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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의 기나긴 하루

기사승인 2021.02.16  19: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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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 [단비현장] 온라인 교육 속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학생

“엄마가 부탁할게. 나은아 자리에 좀 앉아봐 제발…”

2020년 12월 11일 오전 9시 30분, 충북 제천에 사는 이나은(가명‧12) 양과 엄마 최은희(가명‧41)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원래 학교에 갈 시간이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함에 따라 부분적 등교가 시행됐고, 나은이는 일과 대부분을 집에서 보낸다. 나은이는 학교에 가지 못해 짜증이 부쩍 늘어났다. 모녀는 아침부터 서로 언성을 높일 때가 많다. 최 씨는 외부 활동이 전무한 나은이를 보는 일이 힘에 부친다.

10시 30분, 나은이의 식사가 끝나면 최 씨는 막막하다. 덧셈과 뺄셈 같은 기초적인 학습은 언제든지 도울 수 있지만,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전문가 수준의 맞춤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에 빠진 나은이를 보면서 현재 상황이 한없이 원망스럽다.

   
▲ 나은이 일과표. 부분적 등교 시행 전에는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취침 시간 제외)이 4시간 정도였지만 부분적 등교가 시행된 후에는 12시간(취침 시간 제외)을 가정에서 보내게 됐다. Ⓒ 양수호

늘어난 돌봄 시간, 일상 속 도사리는 편견

“정말 죽을 맛이네요. 다른 것보다 아이의 장애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죠.”

나은이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 출생 직후 진행한 검진에서는 장애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두 돌이 지나 받은 검진에서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후천성 장애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자폐성 장애의 특징 중 하나는 소리와 움직임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나은이의 경우,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예민하다. 거리를 걷다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거나 주저앉아 버린다. 특정 사물과 풍경에 집착하게 되면 무작정 드러누워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최 씨는 나은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나은이가 교통카드 단말기 알림음, 버스 출입문 소리에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특수학교와 특수학급, 통합학급의 특수교육대상자 대부분이 부분적 등교를 하거나 전면 온라인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생 당사자와 가정에서의 돌봄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사회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 KBS

일상에서 겪는 편견도 모녀를 힘들게 한다. 나은이는 한 택시 기업의 광고 음악을 좋아해 흉내 내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해당 기업의 택시에 탑승하게 되면 광고 음악을 따라 부르곤 한다. 일부 택시 기사는 나은이의 행동에 따가운 눈길을 보내곤 한다. 최 씨는 외출하기가 겁이 난다. 이렇듯 외부 활동이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월, 충북 제천교육지원청 자료를 보면 제천에는 총 203명의 특수교육대상자가 있으며, 유치원 5개교, 초등학교 19개교, 중학교 6개교, 고등학교 3개교에서 특수학급을 운영 중이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함께 모인 학급을 통합학급이라 하며 장애학생만 전담하는 학급을 특수학급이라 한다. 제천 내 유일한 특수학교인 청암학교에는 지난해 1월 13일 기준 93명의 학생이 있다. 특수학급이 없는 학교의 장애학생인 경우, 장애학생 보조 인력의 지원을 받으며 비장애학생과 통합학급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다.

코로나19 청정지역이라 불리던 제천은 지난해 11월 ‘김장모임’ 관련 확진자가 대량 발생했고, 이후 각급 학교는 등교생 수를 3분의 1로 조정해 부분적 등교를 시행했다. 제천교육지원청은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통합학급과 특수학급 모두 온라인 교육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정상 등교하고 있을 때 나은이가 가정에서 머문 시간(취침 시간 제외)은 통상 4시간이었으나, 부분적 등교가 시행된 후에는 12시간으로 3배 가량 늘었다.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일과 전부를 가정에서 보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장애학생은 비장애학생에 비해 오프라인 학습이 더욱 중요하지만, 나은이는 제천 지역의 여느 초등학생과 마찬가지로 9일 중 2일 정도만 등교한다. 나머지 7일은 온전히 가정에서 책임져야 한다. 하루 4시간 정도 나은이를 돌봐줬던 활동보조인은 제천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제천의 경우, 타지역과 비교해 정상 등교 기간이 길었고, 각종 복지 시설과 장애학생 관련 센터들이 최근까지 문을 열었지만, 지역 내 코로나 19 확진자가 급장하자 대부분 시설을 폐쇄했거나 운영을 축소했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장애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 장애학생과 학부모 상당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양수호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지난해 9월 28일부터 10월 5일까지 발달장애아 학부모 1,3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중복 응답 가능) 결과를 보면 장애학생 학부모 상당수가 코로나19로 인한 장애아동 일상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신체활동 감소로 무기력증·체중 증가’라고 응답한 조사자가 783명으로 가장 많았고, '영상매체 시청 증가'가 664명, '외출이 어려워 집에만 있음'이 614명, '경기나 틱 등의 횟수 증가'가 329명, '자폐성이 강해짐'이 131명으로 뒤를 이었다.

