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시사보도 공모전] 우리가 몰랐던 장애인들 옷 입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저널리즘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에서 당선된 기획안들이 후속 취재를 거쳐 기사로 완성됐습니다. 지난 1월 중순 당선작이 발표된 뒤부터 수상자들은 저널리즘스쿨 교수들 지도 아래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우수작에 뽑힌 동아방송예술대 영화예술과 졸업생 김재경 씨와 숙명여대 행정학과 졸업생 신시아 씨의 기획안 ‘우리나라에는 없는 특별한 브랜드를 찾아서’를 현장 취재한 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 탁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최모(59·여) 씨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옷 입기가 가장 힘들다. 2001년 교통사고로 하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최 씨는 외출하려고 준비할 때 옷을 입는 데만 30분 가까이 걸린다. 비장애인들은 일어선 채로 허리를 굽혀 바지를 발에 끼우고 끌어 올리면 그만이지만 그는 침대에 드러누워 바지를 입는다. 바지를 손에 들고 침대위에 올라 앉아 바지 가랑이에 두발을 넣고 한쪽 바지 가랑이를 무릎 위까지 끌어올린 뒤 나머지 가랑이를 끌어 올린다. 그런 다음 침대에 드러누워 바지 허리춤을 두 손으로 잡고 엉덩이를 약간 들어 올린 뒤 몸을 좌우로 뒤틀면서 바지를 허리춤까지 끌어올린다.

하반신이 마비돼 다리에 힘을 줄 수 없다 보니 바지 가랑이를 끌어 올리는 데 짧아도 10~20분이 걸리고 다 입고 나면 온몸에 땀이 밸 때가 많다. 그나마 바지 가랑이가 넓고 신축성이 있는 옷은 나은 편이지만 청바지처럼 폭이 좁고 꽉 끼이는 옷은 거의 입지 못한다. 옷 입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고 고역이라 최 씨는 물론 많은 장애인들은 품이 넓고 신축성이 있어 입기 편한 트레이닝 바지나 등산복 등 아웃도어 의류를 주로 입고 다닌다.

바지 입는 데만 20~30분, 옷은 날개 아닌 덫

▲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 탁구선수로 활동중인 최모 씨가 평소와 달리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오랜만에 멋을 냈다. 청바지는 끌어올리기 힘들어 입고 싶어도 잘 입을 수가 없다. © 김재경

양복정장이나 멋을 부린 양장 등은 입고 싶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입고 나와도 휠체어에 앉아 있다 보면 옷 맵시도 나지 않고 화장실 가서 옷을 내리고 올릴 때 너무 힘들어 거의 입지 않는다.     

최 씨는 옷 입기가 너무 힘들어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는 편인데 그래도 나가야 할 일이 있는 날은 식사를 허기만 달랠 정도로 적게 먹고 물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외출해서 오랫동안 밖에 있을 때 화장실 가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서 용변을 보는 일 자체도 쉽지 않지만 옷을 벗고 다시 입기가 너무 힘들다. 두 팔로 장애인용 손잡이를 붙잡고 일어서기도 힘든데, 일어선 채로 바지를 내리고 끌어 올리려면 몸부림을 치면서 온 몸을 비틀 듯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나마 붙잡고 일어날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 장애인 화장실에서는 억지로라도 옷을 내리고 올릴 수 있는데 일반 화장실에서는 아예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외출할 때 가는 목적지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는지, 점검을 하고 나간다.

“지금 입고 있는 옷들을 보면 알겠지만 장애인들은 대부분 아웃도어나 트레이닝 바지 같이 널널하고 편한 옷들을 많이 입어요. 우리도 예쁜 옷 입고 싶고 청바지도 입고 멋을 내고 싶지만 그런 옷을 입으려면 혼자서 장시간 끙끙대야 해서 입을 수가 없습니다. 청바지는 멋을 낸다고 바지 뒤쪽에 큐빅을 박아 놓는데,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 우리들은 그게 엉덩이에 배겨 아프니까 다 떼 내고 수선을 해서 입어요.”

 
▲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들은 평상시는 물론 외출시에도 입기 편하고 활동하기 편한 트레이닝복(위)이나 등산복 등 아웃도어를 주로 입고 다닌다(아래). 신발도 하이힐 같은 것은 신을 생각조차 않고 주로 운동화를 많이 신고 다닌다. © 김재경

지난 1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동에 있는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에서 만난 최 씨는 “나이든 사람들도 그렇지만 젊은이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멋도 부리고 싶을 텐데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어도 쉽게 입을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느냐”고 했다.

