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한국사회의 상징’ ② 마지막 하나 남기기

꼭 하나가 남는다

치킨 한 조각이 남았다. 중학교 동창 모임, 네모난 나무 테이블에 나까지 넷이 앉아 있다. 술은 방금 시킨 소주가 2병, 마시던 맥주가 반 병 남았다. 맞은편 친구가 소주잔을 든다. 곧바로 나머지 세 사람 손이 소주잔을 향한다. 짠. 안주는 기본으로 나온 마카로니 뻥튀기와 먹다 남은 치킨무다. 친구가 “사장님”을 외친다. “여기 뻥튀기랑 치킨무 좀 더 주세요.” 누구도 한 조각 남은 치킨에 손대지 않는다. 치킨 한 조각은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다.

딸기 하나가 남았다. 큰 고모 식구와 만난 가족 모임, 집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딸기와 청포도를 먹는다. 얼굴 만한 흰 접시 두 개에 딸기와 청포도가 담겨 있다. 새빨갛게 익은 딸기가 인기가 좋다. 금세 딸기 접시는 바닥을 보인다. 포크가 청포도로 옮겨간다. 마지막 남은 딸기 하나에 누구도 손대지 않는다. 접시를 치우던 나는, 버리기 아까워 그 딸기를 먹어 버린다.

▲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도 수육이 한 조각, 후식으로 먹은 사과가 한 조각 남았다.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다가 끝내 한 조각을 남겼다. 한 조각 남은 딸기처럼, 식탁을 치우며 먹어 버렸다. ⓒ 신현우

누구나 겪은 경험이다. 한국인은 함께 식사할 때 마지막 하나를 남긴다. 반찬이나 안주, 후식이나 과자가 마지막에 하나 남으면 손대지 않는다. 남을 위한 배려이거나 과도한 눈치보기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마지막 하나를 집어갈 때 들을 수 있는 ‘너는 네 욕심을 먼저 차리는구나’라는 평가를 두려워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 하나 남기기는 무언가를 끝내야 할 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접시가 비워지면 모임을 끝내야 한다. 모두 자기 손으로 모임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문제는 ‘마지막 하나 남기기’가 정치에 적용될 때다.

정치에서 하나를 남긴다는 건…

‘정치’도 하나를 남긴다. 제 맘에 드는 이슈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다가 마지막 하나를 남기고 눈치만 본다. 일상에서 음식 하나 남기는 건 사소한 일이다. 모임이 끝나기 전에 아무나 쓱 집어먹으면 된다. 모두가 배려했다 생각하고 버릴 수도 있다. 정치는 다르다. 정치가 남긴 마지막 하나는 ‘큰일’이다. 정치에서 마지막 하나란 곧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다. 정치에서 ‘마지막 하나 남기기’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말 잔치를 벌여 놓고는 끝내 제도를 법제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치가 남긴 마지막 하나로 ‘증세’가 있다. 증세 논의는 우리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재편하는, 국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사안이다. 하지만 정치는 달콤한 복지를 다 먹어 치우고 난 뒤 증세를 남기는, ‘마지막 하나 남기기’를 반복해왔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권의 증세 없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는 항상 ‘공약’(空約)에 그쳤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자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입을 확충하고 정부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세출을 절감하여 복지를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애초에 불가능한 공약이었다. 후보자 시절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공약은 논란 끝에 지급 대상이 소득 하위 70%로 줄고, 10~20만 원을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4대 중증질환(암, 뇌혈관, 심혈관, 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를 국가가 100% 부담하겠다는 공약은 대통령 취임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약에 3대 비급여 항목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약속한 복지 대신 ‘꼼수 증세’가 따라왔다. 2015년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됐고, 같은 해 과세 방식이 변경된 연말정산은 ‘우회 증세’라고 비판받았다.

▲ 2015년 4월 8일 여당이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지적했다. 2021년 현재, 정치권의 증세 논의는 여전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한국인의 마지막 하나 남기기’를 상징한다. ⓒ KBS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하던 야당은 여당으로 자리가 바뀌자 태도를 바꿨다. 정부도 증세 논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2018년 4월 조세와 재정 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10개월간 활동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2019년 2월 26일 활동을 마무리하며 제출한 ‘재정개혁보고서’는 중장기 개혁 로드맵 대신 단기 대책과 단순 권고에 머물렀다. 재정특위 권고에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해 7월 재정특위는 ‘상반기 재정개혁 권고안’을 발표하며 금융소득종합과제 기준을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낮춰 과세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권고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했다. 청와대와 여당도 재정특위 대신 기재부와 뜻을 함께했다. 다시 증세는 ‘마지막 하나’로 남았다.

증세 없이 지출을 늘리려면 빚을 내는 수밖에 없다. 국회는 2021년 예산안에 따라 올해 국가채무가 956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2020년도 본예산 기준 국가채무는 805조2천억 원이었다. 1년 사이 나라 빚이 150조8천억 원 늘었다. 사상 초유 팬데믹과 경기 침체로 지출이 늘고 세수가 줄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늘어나는 지출을 채무로만 감당하는 건 지속될 수 없다. 정부는 증세 가능성에 선을 긋는다. 지난해 8월 예산안 사전 브리핑에서 홍남기 부총리는 증세에 관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원론을 폈다. 그 전인 5월 청와대는 증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재원 마련 방안으로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복지를 말하며 증세를 하지 않는 건, 새로운 사업을 하라면서 창업자금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증세는 예민한 문제다. 그렇다고 정치적 파장과 여론을 우려해 눈치만 보고 공론화조차 하지 않는 건 책임회피를 넘어 직무유기다. 한국은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도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세·지방세 조세수입 비율을 나타내는 조세부담률과 GDP 대비 조세와 연금, 사회보험 납부액의 비율을 나타내는 국민부담률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 조세 수첩’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19.9%로 OECD 평균 24.9%보다 5%p 낮다. 국민부담률 역시 26.7%로 OECD 평균인 34.0%보다 7.3%p 낮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도 많다. 2018년 기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근로자는 전체의 38.9%다. 캐나다(17.8%), 호주(15.8%), 일본(15.5%)은 물론 미국(30.7%)과 비교해도 높다.

