불일치가 14.0%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팀(김기헌·신동훈·변금선·고혜진· 신인철·배진우)은 전국 만 19~34살 3,224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그 가운데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 청년들은 임금과 사내 복리후생, 근무 환경을 주된 이유로 이직을 선택했다. ⓒ 윤상은

가난한 부모를 둔 저학력 독립 생활자일수록 이직 빈번

조사 결과, 자신의 학력과 부모의 경제력 등이 청년의 이직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들은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더 자주 이직을 했다. 이직 경험자의 이직 횟수를 교육 수준별로 보면, 고졸 이하 청년 가운데 3회 이상 이직한 비중은 34%였지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청년 가운데 3회 이상 이직자는 21.1%였다. 김기헌 선임연구위원은 <단비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일자리 수준도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고졸 이하 청년들이 비교적 자주 이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더 자주 이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윤상은

부모의 소득 수준도 이직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부모 소득 수준을 1~10점까지 나눠 상, 중, 하로 분류했다. 부모 소득이 하(1~4점)에 해당하는 청년들 가운데 3회 이상 이직한 비중은 39.3%인 반면, 부모가 상(7~10점)에 해당하는 소득을 버는 청년들 가운데 3회 이상 이직한 비중은 21.8%로 나타나 뚜렷이 대비됐다.

거주 형태별로 보면, 부모와 독립해 살면서 경제 지원도 받지 않는 청년이 3회 이상 이직한 경우는 33.9%인 반면,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의 3회 이상 이직 비중은 23.9%였다. 김 연구위원은 "소득 수준이 높은 부모와 같이 살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취업 준비를 오래할 수 있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사는 경우에는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단기 일자리 등에 취업할 때가 많다"고 분석했다.

'워라벨' 중시하고, '갑질' 못 참아

청년이 이직을 택하는 과정에서 근무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드러났다. 조사 대상 청년 가운데 20.4%는 직장 상사 등 근무 환경의 문제로 이직했다고 답했다. 여기서 ‘근무 환경의 문제’란 장시간 근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가리킨다.

주당 근무 시간이 많을수록 근무 환경의 문제를 이직 사유로 꼽은 비중도 높아졌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청년 가운데 근무 환경을 이직 사유로 답한 비율은 11.5%인 반면, 주 52시간 넘게 일하는 청년은 33.1%였다. 40~52시간 이하는 20.1%, 30~40시간 미만 14.3%, 15~30시간 미만 17.4%로 뒤를 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이른바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일자리 마련이나 자산 지원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근로 환경 자체를 청년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이직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참여자들이 경험한 직장  내 괴롭힘을 유형별로 보면, 업무 떠넘기기가 14.7%로 가장 높았고, 언어·물리적 폭력도 9.7%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밖에도 휴가 등 복지 사용 제약(8.0%), 회식 강요(7.9%), 승진과 보상 차별(5.8%), 인사이동과 퇴사 압력(5.4%), 성폭력(2.9%), 왕따(2.2%) 등이 뒤를 이었다.

연구팀이 청년 20명을 상대로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비정규직으로 일한 ㄱ 씨는 "정규직이 보장되지 않는데 ‘될 수도 있다’는 말로 (상사가) 저를 구워 삶으며 자꾸 일을 더 많이 주려고 했다"며 "(일을) 배워야 한다면서 주말 행사에 나가게 했다"고 말했다. 네 번이나 이직한 ㄴ 씨는 "대기업 출신 대표에게 자리에 앉은 채로 인사했더니, ‘다 같이 일어나서 인사하라’며 화를 냈다"며 "대표님이 입은 와이셔츠에 뭐가 묻자 ‘빨아오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 (세종=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정동명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이 17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1년 2월 고용동향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3.17 ⓒ 연합뉴스

생계유지 어려운 이직 과정

이직을 결심하고 일을 그만둬도, 청년들은 또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일을 그만둔 후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은 질문에 '생계유지를 위한 생활비 부족'을 답한 청년이 33.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심층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직을 네 번 한 ㄷ 씨는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따로 받지 않아, (내가 일하면서) 모아둔 돈을 (이직 준비하면서) 쓸 때 정서적으로 힘들었다"며 "생활비를 벌려고 학원 일 등 부수적인 일을 계속 했다"고 말했다.

김기헌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이 분야의 다른 연구,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청년 정책은 취업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며 "이제는 사내 민주주의와 일자리 환경 개선 등 취업 이후 문제도 중요하게 바라보고 청년들이 원하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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