최 씨와 같이 만난 안모(61) 씨는 바지 지퍼와 백팩 지퍼 손잡이에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고리를 달고 다닌다. 20여년 전 일을 하다 다쳐 상체와 하체가 모두 불편한 안 씨는 손가락에 힘이 없어 지퍼를 잡고 끌어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지퍼에 달아 놓은 고리에 손가락을 넣어 팔 힘 전체로 지퍼를 당겨 올린다. 안 씨는 신발도 신을 수 없어 다른 사람이 신겨 주어야 하고 그 마저도 구두는 생각도 못하고 벗고 신기 편한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더울 때나 집 가까운 곳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싶어도 다리에 힘이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자꾸 벗겨지기 때문에 신을 수가 없다.

하반신이 마비돼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어 장시간 양말을 신고 있으면 발가락 사이가 짓무르기 때문에 발가락 양말을 신는다. 옷은 본인 스스로 입을 수가 없어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옷을 입혀 주기 편한 트레이닝복이나 아웃도어 같은 단순한 구조로 돼있는 옷을 입는다. 또 하체 운동을 못하기 때문에 지체장애인들은 배와 허리 부분이 많이 불어나 바지나 티셔츠 등을 입을 때 품이 아주 넓은 것이나 바지 허리춤을 헐렁하게 넓혀 입는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옷이 날개라고 하지만 이들 지체 장애인들에게는 옷을 입기가 너무 힘들고 시간이 걸려 날개가 아니라 덫이고 올가미다. 옷을 입고 멋을 부리고 뽐내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몸을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걸치고 다니는 것이 돼 버렸다.

▲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 회원인 안모 씨가 갖고 다니는 백팩 지퍼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 크기의 고리가 달려 있다. 손의 힘이 없어 손가락을 고리에 넣어 지퍼를 당겨 올린다. © 김재경

장애인 브랜드 있지만 특수 의류는 없어

이처럼 신체 특정 부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옷 입기가 힘들고 어려운데도 그들을 위한 맞춤형 의류 등이 없어 그를 해소해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애종류별로 각자 불편한 상태 등을 감안한 맞춤형 의류나 신발 등을 특수 주문제작해 공급함으로써 장애인들의 불편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의류 브랜드나 옷 가게 등을 돌아보아도 장애인들이 입기 쉽고 편한 옷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자기들 신체 상태에 맞는 옷을 파는 곳이 없다 보니 일반 매장에서 옷을 사서 각자 불편한 신체 부위에 따라 입기 쉽고 편하게 수선을 해서 입는 거지요. 신발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 임원 김모(53) 씨는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브랜드가 있다고는 하는데, 구입해 입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며 “구체적인 상품을 봐도 일부분만 장애인에게 맞춰 변형한 거 말고는 도움이 별로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장애정도와 부위 등에 따라 여러가지 유형의 특수의류가 있어야 하는데, 개개인 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흉내만 낸 특수브랜드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 씨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장애인들이 각자 기성복을 사서 자기 몸 상태에 맞춰 수선해서 입는데, 수선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외국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애인 브랜드 의류가 나와 있는데 우리도 그런 브랜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앉아서 벗는 바지 등 외국에선 다양

실제 외국에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장애인용 특수브랜드가 다양하게 나와 있다.

▲ 외국의 특수복 브랜드로 판매중인 장애인용 바지. 바지 가랑이 바깥쪽 재봉선을 타서 자석이나 밸크로를 붙여 휠체어에 앉은 채로 바지를 앞으로 제쳐 내리거나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다. © 신시아