▲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20 조세 수첩’에 따르면,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OECD 평균보다 낮다. 세금을 적게 걷으면서 각종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빚을 내거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이런 식으로는 지속가능한 ‘복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 신현우

2015년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경향신문>에 이런 칼럼을 썼다. ‘1600만 근로소득자 중 절반인 800만 명이 세금을 단돈 1원도 안 내게 되어 있다. 여기에 침묵하면서, 부자·대기업 증세로 보편적 복지 하자고 주장하는 건 사기극이다.’ 지난해 1월 출간한 <장제우의 세금 수업>은 사회 구성원 모두 부담을 늘려야 온전한 복지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부자 증세만으로 복지국가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낙수효과 주장처럼 위선과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하나를 삼키라

정치(政治)에서 정(政)은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친다’는 의미를 가진 등글월 문(攵)과 ‘바르다’는 뜻을 가진 정(正)을 합친 글자다. ‘바른 것을 위해 일을 하거나 회초리를 친다’는 말이다. 표 떨어질까, 눈치 보느라 증세의 ‘증’자도 못 꺼내는 건 바른 일이 아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허구라고 비판했으면 ‘증세 있는 복지’를 실현하는 게 바른 일이다. 정치에서 치(治)는 ‘물이 넘치며 입은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물이 조금 넘친 상황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덮쳐 사회적 약자들은 생존 위기에 내몰렸고, 이른바 ‘K자 양극화’로 부와 노동의 불평등과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 복지와 공공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다시 세워야 하는데, 정책의 기본은 재원이다. 팬데믹 전장에서 총알 없는 총은 소용이 없다. 사회적 돌봄과 손실보상은 돈이 필요하고, 돈은 증세에서 나온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 영세 자영업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재난지원금을 모두에게 주느냐, 선별해서 주느냐로 시간을 보낸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이익공유제와 정부 지침에 따라 영업을 중단한 소상공인 지원을 제도화하는 손실보장제도 등장했다. 너도나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한마디씩 거든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에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문제는 재원인데 뾰족한 재원 마련 방법을 제시하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증세를 숨긴 채 논의가 이뤄지니 진전이 없다. 기업의 ‘선의’에 기대는 이익공유제는 ‘기업 팔 비틀기’이고 정부가 기업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손실보상제를 둘러싼 논의에서는 의미 없는 숫자만 등장한다. 발의한 법안에 따라 100조 원이니, 40조 원이니 했지만, 구체적 재원 대책은 없었다.

증세 논의는 코로나19의 피해를 보상하고 이들을 보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4차산업혁명, 인구절벽과 고령화, 경제 불평등을 대비하려면 증세 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국민생활 기준 2030’이라는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보편적 사회보호’를 한국에 맞게 적용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만 7세까지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만 18세까지 지급하고, 전 국민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공공 노인요양시설도 확충하는 복지 선진국을 향한 구상이다. 하지만 증세와는 선을 그었다. 분야별 과제를 뽑기 시작한 단계에서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과연 세부 정책을 준비한 뒤에는 증세 논의를 꺼낼 수 있을까? 큰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경제가 좋지 않아서, 논의가 부족해서, 국민 공감대가 필요해서, 가능한 핑계가 수없이 떠오른다.

▲ 지난해 사망 인구가 출생 인구를 뛰어넘으며 처음으로 한국 전체 인구가 감소했다.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책과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한 정책에 필요한 건 재원이다. 재원은 정치의 마무리인 증세에서 나온다. ⓒ KBS

어디 정치뿐일까?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 재편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혁신 과제들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마지막 남은 하나’가 되어 유령처럼 배회한다. 결단력이 필요하다. 함께 술을 마시면 마지막 하나 남은 안주를 먹어버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테이블 위 소주병과 맥주병을 눈으로 훑고 남들 얼굴을 살핀다. 고민 없이 마지막 안주를 집어 든다. 술자리를 끝내버리는 그의 결단력. 우리네 정치가 배워야 할 건 마지막 하나를 남기는 한국인의 습성이 아니라, 눈치 없는 내 친구의 결단력이다. 정치는 마지막 하나를 남기면 안 된다. ‘증세’는 한국의 대표적 마지막 하나다. 눈치 보기와 무책임한 말잔치로 시대 과제인 적폐청산과 민생해결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마무리다. 마무리는 책임지는 일이다. 정치는 마지막 하나, 증세를 삼키라.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상징’이다. 코로나는 이른바 ‘K자 양극화’로 불리며 부와 노동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공공 안전망이 부재한 각자도생 사회, 더 깊어진 불안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오늘을 상징하는 대상과 현상으로 읽어낸다. (편집자)

편집 : 유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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