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아포리아'

▲ 김장승혁

<교수신문>은 지난해 말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선정했다. 같은 사안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세태를 비판하는 ‘내로남불’, 곧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마음에 드는 조어법은 아니지만, 우리 정치인들에게 ‘아시타비’는 무슨 뜻일까?

정치인들의 ‘아시타비’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7년 박정희 정권이 구상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큰 틀에서 노무현 정권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여당이 자기네 책임으로 발생한 보궐선거에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후보를 출마시킨 것은 헌법을 파괴하면서 장기집권을 획책한 박정희의 정치 행로에 견주어 정도 차이는 크지만 약속을 깬 점에서는 같다. 박정희는 3선 불출마 약속을 깬 뒤 대통령이 되고, 선거 유세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호소해놓고 유신을 단행했다. 정치인들의 사고 구조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구분되기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로 구분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정치인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그들은 자기 생각이 상식에 맞다고 말한다. 상식은 논증할 필요 없이 성립되는 지식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생각은 논증할 필요도 없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상대 진영이 가지고 있는 상식은 어떻게 평가할까? 상대 진영 역시 자기네 생각이 상식적이며 근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상식은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네 생각만이 상식이라는 주관주의에 빠진 셈이다. 정치인들은 우리는 언제나 옳지만, 상대방은 언제나 그르다는 태도를 보인다. 오류를 인정하는 사과나 비판적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 아포리아(aporia)는 그리스어로 막다른 곳에 다다름을 뜻한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려 무지의 상태를 자각하게 했다. ⓒ Pixabay

‘옳은 생각’만이 통용되는 사회는 종종 모순에 빠진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불분명한 세상에서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누르고 승자가 된다. 해결 불가능한 모순된 상태를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아포리아’(aporia)라 했다. ‘a’는 ‘없다’는 뜻의 접두사이고 ‘poria’는 길이니 ‘길이 없는 상태’ 곧 ‘막다른 길’이라는 의미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를 아포리아에 빠뜨림으로써 스스로 오류를 깨닫게 했다는데, 우리 정치인들은 소크라테스도 혀를 내두를 만한 수사법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종종 아포리아 상태에 빠지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한다. 때로는 프로파간다를 이용하고 때로는 대중을 동원한다. 존경받는 정치가가 되고 싶다면 진실을 말하되 다름을 인정하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대중을 설득해 스스로 아포리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이 칼럼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의 ‘22기 예비언론인 캠프’에 참여한 김장승혁 씨가 과제로 보내온 글을 첨삭한 것입니다. 그는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입니다. 글이 채택된 학생에게는 이봉수 교수의 미디어비평집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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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윤재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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