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자살 보도에서는 ‘속보’와 ‘단독’ 욕심을 버려야

언론의 자살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 언론의 자살 보도를 살펴보면 한 인간의 죽음이라는 사실 전달을 넘어 필요 이상의 내용까지 보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상황에 기대서 죽음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한다. 언론으로서는 어떤 보도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단 한 건의 보도라도 그것이 불러올 사회적 파장과 보도의 윤리적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또 보도의 공익적 가치를 기자 스스로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간 자살 보도와 관련해서 언론 보도의 반복된 문제들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그런 비판의 영향으로 자살 보도에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최근 많이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살 보도만 놓고 보면 언론은 분명 변하기는 변한 것 같다. 하지만 지난해 세상을 떠난 코미디언 박지선 씨 관련 보도를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유서 공개로 또다시 드러난 장삿속 언론의 민낯

지난해 11월 초, 코미디언 박지선 씨 사망 보도와 관련해서 <조선일보>가 유가족의 뜻과는 무관하게 유서를 공개하며 ‘단독’ 표시까지 해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가 미친 파장은 엄청났다. 당장 단독 기사를 쓴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 유서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들은 비판을 받았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잘못된 기사를 내보낸 기자와 언론사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가 댓글 등에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박지선 씨와 함께 숨진 어머니의 유서를 공개한 기사는 언론윤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기사다. 유가족도 보도를 원하지 않는 기사였다. ‘1등 신문’임을 내세우는 <조선일보>는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조선일보>에 경고 조치했다. 여러 언론에서 이 기사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조선일보>는 여전히 관련 보도를 포털과 홈페이지 등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 박지선 씨 어머니가 남긴 유서와 관련된 내용을 담아 단독 기사를 내보낸 <조선일보> 기사 일부 갈무리. ⓒ <조선일보> 누리집 캡처

그럼 우리나라에 자살 보도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은 있을까? 물론 있다. 2004년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 제정한 ‘한국기자협회 자살 보도 윤리강령’이 나왔다. 또 2013년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함께 만든 ‘자살 보도 권고기준’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2번 개정됐다. 

두 가이드라인을 중심으로 박지선 씨 보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자. 먼저, ‘자살 보도 윤리강령’을 보면 ‘7. 언론은 자살 보도에서 자살자와 그 유족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조선일보>의 박지선 씨 어머니 유서 관련 보도는 유족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다. 유가족이 유서 공개를 원치 않아 경찰도 공개하지 않은 것을 기사로 보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살한 사람의 사진 넣지 말고, 유명인의 자살을 주요 기사로 싣는 것을 피하라고 한 ‘자살 보도 윤리강령’의 실천 요강 등도 지키지 않았다. 

또 다른 가이드라인인 ‘자살 보도 권고 기준’에는 ‘5.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등 자살 보도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유서를 공개한 이 보도는 이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도 잘못이라는 게 명확하다.

▲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 일부 갈무리. ⓒ 한국기자협회 누리집 캡처

반복되는 언론의 잘못된 자살 보도 

▲ 지난해 7월 방송한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99회에서 임자운 변호사는 <한겨레>의 성급했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원인 분석 보도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 KBS

지난해 11월 <조선일보>의 박지선 씨 유서 관련 보도 문제가 발생하기 몇 달 전 <한겨레>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사건을 전하는 과정에서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7월 10일, <한겨레>는 “인권 강조해오다 '도덕성 치명타'…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이라는 기사에서 ‘수습 힘들다 판단한 듯’, ‘여론과 법의 심판을 받는 대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회적 지탄 압박 견디지 못한 듯', '고소당한 상황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등의 표현으로 박 전 시장 죽음의 이유를 성급히 추측하는 내용을 기사에 담았다. <한겨레>는 이 기사가 비판을 받자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했다. 

<한겨레> 기사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 3.0’에 있는 “자살은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됩니다. 따라서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보도할 경우 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보도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속보 경쟁이 아니라 정확성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 기자와 데스크는 조금이라도 빨리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좀 늦더라도 언론 윤리적인 측면을 차분하게 검토하면서 보도해야 한다.

▲ <한겨레>는 문제를 지적받고 이를 반영해 제목을 비롯해 기사의 내용을 수정했다. 수정한 기사의 일부 갈무리. ⓒ <한겨레> 누리집 캡처

앞서 말했듯이 언론의 자살 보도가 시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 기자와 언론사도 윤리적인 부분 등을 과거에 비해 많이 신경 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의 사망 사건 등이 발생하면 사실에 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보도를 쏟아낸다. 그저 여론의 관심을 끄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해묵은 관행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잘못된 보도 이후 많은 비판을 받고 문제를 지적받아도 대개 사과나 반성 없이 지나간다. 2019년 세상을 떠난 설리 씨 등의 사망 당시 보도만 살펴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를 함부로 추측하는 기사, 악성 댓글의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기사 등 언론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사가 많았다. 

특히 주요 매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 <한겨레> 등의 언론사들까지 자살 사건을 다루면서 문제적인 보도를 하게 되면 해당 언론사는 물론이고 언론 전체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유명인의 자살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사는 평소보다 더 철저한 데스킹 과정을 거친 뒤 보도해야 한다. 조금 늦더라도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쳐서 신중히 보도해야 한다. 만에 하나 실수로 오보 등 문제적 보도를 하게 된다면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다시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도록 취재 보도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뉴스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신뢰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많은 뉴스 소비자로부터 사랑받는 영향력 있는 매체일수록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속보와 단독 욕심 버리고 저널리즘 본연의 원칙에 충실한 보도해야 

자살 보도에서는 속보, 단독은 중요하지 않다. 보도의 공익성, 정확성 등이 훨씬 중요하다. 자살 사건은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재난과 같은 것으로 다루는 게 맞다. 자살률이 전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 그렇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계속 1위다. 적어도 자살 보도에서 언론은 속보 경쟁과 단독 욕심을 버려야 한다. 죽음을 다루는 보도에서는 정말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의 무게를 보여줘야 한다. 클릭 수에만 혈안이 되어 이른바 ‘제목 장사’를 하는 등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언론의 신뢰 회복은 어렵다. 클릭 수의 유혹을 버리고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보도를 할 때 언론이 뉴스 소비자로부터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김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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