영국의 ‘에이블 투웨어(Able 2wear)’란 브랜드는 일어서서 바지를 입을 수 없는 지체 장애인들이 앉아서 바지를 벗고 입을 수 있는 특수의류를 판매한다. 바지 양쪽 가랑이 바깥 재봉선을 터서 자석이나 밸크로를 붙여 평상시에는 바지 가랑이를 붙여 입고 다니다 옷을 벗을 때나 입을 때는 자석이나 밸크로를 떼고 앞으로 열어 내릴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장애인이 특히 화장실에서 난간을 잡고 일어서서 힘들게 바지를 내리거나 올리지 않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쉽게 바지를 내리고 올릴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미국의 의류브랜드 타미힐피거에서 내놓은 지체장애인용 특수의류 ‘타미 어댑티브 라인’에서는 목 부분을 열어 젖힐 수 있도록 어깨선을 터서 자석이나 밸크로를 붙여 놓은 티셔츠 등을 판매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적응형 의류를 제작하는 기본 개념도 제시되고 있다. 외국 브랜드들이 제시하는 장애인 적응형 의류의 기본 개념은 휠체어에 앉았을 때 바지 허리 벨트 부분을 수평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앞쪽은 낮추고 뒤쪽은 높게 하고, 옆구리 부분에 탄력을 주어 몸에 딱 맞도록 디자인하라고 권고한다. 비장애인들은 주로 서서 활동하므로 바지 허리춤 부분이 서있을 때 수평이 되도록 앞뒤 높이가 같게 만들지만, 장애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허리춤 앞쪽은 위로 밀려 올라가고 뒤쪽은 아래로 당겨 내려가 엉덩이 부분이 드러나게 되므로, 앞은 짧게 뒤는 길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휠체어에 앉아서 앞으로도 바지를 내릴 수 있게 하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장애인들을 위해 엉덩이 쪽 바지 디자인은 거슬리는 것이 없도록 하며,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 등 부분이 배기지 않도록 최대한 얇게 하고 주머니와 벨트 루프는 생략하도록 했다. 바지를 입고 앉게 되면 기장이 밀려 올라간다는 점을 감안해 오래 앉아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바지는 기장을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는 등 다섯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 외국의 장애인 브랜드들이 제시하고 있는 장애인 적응형 의류의 기본개념도(왼쪽)와 장애인 적응형 반바지(오른쪽). 반바지 앞부분을 터서 입기 편하게 만들고 허리춤 부분도 앞은 짧게 하고 뒤쪽을 길게 만들어 장시간 앉아 있는 장애인들이 입기 편하게 만들었다. © 신시아

유명 스포츠 의류 브랜드 나이키에서는 지체 장애인들이 쉽게 신을 수 있도록 발이 들어가는 입구부분이 넓고 끈이 없는 신발 ‘플라이이즈’(Fly Ease)를 내놓았다. 이 신발은 뒤꿈치 부분에 다이빙 보드라는 발판을 만들어 놓아 발을 신발에 넣기만 하면 밴드가 발을 전체적으로 감싸주도록 돼 있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허리를 굽혀 손으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된다.

▲ 나이키가 장애인과 임산부 등을 위해 내놓은 ‘플라이이즈’ 신발. 허리를 숙여 신발끈을 묶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만든 신발로, 넓은 입구로 발을 넣고 누르면 자동으로 밴드가 신발을 발에 맞춰 조여준다. © 신시아

이 밖에도 자포스 어댑티브란 사이트는 여러 브랜드의 장애인용 특수의류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 놓았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는 공공서비스 프로젝트로 장애인을 위한 적응형 의복과 제품을 설계해 생산하는 ‘오픈 스타일 랩’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적응형 브랜드나 맞춤형 의류점 있어야

“장애인들은 옷을 입을 때 앞뒤가 디자인이나 길이에서 달라야 됩니다. 휠체어에 계속 앉아 있으면 바지 허리춤 앞쪽은 말려 올라가고 뒤쪽은 밀려 내려가서 엉덩이가 밖으로 나오게 되지요. 앞은 짧게 하고 뒤는 길게 재단해야 장시간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됩니다. 윗도리도 뒤는 옷을 터놓는 디자인이 필요한데 그런 브랜드가 국내에는 없어요. 우리도 외국처럼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적응형 의류를 만드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체장애인협회 수원지회 임원 김 씨는 “장애인들의 장애 정도와 부위에 따라 불편을 최소화해줄 수 있는 맞춤형 의류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수요가 많지 않아 민간 의류제조업체에서는 하기 어려운 만큼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의 일정 지역이나 대도시에 장애인 적응형 의류점이나 전문 의상실을 설치해 장애인들이 각자 장애 상태에 따라 맞춤형으로 옷을 사서 입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장애인 적응형 의류는 수요가 많지 않아 수지가 맞지 않아 민간업자들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지역별로 일정한 수의 장애인 적응형 의류점이나 전문점을 열게 하고 수요 부족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지원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단순히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쉽고 편하게, 멋을 내 가면서 입을 수 있는 브랜드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 장애인들의 바람이다.


편집: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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