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강유정 강남대 교수
주제 ② 인문학과 저널리즘의 융합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때로는 비참하기까지 하다. 영화 <올드보이> <버닝> <기생충>은 현대인의 삶을 영화에 반영했다. 저널리스트는 현실을 기반으로 뉴스를 만들어낸다. 영화와 저널리즘은 현실의 맥락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현재 한국 언론이 봉착한 뉴스의 깊이 문제와 밀접한 이야기다. 

▲ 강유정 강남대 교수가 지난 10월 2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인문학과 저널리즘의 융합’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오동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저널리스트와 아티스트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문학평론과 영화평론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를 통해 저널리즘 비평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영화와 문학 작품을 예로 들며 저널리스트의 인문학적 상상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판타지에 즐거워할 수 없는 현실

주인공이 행복해지면 희극, 불행해지면 비극, 행복과 불행이 뒤섞이면 희비극이다. 현실 세계는 비극 또는 희비극에 가깝다. 강 교수는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영화화한 <다크 나이트>와 <조커>를 비교했다. 그는 “<다크 나이트>가 진지한 서사 구조와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주고 끝난 영화지만, <조커>는 구구절절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쉬웠던 영화”라고 평했다. 자연스러운 극 진행보다는 이미 짜여진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장면마다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 전개가 산만해졌다는 얘기다. 우리 시대에는 비극 구조가 현실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 강 교수는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판타지 요소를 그려내기 때문이지만, 관객들이 개연성 없는 판타지에 공감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 윤재영

강 교수는 영화 <암살>과 <내부자들>을 예로 들며 개연성이 부족한 승리 구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암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앞잡이로 변절한 염석진(이정재 분)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제대로 된 법적 검증을 받지 않고 재판정을 나오는 장면이 ‘현실’이라고 했다. 재판정 인근 골목에서 염석진이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에게 총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에 관해 영화 요소가 가미된 판타지라고 평가했다. 현실은 비극이지만, 영화 속 희극 요소가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줬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계층 이동성이 없는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 사회에 관해 비판했다. 능력이 없고,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도태된다. 사회로부터 도태됐다는 인식은 인간으로서 쓸모가 없어졌다는 상실감까지 뻗어 나간다. 강 교수는 “리처드 리브스 박사의 <20 VS 80의 사회>와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의 <우리 아이들>이 최근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 VS 80의 사회>는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지배하는 새로운 세습주의와 능력본위주의의 종말을, <우리 아이들>은 상류층의 계급 영속화를 다루고 있다. 

<기생충>이 보여준 현실과 계급 문제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은 학력위조를 매개로 유리천장을 뚫었어요. 그간 사회에서 계급화해온 학력 문제가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거죠. 현대 사회의 계급 구성요소 중 돈은 익히 알려져 있어요. 앞으로는 <기생충>에 등장한 학력 문제와 거주지 문제, 그리고 태도 문제가 많이 다뤄질 거라 분석해요. 태도가 계급을 구성하는 데 커다란 요소가 될 걸로 생각해요. 18세기 유럽에서 행해진 교양교육은 태도를 중시하는 데서 비롯됐죠. 귀족 계층에서만 공유하던 태도 문화가 일반 서민까지 확산됐고, 이후 태도를 교육하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태도 문제가 대두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태도로 계급 분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 강 교수는 영화 <기생충>을 통해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계급과 양극화 현상을 설명했다. ⓒ <기생충> 포스터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한 사회가 노동, 인적, 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한 사회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기생충>과 더불어 <설국열차>에 등장한 계급 문제와 함께 근대 상징물인  열차에 관해 설명했다. 열차 속에서 보는 바깥 풍경과 좁고 길게 이어진 열차 구조가 문학과 영화에서 상상력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독일 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열차가 발명되면서 범죄 소설이 시작됐다고 한다”며 “열차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문학적, 영화적 소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생충>과 <설국열차>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수평’과 ‘수직’을 꼽았다. 

“결말이 희미하게 끝나는 <기생충>을 보면 무섭다고 느끼실 거예요.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을 그린 <기생충>은 수직 구조에 가까운 영화예요. 반면에 <설국열차>의 주요 배경인 열차는 칸칸이 나뉘어 있고, 평평한 구조물 안에서 앞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수평적 구조라고 할 수 있어요. <설국열차>는 근대적 상상력 위에서 출발해 연료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명확한 그림으로 끝맺어요. 어떤 연료를 갖느냐가 <설국열차>의 핵심 이야기고, 관객에게 전하는 바가 커요. 영화를 보면 꼬리칸에서 출발해서 결국 선두에 있는 칸으로 이동하게 돼요. 유리천장과 유리 바닥의 개념이 수직적이라면 <설국열차>는 수평적 개념에 가까운 영화라 할 수 있어요.”