장애학생에게 더 불리한 온라인 교육, 뚜렷한 대응책 없어 문제

장애학생들은 맞춤형 교육이 아닌 비장애학생의 학습 수준으로 제작된 온라인 강의 영상을 보고 학습해야 한다. 최 씨는 “더하기 빼기도 힘겨운데, 사회, 과학 등 비장애학생 수준으로 온라인 강의가 개설돼 학급 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따로 학습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교육이 일상화했지만, 장애학생을 위한 개별 맞춤형 온라인 강의 제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석대 유아특수교육학과 박재우 교수는 “장애는 천차만별인데 그것에 대응하는 교육 정책이나 온라인 강의가 일괄적이고 부실한 상황”이라며 “교육 당국은 각 장애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 온라인 강의를 지속해서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장애학생의 경우, 비장애학생과 비교해 온라인 교육에서 느끼는 피로도가 더 크다”며 “대면 교육 시에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현장에서 즉시 물어보거나 주변 학생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온라인 상황에서는 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에 장애학생들은 더 고립된다고 볼 수 있다”고 장애학생들이 직면한 상황을 진단했다.

최 씨의 또 다른 걱정은 아이의 장애가 퇴행하는 것이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나은이는 학교에 가서 또래 학생들을 보며 언어와 행동을 모방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일정한 학습 효과를 보게 된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있거나 동생과 싸우는 일이 잦다 보니, 생활 속의 모방 학습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나은이가 매주 다니던 치료실은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문을 닫은 상황이라 학습과 치료가 되지 않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교육 당국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단비뉴스 인터뷰에 응한 제천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권은숙 팀장. 

제천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 권은숙 팀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교육 지원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많다”며 “특히 어리고 중증 장애를 가진 학생일수록 마스크를 상시 착용하는 것에 큰 불편을 겪는다”고 말했다. 장애학생 가정의 돌봄 시간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에 관해선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온라인 교육으로 전환되던 과정에서 민원인들이 돌봄 부담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특수교육대상자라고 해서 무작정 학교로 오라고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원 기관에서는 장애학생과 각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학생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교육부의 지침대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장애 특성 고려한 맞춤형 교육 절실

지난해 10월 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1학기 온라인 개학 기간에 방문 수업을 실시한 특수학교는 전국 182개교의 15%인 28개교였다. 충북의 경우, 전체 10개교 중에서 단 3곳만이 방문 수업을 진행했다.

방문 수업을 운영하지 않은 특수학교 학생들은 교육 당국에서 일괄 제작한 영상 강의와 학교에서 마련한 교육 과정을 병행했다. 학생마다 가진 장애와 어려움이 천차만별인데 맞춤형 교육이 아닌 일괄적인 교육이 진행돼 각 가정에서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우석대 유아특수교육학과 박재우 교수는 전염병 상황 속에서 장애학생의 대면 교육을 위한 방법 하나를 제안했다. 그는 “교실 안에 세트형 교육 시설 도입을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 이어 “교실 안에 들어간 학생들이 상황에 맞는 온라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세트형 교실을 도입해 온라인 교육을 할 때 발생하는 현장 지원 공백을 줄일 필요가 있다”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박 교수가 제안한 세트형 교육 시설은 교실 안에 학생 개인이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1인용 독립 공간을 말한다. 박 교수는 세트형 교육 시설이 전염병 확산 위험과 가정에서 발생하는 돌봄 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세트형 교육 시설을 운영할 경우 인력 지원과 함께 공기 순환 시설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재우 교수가 제안한 세트형 교실은 대학 도서관에서 운영 중인 개인 열람실보다 분리된 형태이며 독립된 공간이다. 박 교수가 구상한 세트형 교실은 지원 인력이 상주해 독립된 공간에서 온라인 학습을 듣는 장애학생을 돕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교실 공간에 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

“나은이와 저도 그렇지만, 전국의 장애학생과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예요. 비장애학생 중심의 교육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어요. 교육 당국에서는 장애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오랜 기간 외면받아왔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더욱 절감하고 있어요.”

최 씨는 기약 없는 전염병과의 싸움이 야속하다. 장애학생을 양육하는 많은 부모가 유연한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염병 속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 계층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

(영상취재 : 김태형, 양수호 / 편집 : 김신영, 양수호)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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