▲ 영화 <설국열차>는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열차를 배경으로 한다. 꼬리칸에 가까워질수록 계급이 낮아지며, 꼬리칸 사람들은 한 칸씩 전진하기 위해 상류층 사람들에게 도전한다. ⓒ 모호필름, 오퍼스픽쳐스

강 교수는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과 <기생충>(2019)은 가난을 보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은 가난 자체를 예각화한 영화라고 평가했다. 가난이 가져다 주는 역설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가난의 풍경을 그려냈다는 설명이다. 반면, <기생충>의 반지하 방은 계층 사회를 보여준다. 반지하방을 지나는 방역차량, 바퀴벌레, 취객 등은 가난과 계층 사회를 은유한다. 

강 교수는 이런 은유 장치를 미장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장소와 도구, 옷 차림새 등 세부 장치에 창작자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말이다. <기생충>에서는 반지하방과 펜트하우스에 거주하는 두 가정이 대비된다. 강 교수는 <기생충>에 등장한 펜트하우스는 반지하방과 상반된 효과를 연출하려 부를 상징할 수 있는 구조와 가구, 색감이 동원됐다고 한다. 그는 “반지하방과 펜트하우스 모두 세트인데, 사람들이 세트라고 느끼지 못했다”며 “그것들이 현실에 있을 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장센은 현실을 작품에 투영하는 장치로, 창작자가 보는 우리 시대를 드러낸다.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버닝>은 방황하는 청춘과 부에 관한 괴리와 번뇌를 다룬 영화다. ⓒ CGV 아트하우스

강 교수는 영화 <버닝>을 사례로 들며, 미장센에 관한 설명을 이어갔다. <버닝>에서 남산타워가 보이는 집은 부의 상징이자 부를 향한 동경으로 사용된다. <버닝>의 여자 주인공이 사는 집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남산 타워가 부각된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집은 부의 상징이다. 강 교수는 그런 미장센이 “최근 TV 매체와 언론에서 부각하는 ‘뷰(View)가 좋은 집’을 미리 예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예인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유독 한강이 보이는 집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이제는 한강이 보이는 집이 부의 상징이 된 시대”라며 “<버닝>이 앞서갔고, 향후 영화계에서 또 다른 미장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민과 공감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  

강 교수는 “창작자든 저널리스트든 인공물을 만드는 사람에게 연민과 공감 능력이 필하다”고 말했다. 맥락과 시대 구조를 짚어내는 깊이 있는 작품과 기사에는 공감과 연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연민과 공감은 인문학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다”며 “연민과 공감 능력을 증폭하려면 영화, 소설 등 인간학을 다룬 예술 작품을 간접체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문학 작품과 기사는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문학 작품은 통제할 수 없는 인간에게 궁금증을 갖고, 인간 이야기를 재구성해내는 인간학적 재구성이 이뤄진다. 이는 예술 영역이며, 연민과 공감 능력을 강화한다. 반면, 기사는 대상에 인격성을 부여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사에서도 인간학적 재구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인간에게 공감과 연민을 갖고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이 인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지난달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기획팀이 5회에 걸쳐 연재한 기획 기사 ‘증발’ 시리즈를 언급하며, ‘증발’ 시리즈처럼 공감과 연민 개념을 탑재한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주류 언론이 봉착한 문제는 해야 할 공감과 하지 말아야 할 공감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에요. 권력자를 향한 공감 능력이 높고, 사회 약자와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공감 능력이 부족해요. 한국 언론이 객관성을 담지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연민과 공감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주인공 파이가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동화 같은 상상력이 영화에서 구현된다. 오래 전부터 문학 작품에 등장한 표류기를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강 교수는 문학과 예술을 비롯한 인문학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인간은 표류하는 존재이며, 정답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때 인간학은 표류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주며, 의지를 일깨워준다고 했다. 강 교수는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와 영화<사일런스>를 보여주며, 의지란 아무 답도 돌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지가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 강 교수는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상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학 작품의 상상력”이라고 답했다. ⓒ 김태형

강 교수는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일상 속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변화 속에서 영속성을 발견해내는 ‘비평적 감시관’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 말대로라면 인문학적 소양은 세밀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키운다. 

“인문학적 소양은 저널리스트와 아티스트 등 인공물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에요. 인문학을 통해 간접체험을 늘려가면 이러한 덕목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사를 소설화한 작품이 많듯,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사회 약자와 낮은 위치까지 볼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많아져야 해요. 소설가들이 기사를 통해 영감을 얻어갔듯이, 저널리스트들도 예술 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할 때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신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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